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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Jul 28. 2019

에스겔 12:17-28 여호와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

에스겔 12:17-28

에스겔 12:17-28 여호와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이스라엘의 범죄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심판하심으로 말미암아 유배를 가게 된 이후의 처참한 상황에 대한 모습을 에스겔의 퍼포먼스 통해 보여주십니다. 떨며 음식을 먹고 놀라고 근심하며 물을 마시는 모습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포악 때문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예언에 대하여 날이 더디고 허탄한 묵시와 아첨하는 복술이 있지만, 결국 여호와의 묵시가 반드시 이루어지리라는 것과, 그것이 결코 오래지 않아 이루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 17-20절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포악으로 말미암아 그 땅을 황폐하게 하실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에스겔에게 떨면서 음식을 먹고 놀라고 근심하면서 물을 마시는 퍼포먼스를 하면서 예루살렘 주민과 이스라엘이 그렇게 비참한 모습을 살게 되는 이유는 모든 주민들의 포악으로 말미암음 때문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유배되고 결국 남아 있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성읍이 황폐하게 되고 땅이 적막하게 될 것임을 분명하게 말슴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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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퍼포먼스는 유배지로 끌려가는 포로된 모습으로 음식과 물을 먹는 모습처럼 보입니다. 동시에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이들이 굶주림 속에서 제대로 먹을 것을 먹지 못하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음식과 물을 제대로 공급받지도 못하고 또한 편히 먹지도 못합니다. 떨면서 먹고, 놀라면서 먹고, 근심하면서 마시게 되니 제대로 소화될리도 만무하고 생명을 유지하기도 어려운 모습입니다. 

이렇게 유배되는 이유는 이스라엘 땅 모든 주민의 포악이 이 땅 가득하여 황폐하게 된 것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 땅에 가득한 포악은 결국 이스라엘이 종교 제의적으로 예배를 덜 드린다거나 재물이 부족하다거나 종교적으로 뭔가가 정성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물론 이러한 행위들 자체를 부인한 것은 아니지만 여호와께서 절망로 중요하게 여기시며 강조하시는 것은 결국 거룩한 백성들이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따라 함께 세워져가며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며 정의를 이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러한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기대와는 달리 가난하고 약한 자들 곧 소외된 이들을 착취하고 노예로 삼고 자신들에게 가진 힘을 남용하며 기고만장했습니다. 결국 정의와 공평이 무너지고 약육강식과 힘, 그리고 폭력이 정당화되고 지배사상이 되는 형국입니다. 앞서서는 이러한 일들이 가증한 일 곧 우상숭배와도 연관됨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 땅을 마침내 심판하시고 황폐하게 되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심판을 당하고 땅이 황폐하고 적막하게 된 후에야 이 모든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분이 여호와임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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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하나님께서 분노하시는 것은 우리 삶의 내용들이 포악으로 가득할 때입니다. 종교적 제의의 화려함 이면 은밀한 곳에서, 그리고 삶의 자리에서 냄새나고 부정하고 불의한 세상의 가치와 흐름을 따라 폭력과 무력으로 군림하려하고 사랑해야 할 이들을 오히려 이용하고 죽이며, 잘 다스려야 할 물질을 오히려 숭배하면서 사람보다 돈이 더 중하다 여기고, 버젓이 문제가 되는 일들에 대해서도 철면피처럼 살며 들이대는 일들이 허다할 때 여호와께서는 분노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신앙 여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기본적인 최소한의 종교적 행위들은 때로 우리의 신앙을 교육받아 성숙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말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듣고 보고 배우고 품고 묵상한 대로 우리가 정말 살고 자라고 열매 맺어야 하는 것은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패역하고 불의한 세상 한 복판에서 밀알이 되고, 소금이 되고, 빛이 되는 것은 철저한 자기 부인과 희생 급기야 죽음으로까지 이어지는 것들입니다.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은 성령의 도우심과 더불어 우리가 그런 놀라운 사랑을 이미 받았기 때문입니다.  


# 21-25절 여호와께서는 허탄한 묵시와 아첨하는 복술이 다시 있지 못하게 하실 것입니다. 

여호와의 묵시가 계속 전해짐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심판의 날은 아직 멀었고, 경고의 묵시들 또한 사라지고 자신들과 상관 없을 것이라고 하며 안일하게 생각합니다. 이에 여호와께서는 날과 모든 묵시를 응하게 하므로 이 속담들을 다시는 이스라엘 가운데 사용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 중에서 허탄한 묵시나 아첨하는 복술들이 있지 못하게 하실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더 나아가 다시는 더디지 않고 이 묵시가 응하게 되고 반역하고 있는 족속들이 생전에 이루어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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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의 예언은 완악하고 강퍅한 이들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에스겔이 예언을 시작한(593년 즈음) 이후로 예루살렘이 멸망한 시점까지(587년)는 그리 오랜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에스겔은 긴박한 마음으로 심판을 이야기했지만 하지만 사람들은 에스겔의 묵시에 응답이 없다고 하면서 그것이 사실이냐 아니냐만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들은 왜 하나님께서 이러한 심판에 대한 묵시를 주시는지에 대한 이유와 뜻에는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묵시를 헛된 것이라 하고 ‘날이 더디고 모든 묵시가 사라지리라’하면서 무시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러한 완악한 이들의 속담을 다시는 사용할 수 없게 되리라 경고하면서 다시금 에스겔에게 그 날과 모든 묵시가 이루어 질 날이 가까웠다는 것을 다시 전하게 합니다. 그래서 그들 중에서 허탄한 묵시나 아첨하는 복술 즉 에스겔의 묵시와는 반대로 이스라엘은 결코 성전이 있기에 멸망하지 않는다는 것과 누가 와도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아첨하는 복술이 다시 있지 못하게 하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은 구약과 신약 모두에서 날과 시를 정확하게 언급하지 않습니다. 예언자들은 임박함과 멸망의 문턱에 와 있다는 것 외에 말해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과 즉각적인 뭔가가 이루어지길 바라며 허탄한 묵시와 아첨하는 복술에 기대며 살아갑니다. 

이에 여호와께서는 다시금 말씀하시기를 다시는 더디지 아니하고 응할 것이며, 반역하는 족속들의 생전에 말하고 이루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예언 선포의 결과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경고하실 때에 그 내용의 진위여부나 성취여부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더 고려해야 하는 것은 왜 그러한 경고를 주느냐는 것입니다. 적어도 하나님은 애정을 갖고 불의한 우리들을 포기하지 않으시면서 돌이키실 것을 바라며 말씀하시는대도 우리는 그런 말씀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더욱 우리 자신의 잘못된 모습들과 불의한 모습들은 생각지 않고 메시지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평가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급기야 그 말씀들을 무시하고 듣기 좋은 말(허탄한 묵시)이나 자기가 듣고 싶어하는 말(아첨하는 복술)을 하는 설교와 말씀만을 탐닉합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도우셔야만 말씀에 대해 바르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허탄한 묵시나 아첨하는 복술같은 말씀에만 귀를 기울이면서 정작 우리를 바르게하고 온전케 하는 말씀에는 귀를 닫고 오히려 그런 말하는 이들의 입을 막고 무시하고 조롱합니다. 경고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니 그런 일은 나와 상관이 없다고 하는 안일한 만족에 빠져서 무시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반드시 이룬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우리를 빚으시는 그 말씀을 잘 분별하고 온전히 받아 나와 우리 공동체를 위한 말씀으로 받아 스스로를 진단하고 온전케 하는 말씀으로 수용해서 먹고 변화되어 갈 수 있길 원합니다. 


# 26-28절 여호와께서는 그의 묵시가 더디지 않게 반드시 이루어지게 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또 에스겔이 전하는 묵시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먼 훗날의 일이라 생각하고, 이러한 묵시 또한 멀리 있어서 자신들과 무관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여호와께서는 이 말씀이 결코 더디지 않을 것이며, 말씀하신대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강조하십니다. 

*

이스라엘은 또 에스겔의 묵시가 임박한 심판에 대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참 후에 일어날 미래의 일이니 자신들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앞서는 가까운 미래를 이야기 했을 때는 당장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믿지 않았고, 이번에는 그 말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쳐도 자신들의 시대에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부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나 저러나 결국 묵시를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씀을 자꾸만 왜곡해 갑니다. 이에 여호와께서는 예언된 말씀이 하나도 더디지 않을 것이며 말씀대로 다 이루어지지라고 다시한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사람이 있는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들이지만, 그것이 나에게 직접 주시는 말씀은 아니라며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시대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하고, 자신과 무관한 말씀이라 하고, 자꾸만 나를 향하신 그 말씀을 왜곡하고 피하고 외면하며 요리조리 피해갑니다. 멸망을 앞둔 이스라엘의 이러한 의심과 불평과 냉소와 비판적인 모습들, 그리고 성급하고 섣부른 판단들은 어떻게 해서든 예언된 말씀들을 무시하며 피하고 듣지 않으려 했으며 듣기 좋은 말이나 듣고 싶어하는 복술을 더 좋아했습니다. 

어쩌면 지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하는 말씀, 달콤한 말씀, 탐욕을 부추기고 세상의 성공을 약속하는 말씀, 좋은게 좋은 것이라 하면서 우리의 부족함과 부정을 도려내는 아픈 말보다는 속이 곪아 썩어져도 덮고 가자하면서 겉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말씀, 번영의 말씀, 그래서 우리 입에 단 것만 들으려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그 말씀을 나를 빚으시고 온전케 하시는 생명의 말씀으로 먹고, 그 말씀을 주신 주님의 뜻을 따라 합당하게 반응하면서, 왜 그런 말씀을 주셨는지 되새겨보고 반추하며 나를 비춰보면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길 원합니다. 


# 거둠의 기도

우리를 말씀으로 빚으시고 이끄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 삶에 만연된 포악함들이 있음으로 고백합니다. 

주께서 사랑으로 섬기고 나누며 돌보라 한 이웃을

오히려 착취하고 유린하고 미워하며

우리 자신의 탐욕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정작 이웃의 아픔은 외면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런 날이 오래일 것이라 착각하면서

우리게 전해주신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았던 일을 회개합니다. 

또 주님의 말씀이 더디 이루어진다고 

그 말씀의 진위를 의심하면서 결국 무시하고 외면하며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는 일을 게을리 했음을 고백합니다. 

설령 그 말씀을 묵상하면서도

듣고 싶어하는 말씀, 듣기에 좋은 것만 취하고

우리를 온전케 빚으시는 쓰고 아픈 말씀은

애써 외면하고 귀를 다고 피하려 했던 점도 있었습니다. 

우리와 상관없고 아직 먼 미래의 일이며

당장 눈에 보이는 현상과 결과에 휩쓸려

약속과 생명의 말씀에는 

철저하게 소홀했음을 또한 고백합니다. 

주의 말씀은 일점 일획이라도 딸에 떨어지지 않고

반드시 이루리라는 그 말씀을 잊은채

말씀을 난도질하고, 취사선택하고

무시하고 외면하고 소홀히 여기며

생명 아닌 것에, 헛된 묵시와

아첨하는 복술에 더 귀를 기울였던 삶을 고백합니다. 

이제 다시 그 말씀 앞에 서게 하옵시며

그 말씀에 귀 기울이고, 

가감하지 않으며, 통채로 먹고

온전히 빚어지는 일을 날마다 쉬지 않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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