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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Jul 29. 2019

에스겔 13:01-23 거짓 예언자들에 대한 심판

에스겔 13:01-23

에스겔 13:01-23 거짓 예언자들에 대한 심판


시국이 어수선한 만큼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혹세무민하며 거짓 예언을 하는 많은 이들이 득세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에스겔을 통해 이들을 향하여 경고의 예언을 하게 하십니다. 이들은 모두 여호와께로부터 말씀을 받아서 예언한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며 허탄한 것과 거짓된 점괘(앞장에서는 허탄한 묵시와 아첨하는 복술이라고 함 12:14)를 말하면서 사람의 영혼을 사냥하고 백성들 가운데서 여호와를 욕되게 한 이들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이들에게 화를 선언하시고 모두 쳐서 멸하시되 여호와의 백성은 그들의 손에서 건져 내실 것을 동시에 말씀하십니다. 


# 참 예언과 거짓 예언

구약성경에서 ‘나비’라고 하는 온갖 종류의 다양한 예언자들이 있습니다. 이들 중 많은 경우 점쟁이같은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만큼 점치는 기술도 많습니다. 자연현상, 짐승의 내장의 모양으로 특히나 간의 모양, 색갈 굳은 정도등의 미세한 부분들을 가지고 점을 치거나, 내장의 흩어진 모습을 가지고 통계를 갖고 점을 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는 안되는 것들로 철저하게 정죄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점을 치는 일들이 이스라엘 가운데 장소를 불문하고 많은 공간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성경의 예언과 점괘를 보는 것은 동일하게 미래의 일에 대해서 말한다는 데 유사점이 있습니다. 예언은 대언의 의미(預言)이 많이 쓰이고 미래의 일을 말하는 예언(豫言)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방 종교에서 점괘를 보는 것은 운명론적이거나 결정론적으로서 그 일은 기계적으로 반드시 이루어지는 일로 피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예언은 동일하게 미래의 일을 말하지만 그 시와 때에 대한 임박함등에 대해서 강조하기는 하지만 결정론적으로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미리 예언을 통해서 경고하시는 것은 예언을 듣는 이들이 그런 예언을 하시는 분의 의도를 파악하고 미리 경고해 준대로 준비하고 고치고 합당하게 반응하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반응하느냐, 어떻게 준비하고 돌이키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여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기계적으로 결정론적인가 아닌가에 대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합법적이든 그렇지 않은 수많은 곳에서 온갖 종류의 다양한 이들이 예언을 하는데 이 예언들 중에서 참 예언과 거짓 예언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대두됩니다. 에스겔과 예레미야를 보면 오히려 참된 예언이 더 거절되었고 비현실적으로 보이며 많은 상식적이지도 합당하다 할 수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거짓 예언자들의 이야기가 더 희망적이고 믿음이 있어 보이고 듣기에도 좋고 듣고 싶은 이야기들이었기에 참과 거짓을 판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인간의 말인지 분별하기가 어렵습니다. 모두가 다 성경을 이야기한다하는데 그에 대한 해석은 판이하게 다릅니다. 그렇게 다르다고 해서 다 틀리다 할 수도 없고, 그런다고 또 다 맞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문제는 이러한 문제가 너무 심해져서 예언을 믿을 수 없게 되고, 어느것이 참된 예언인지 거짓 예언인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예언을 신뢰할 수 없으니 결국 예언이 쇠태하고 오히려 점을 치는 일들이 더 많이지게 됩니다. 이 가운데서 참된 예언의 전통은 문서로만 살아 남게 됩니다. 

에스겔은 1차 유배에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예언을 한 사람입니다. 그의 예언을 듣는 사람들은 이미 고국을 잃고 가족과 흩어지며 가까운 사람들을 잃고 멀리 타국으로 끌려온 상처받은 이들이었습니다. 이들의 상처가 결코 가볍지 않고 죽기 일보직전의 심각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이들에게 필요한 예언은 위로의 말일 것입니다. 그런데 에스겔이 지금 전해야 하는 예언들은 위로가 필요한 것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이전에 경험한 것보다 더 심각한 재난 곧 예루살렘이 여호와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멸망한다는 것을 전해야 했습니다. 이전에도 하나님이 치셨는데 또 친다고 그리고 포로된 그들에게 유일한 소망이었던 예루살렘이 완전히 멸망하게 된다는 예언은 도저히 믿을 수도, 믿고 싶지도 않은 예언으로 상처받은 이들을 절망하고 좌절하며 생명을 포기하게 만드는 예언이었습니다. 

예레미야도 하나니와의 대결에서 이런 아이러니 속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 전한다고 하지만 자신이 예언한 일을 막고 싶었고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길 바랬습니다. 백성들도 듣기를 거부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계속 유다의 멸망을 예언하라고 하고 안할 수 없이 속에서 뜨겁게 하니 하기 싫어도 말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니에게는 자신도 하나니의 말처럼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간 이들에게 편지를 써서 유배기간이 길어질 것이기에 유배지에서 결혼하고 잘 살아라 합니다. 하지만 거짓 예언자들은 유배기간이 길지 않고 곧 돌아올 것이라고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또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요?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 상처받은 이들에게 더 힘든 일이 있고 급기야 죽을 수도 있다는 이 절망적인 예언을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겠는가? 이렇게 무엇이 참된 예언인지 거짓 예언인지 분별할 수 없는 상태에서 전하는 자나 듣고 분별하지 못하는 이들 모두에게 책임을 묻습니다. 에스겔서에서 계속 거짓 예언자들이 한 예언을 허탄한 묵시(듣기 좋은 말)와 아첨하는 복술(듣고 싶어하는 말)이라고 말합니다. 무엇이 정말 우리가 들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께서 말씀하고자 하시는 참된 예언일까요? 

사실 예언하는 자는 압니다. 자신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보고 대언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그리고 사실 듣는 사람도 정말 들어야 할 말씀인지 아닌지 대부분 스스로 압니다. 다만 애써 자신의 탐욕을 가리고 귀에 거슬리고 불편하기에 자꾸만 합리화하고 부인하다가 결국 거짓에 익숙해지고 급기야 분별할 수 없는 지경에 처해서 눈과 귀가 둔해지고 급기야 마음이 강퍅해져 버리는 것이 아닐까요?

참고 구절 : 신 18:14-22; 13:2-4; 왕상 13장; 22장; 렘 23장; 28장; 겔 13장; 미 3:5-8 


# 1-8절 여호와께서는 자기 마음대로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한 어리석은 선지자들에게 화를 선포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에스겔에게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는 자들에게 경고의 예언을 하며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하십니다. 그들은 본 것이 없이 예언했고,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는 어리석은 자들이었고,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 점괘를 말하는 자들이었고, 여호와께서 보내지 않았음에도 여호와의 말씀을이라고 선포한 이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이들을 황무지의 여우(재칼)같은 자들이며, 성벽이 무너졌는데도 그 위험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고, 평강이 없음에도 평강을 외치며 담에 회칠한 자들이라고 그들이 행태와 관련해서 고발하십니다. 

*

거짓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신탁이 없었는데도 자기들 마음대로 말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라 하고,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이나 듣기 좋아하는 말들을 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황무지의 여우같이 자기 이익만을 위해 예언했고, 버젓이 성벽이 무너져 위험한 상황인데도 위험을 예고하지 않고 평강이 없는데도 평강을 외칩니다. 기만이며 거짓이고, 위증이며 심히 가증한 일입니다. 탐욕스럽고 교활하며, 비도덕적이고 자신들 뿐 아니라 백성들을 영적 파탄에 빠지게 하는 자들입니다. 그런 거짓 예언을 하는 이들도 문제고, 그런 예언에 귀가 솔깃하여 분별하지 못하고 혹세무민하는 말에 부화뇌동하는 이들도 문제입니다. 이들을 향한 여호와의 분노는 결국 이들을 치게 됩니다. 

*

오늘 말씀을 맡은자요, 또한 말씀을 묵상하는 자로서도 이러한 경고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주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지도 않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안다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고 말하는 것은 철저한 기만이며 거짓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들려주시고 가르쳐주시는 만큼 즉 계시해 주시는 만큼 우리는 보고 듣고 깨닫고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통로를 통하지 않고서 우리가 알고 만든 것이 바로 가증한 우상 곧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이라 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디 우리가 듣기 좋고, 듣고 싶어하는 말씀만 찾고 들으려 하지 말고, 부디 주님이 우리에게 하실 말씀을, 내가 아닌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말씀을 가감없이 듣고 읽고 묵상하길 힘써야 하겠습니다. 


# 9-16절 여호와께서는 허탄한 묵시와 거짓 것을 점치며 평강이 없으나 평강의 묵시를 보았다 하는 선지자들을 치십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 것을 점쳤으니 여호와께서 직접 그들을 쳐서 내 백성의 공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 여호와로부터 단절할 것이며, 이스라엘 족속의 호적에도 기록되지 못하게 하여 공동체로부터 단절하고, 이스라엘 땅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여 그 뿌리로부터도 단절하실 것이라 삼중 징벌을 선포하십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들이 백성들을 혹세무민하여 평강이 없으나 평강이 있다하고 무너질 담에 회칠하며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듣기 좋은 말, 헛된 희망을 품게 하는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는 결국 이렇게 회칠한 담을 허실 것입니다. 백성들도 거짓 예언자들도 서로 이기적으로 공생하면서 값싼 위로를 즐겼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 여호와께서 분노하여 폭풍과 폭우와 우박덩어리를 내려 무너뜨려 그들을 망하게 할 것입니다. 

*

거짓 선지자들의 거짓 예언에 대한 심판은 그들을 여호와와 공동체와 뿌리로부터 단절되게 하는 것입니다. 더이상 돌이킬 수 있는 여지도, 여호와의 회에 들어올 기회도, 그리고 다시 시작할 수도 없게 끊어 버리실 것입니다. 이들의 거짓 예언이 결국 백성을 병들게하고 급기야 백성들도 이들과 공생 하면서 헛된 탐욕과 희망으로 사상누각 위에서 무너져가는 줄도 모르고 함께 멸망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상누각은 결국 폭우와 우박과 푹풍이 몰아치면, 비가 나고 창수가 나면 모두다 무너져 버릴 것인데 것인데 거짓 예언자들이 한 모든 것들이 동일한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이 사상누각이라 했는데 결국 하나님께 받지도 않고 듣지도 않고 보지도 않았으면서 자신들 마음대로 거짓되고 허탄한 예언을 한 이들도 동일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심판이 임박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그래서 여호와께서 평강을 거두셨는데도 불구하고 이들은 평강의 묵시를 보았다 하면서 예루살렘이 망하지 않는다고 지켜질 것이라고 여호와께서 구원할 것이라고 거짓된 평강을 외친 것 때문입니다. 

*

행함이 없는 믿음, 묵상 없는 신앙, 믿음과 행함이 일치 하지 않은 삶,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은 소망, 거짓된 사랑, 언행 불일치, 믿음과 앎과 행함의 불일치 모두다 사상누각입니다. 이러한 신앙으로는 결코 여호와의 회중에 들지 못하며, 주의 나라에 거하지 못하고, 천국 잔치를 맛볼 수도 없으며, 주님의 몸된 성전으로 온전하게 설 수 없습니다. 부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써야겠습니다(딤전 2:15)


# 17-23절 여호와께서는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며 사람의 영혼을 사냥하는 여자들에게 화를 선포하십니다. 

백성 중에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는 여인들에 대해서 계속 경고하십니다. 이들은 사람의 영혼을 사냥하려고 부적을 만들고 수건을 만드는 이들입니다. 이들은 두어 웅큼 보리와 조각 떡을 위해 여호와를 백성 가운데 욕되게 하고, 거짓말을 곧이 듣는 백성에게 거짓말을 지어내어 죽지 않을 영혼을 죽이고, 살리지 말아야 할 영혼을 살리는 일을 서슴지 않습니다. 이들을 심판하시되 영혼을 사냥하는 부적을 떼어내고 사로잡은 영혼들을 놓아주고, 수건을 찢고 백성들을 구원하여 다시는 사냥물이 되지 않게 하실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의인을 거짓말로 근심하게 하고, 악인의 손을 굳게 하여 그 악한 길에서 떠나지 못하게 했으니 다시는 하탄한 묵시와 점복을 보고 듣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

여기서 언급된 여인들은 여호와 종교 안에서 바벨론의 이교적 요소들을 수용하려는 혼합주의 사제들로 보입니다. 또한 부적이나 수건등은 이교적 주술이나 마법을 사용해서 치료행위에 종사하는 이들로 보입니다. 그래서 자칭 이스라엘에서 의사의 역할을 한 이들로 보입니다. 주로 악한 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몸에 부탁하는 부적이나 치료 행위를 하는 띠와 수건등의 도구로 주술행위를 한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을 하는 목적이 자신들의 생계유지의 방편으로 행한 여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거짓말로 죽어서는 안될 사람을 죽게하고, 살아서는 안될 사람을 살리는 자들이었습니다. 또한 거짓말로 의임을 낙담하게 하고, 악인에게는 용기를 북돋아주는 자들이기도 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러한 이들을 향하여 분노하시고 그들의 모든 것들을 다 떼어내고 찢어 버리시고 다시는 허탄한 묵시와 점복을 행하지 목하게 하시고, 그들에게 미혹된 백성들을 구원해 내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

자신의 생계 유지를 위해서 주술과 복술을 행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기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 목회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위로와 치료 뿐 아니라 돈을 받고 말씀을 전하고, 탐욕을 채우기 위해 얼마든지 거짓 말도 서슴지 않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을 미혹하고 병들게하고 영적으로 무감각하게하고 죽음으로까지 내어 몰게 됩니다. 

지금도 연약한 영혼들을 미혹하며 거짓된 치유와 주술적 행위들이 버젓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살아계신 하나님보다 사람을 의지하게하고 주님의 제자가 아니라 자신의 제자로 만들어 멸망의 길로 인도하면서도 그런 신앙이 충성된 일꾼인양 호도하고 거짓된 말과 헛된 소망으로 기만하면서 많은 이들을 결국 사망의 길로 가게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있는 이들도 모르고, 또 그런 이들을 비판하면서도 결국 그렇게 많은 이들이 모인 것을 좋아하면서 그렇게 되고 싶은 탐욕으로 몸부림 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결코 우리와 멀지 않습니다. 지금 나는 과연 이러한 묵시와 심판 앞에 얼마나 자유로울까요?


# 거둠의 기도

거짓 예언자들을 경고하며 심판을 선언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 받은 말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말씀을 보고 들은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 맘대로 내 뜻대로 어리석게 말씀을 전한 일이 있거든

주의 긍휼하심 앞에 감히 용서를 구합니다.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고, 듣기 좋아하는 말을 하기 위해서

거짓 것을 점치고 거지된 말씀을 전하는 일이 있었다면

이 또한 주의 긍휼을 구합니다. 

여호와의 회중에서, 주의 나라에서 버리지 마옵소서. 

백성을 미혹하고, 헛된 평강을 외치지 않게 하옵소서. 

언행일치, 신행일치된 믿음으로 사상누각을 세우지 말고

어떤 풍파가 밀려와도 흔들리지 않는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게 하옵소서. 

주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깨닫고 

그렇게 주님이 주신 것을 가감하지 않고 전하는 종이게 하옵소서. 

그 말씀을 또한 가감하지 않고 순종하는 종이게 하옵소서. 

거짓된 주술과 점괘로 미혹하거나 미혹되지 않게 하옵시며

고작 생계를 위해 말씀을 장사하거나 도둑질 하지 않게 하옵소서. 

살릴 영혼을 살리되 부디 살려야 할 영혼을 병들고 죽게 하는 

사망의 길로 행하지 않게 하옵소서. 

의인으로 평강의 길로 행하도록 인도하며

악인으로 악한 길에서 돌이키도록 예언하고

다시는 허탄한 묵시와 점복에 미혹되거나 눈멀지 않게 하옵소서. 

주께서 건져 구원하심의 손길을 간절히 바라오며

오직 여호와가 하나님인줄 알고 이 하루도 

참과 거짓을 옳게 분별하며 진리의 길로 행하는

지혜로운 자의 길, 의인의 길, 복있는 자의 길로 행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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