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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Jul 25. 2019

에스겔 11:01-13 악한 지도자들에게 임할 심판

에스겔 11:01-13 

에스겔 11:01-13 악한 지도자들에게 임할 심판


에스겔을 동문(東門)으로 이끌어 그곳에 있는 악한 지도자들(25명)을 보게 합니다. 이들은 불의를 품고 악을 도모하는 이들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이들의 악행이 예루살렘 성읍에 가득하기에 변경으로 이끌고 가서 심판하실 것을 예언합니다. 그들의 문제는 여호와의 율례와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에스겔은 다시한번 중재를 시도합니다. 


# 1-2절 여호와께서는 불의를 품고 악한 꾀를 꾸미는 지도자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주의 영이 에스겔을 동문으로 이끌어 갔을 때 그곳에는 스물 다섯명의 지도자들이 있었고 그들 중 두 사람(야아사나, 블라댜-’여호와께서 구하셨다’는 의미-”브나야”는 여호와께서 세우셨다는 의미)은 에스겔도 아는 사람이었기에 이들이 백성의 고관들임을 알았습니다. 주의 영을 통해서 이들이 성 중에서 불의를 품고 악한 꾀를 구미는 자들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

이제 여호와의 영광은 점점 성전을 떠나고 예루살렘 성을 벗어나고 있습니다. 에스겔이 주의 영을 통해서 동문에서 본 것은 스물 다섯명의 고관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곳에 있는 두 사람은 이미 에스겔이 알고 있는 사람이었기에 그들이 백성의 고관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에스겔이 알고 있는 것은 백성의 지도자였으나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불의와 악행을 행하므로 말미암아 심판 받을 이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불의함은 하나니의 뜻을 따라 정의를 행해야 할 이들이 백성을 착취하고 유린하고 보호하지 않으며 재판을 굽게하고 오히려 소외된 이들을 돌보지 않음에 대한 종합적 표현입니다. 이들에게 자신들의 지위는 탐욕을 이루는 수단이며, 백성 또한 돌봐야 할 이들이 아니라 착취의 대상일 뿐이었습니다. 이들은 이러한 불의함을 마음에 품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성 중에서 제 역할을 감당하지 않고 악한 꾀를 꾸밉니다. 어떻게 하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면서 백성들의 고혈을 착취하고 그들을 수단으로 자신들의 부와 명예와 영화를 누릴 것인지에만 관심이 있었고 백성이 어떻게 사는지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노하시고 심판하시는 죄악은 결국 제의적으로 부족함 때문이 아닙니다. 이들의 신앙이 결국 사회 속에서 정의를 세우고 있지 않기 때문이며 소외된 이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도록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우리의 믿음과 행함이 일치하지 않고, 교회와 세상에서의 삶이 일치하지 않으며, 우리가 배운대로 세상에서 살지 않는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불의함과 악한 꾀를 꾸미는 일은 결국 의인의 반대로 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 자(3절)의 자리에 앉는 것입니다. 

*

지금 우리 모두에게는 부양할 가족들과 돌보고 섬겨야 할 이들이 붙여진 존재입니다. 적으로 공동체 속에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모두다 이러한 책임과 의무가 주어집니다. 지도자일수록 더욱 그 책임과 의무는 무거워집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부르심과 사명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탐욕과 욕망을 따라 살아간다면 당연 불의함과 악한 꾀를 도모하는 데로 전락하고 맙니다. 주야로 주의 말씀을 묵상하지 아니하면 우리는 언제로 이와같이 우리가 마땅히 품고 말하고 행하고 일해야 할 것들에서 멀어지고 오히려 불의함과 악인의 길로 행하고 말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이러한 불의와 악행에 대해서 결코 좌시하지 않으시며 반드시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 3-6절 여호와께서는 지도자들의 불의와 악행에 대한 언행심사를 다 알고 계십니다. 

고관들이 품은 불의는 그들의 말에서 드러납니다. 집 건축할 때가 아직 멀었으니 이 성읍은 가마(솥)가 되고 우리는 고기(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이들을 쳐서 예언하기를 이들의 악행은 이 성읍에서 사람을 많이 죽여 그 거리를 시체로 채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

자칭 지도자들이 범한 불의 곧 오만(3절)은 그들의 마음에 품은 생각입니다. 곧 아직 집 건축할 때가 가깝지 않다고 생각하고 예루살렘 성읍은 가마가 되고 자신들은 고기가 된다는 말입니다. 이 표현은 해석이 어려운데 7절과 11절에서 반복되어 언급되고 있습니다. 7절은 부정적으로 쓰이고, 11절은 3절과 같은 맥락으로 보입니다. 곧 여기서 집은 예루살렘 성을 말하는 것으로 성을 건축할 때가 아직 아니라는 것은 지금 이 성이 자신들을 지키고 보호하는 곳인데 그것을 보수하고 든든하게 세우는 일에 대해서는 아직 때가 아니라는 핑계고 게을리 하면서도 그 성읍이 가마(솥)처럼 자신들을 지켜 줄 것이라 착각하고, 자신들은 그 가운데 있는 고기처럼 안전하고 귀하게 지켜질 수 있으리라 오만하게 착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오만한 이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그들을 칠 것이라는 예언을 하게 합니다. 먼저 그들의 마음 속에 있는 이러한 불의함과 오만한 생각들을 이미 알고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불의함은 결국 성읍에서 많은 이들을 죽여 시체로 채운 것입니다. 직접적인 살인 뿐 아니라 이들을 착취하고 지도자로서 백성들을 돌봐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해 많은 이들이 죽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소외된 이들 대부분은 굶어 죽고, 병들어 죽는 일들이 허다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

지금 우리에게도 크든 작든 부양할 가족에 대한 책임과 공동체 내에서 감당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들을 해야 할 때를 분별하여 성실하게 책임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때를 분별하지 못하고 책임과 의무에 대해서 자의적으로 해석하면서 이기적인 탐욕만을 채우고 불의함과 악한 꾀를 꾸미면서 살아간다면 우리도 결국 살인하는 자요 방관하는 자요 기만하는 자로서 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서는 악인의 길로 행하는 어리석음음을 범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내가 가정과 공동체에서 어떤 책임과 의무가 있는지, 하나님께서 부르신 부르심에 대한 의를 구하고 그 나라의 거룩한 백성으로 마땅히 우리가 행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무엇인지 깨닫고 성실하게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 7-13절 여호와께서는 율례와 규례를 어긴 지도자들을 변경에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악한 고관들의 생각과 달리 여호와께서는 결국 그들이 두려워하는 칼로 심판하고, 성읍가운데에서 끌어내어 타국인의 손에 넘겨 변경에서 벌할 것을 예언하십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들이 여호와의 율례를 행하지 않고, 규례를 지키지 않고 오히여 이방인의 구례대로 행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여호와의 세우심(브나야)과 구원(블라댜)이 무너지는 것을 본 에스겔은 다시한번 탄식하며 중재를 요청합니다. 

*

고관들의 오만한 언행으로 말미암아 자행된 결과를 보시고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죽인 이들이 오히려 가마같은 성읍에서 보호받아야 할 귀한 고기인데 결국 고관들이 죽인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불의를 품고 악한 꾀를 꾸민 지도자들은 이 성읍 가운데서 끌려 나오게 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들이 칼을 두려워하니 칼로 심판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장담했던 예루살렘 성에서 끌어내어서 타국인의 손에넘겨주어서 그들의 손으로 벌을 받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결국 이들은 변경에서 심판을 받고 그제서야 자신들이 여호와 앞에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알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떠난 성읍은 결코 그들을 보호하지도 않고 그 가운데 귀한 존재(고기)로 남을 수 없게되고 그래서 이들은 변경으로 끌려가서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들의 여호와의 율례를 행하지도 않고 규례를 지키지도 않고 오히려 사방에 있는 이방인들의 규례대로 행했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백성으로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야 할 이들이 오히려 부정한 이방인의 풍습과 가치관과 세계관과 문화를 따라 살아간 것입니다. 마땅히 행해야 할 일들과 품어야 할 생각들에서 멀고 오히려 철저하게 악인의 길로 행한 것입니다. 

이러한 이들을 심판하시는 것을 본 에스겔은 다시한번 중재를 요청하면서 그들에 대한 심판이 얼마나 철저하게 행해질 것인지를 반증해 주고 있습니다. 


# 거둠의 기도

성령으로 우리를 이끄시며

우리로 의인으로 살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부양할 가족과 

공동체에서의 책임과 사명을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그런 역할에 대해 소홀했던 점이 있음을 고백하오며

우리 가운데 있는 불의함과 악한 꾀

곧 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으려고 한

우리의 언행심사가 있음을 고백하옵고 용서를 구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과 의무에 소홀함이 없길 원합니다. 

더불어 주위에 소외된 이들을 향한 책임 또한

소홀함이 없길 원합니다. 

우리로 말미암아 아파하고 고통당하고 유린되는 것은 없는지

지금 사회적으로 유린되고 소외된 이들을 향하여

우리가 어떻게 행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옵시며

말씀앞에서 바로 비춰 깨닫게 하옵소서. 

우리가 행한대로 보응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더욱 주의 율례를  따라 행하며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규례를 잘 지켜 행하여

세상과 다른 구별된 거룩한 백성으로서

합당하게 행하길 원합니다. 

이 모든 여정을 함께 위로하며 격려하며 세워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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