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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Aug 11. 2019

에스겔 20:27-39 불순종의 역사에 대한 심판  이

에스겔 20:27-39

에스겔 20:27-39 불순종의 역사에 대한 심판

이스라엘의 불순종의 역사는 약속의 땅에서도 그리고 바벨론 유배중에도 계속 진행됩니다. 약속의 땅에서는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고 바벨론에서는 조상들을 따라 가증한 일로 행음합니다. 결국 장로들이 기대한 신탁은 나오지 않고 이스라엘은 사로잡혀 가지만 여호와께서는 친히 왕이 되셔서 언약을 따라 새출애굽을 단행하십니다. 하지만 반역하는 자와 범죄하는 자들은 구별되어 새출애굽에서 제외되고 유기됩니다.  

# 27-29절 여호와께서는 약속의 땅을 허락하셨으나 이스라엘은 산당 제사로 불순종합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욕되게 한 것은 약속의 땅에서도 이어졌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약속대로 신실하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높은 산과 무성한 나무를 보고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분노하게 하는 제물을 올리고, 분향하며 전제물을 부어드립니다. 이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길 산당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나 알고 그러는지 아느냐고 하십니다.
*
애굽에서의 우상숭배, 광야에서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인도하신 것은 이스라엘의 회개와 순종으로 인함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진즉 버려져도 할 말이 없었지만 여호와께서 당신의 이름이 더렵혀지지 않게 하시기 위해서 참으시고 여기까지 인도하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줄도 모르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배은망덕하게도 이스라엘은 그들의 눈을 허탄한 곳에 굴복하고 맙니다.
높은 산과 무성한 나무를 보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그것들을 더 두려워하고 신령하다 생각하면서 가나안의 문화에 굴복하여 그런 것들을 향하여 제사를 드립니다. 가나안은 이러한 곳들마다 산당들이 있었고 그곳에서 우상을 숭배하는 일이 진행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곳에서 제사하고 분향하고 제물을 드리면서 처음에는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점점 그들은 혼합주의 신앙에 물들어가고 마침내 여호와가 우상을 구분하지 못하고 자신들에게 풍요를 가져다 줄 신은 광야의 신이 아니라 가나안의 신이라 생각하면서 욕망을 성취해줄 우상에게 제사와 제물과 분향을 진행한 것입니다.
*
우리가 지금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 백성이 되고 구원받은 것은 우리의 열심과 공덕과 믿음 때문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예정과 택하심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자격없는 우리를 택하사 구원하셔서 약속의 땅 곧 하나님의 나라에 거하게 하신 것은 이제부터라도 순종하는 백성으로 거룩한 백성으로 살라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은혜입니다. 하지만 그런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허탄한 데 굴복하여 하나님 아닌 것들이 우리를 부요케하고 살려줄 것이라고 생각하며 탐욕에 이끌려 우상을 섬기는 일을 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배은망덕한 행위입니다. 지금 우리가 드리는 제사와 제물 그리고 분향과 전제물들은 과연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따라 드려지고 살아내는 거룩한 산제물인가요, 아니면 우리의 탐욕을 따라 욕망에 이끌려 살아가는 삶인가요?


# 30-31절 여호와께서는 신실하게 행하셨으나 이스라엘은 여전히 행음하며 불순종합니다.
이스라엘은 결국 그들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가게 됩니다. 하지만 지금 에스겔이 예언하고 있는 유배지에서도 그들은 조상들의 풍송을 따라 자신들을 더럽히고, 가증한 것을 따라 행음합니다. 심지어 자녀들을 불가운데 지나게 하고, 거룩해야 할 삶이 우상으로 더럽혀지는데도 그러한 삶으로 점철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죄악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은 관계의 단절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부르짖어도 응답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
바벨론 유수는 비록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 예루살렘이 무너지긴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고, 언약을 따라 남은 자들을 통해 여전히 하나님의 나라를 이뤄 가시는 여정 가운데 더럽혀진 땅을 정화하고, 더불어 남은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모든 부정한 문화들을 버리고 온전히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을 훈련하는 광야와 같은 연단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동안 철저하게 조상탓하지 않으면서 조상들의 잘못된 전철을 따르지 않도록 역사를 바르게 이해하고, 조상들이 행한 풍속을 따라 자신들을 더럽히거나 가증한 것으로 행음하지 않도록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유배지에서도 그들은 조상들의 잘못된 풍속을 버리지 못하고 정화되어야 할 삶을 더럽히며 조상들이 한 대로 모든 가증한 것들을 따라 행음합니다. 거기에는 바벨론에서 만난 온갖 우상문화와도 혼합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곳의 화려한 문화에 압되어 가나안보다 더한 행위로 보여집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인신 제사 곧 자녀들을 불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우상숭배로 거룩해야 할 자신들을 씻을 수 없는 죄악으로 더럽혀 버리고 맙니다.
이러한 죄악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은 관계의 단절입니다. 그들은 두 마음을 품었고, 가증한 우상과 탐욕에 사로잡혀 있고, 자신들이 듣고 싶고 갖고 싶고 이루고 싶은 것에만 관심을 갖고 있으며, 정작 듣고 알아야 할 하나님의 뜻에는 귀를 닫습니다. 그러다 하나님이 필요하다 싶으면 와서 기웃거리며 묻습니다. 지금 유배지에서 이제 풍전등화 같은 이스라엘의 신탁을 묻는 장로들을 향하여서도 결국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하지 않으십니다. 아니 아예 귀를 닫으시고 말씀하시지 않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가만 보면 여호와께서 응답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이스라엘이 귀를 닫고, 마음을 닫고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은 더이상 응답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
18장에서 분명히 자신의 죄로 죽는 것이지 조상탓 할 수 없다고 분명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비록 아버지가 범죄했어도 자녀가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순종의 삶을 살아가면 살 수 있다고 했고, 아버지가 의롭게 살아도 자녀가 그렇지 않으면 심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유배지에 있는 이스라엘은 조상들의 잘못된 전철을 밟지 않고 철저하게 새백성의 길을 가기 위해 힘써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유배지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기대와는 달리 조상들의 풍속을 따르고 하지 말아야 할 인신공양까지 서슴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탐욕을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의 문화에 휩쓸려 살다보면 결국 우리도 탐욕의 노예가 됩니다. 욕망에 사로잡힌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자녀를 희생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하고, 자녀들도 그런 경쟁에 뒤쳐지지 않으려면 얼마든지 신앙과 무관하게,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한 방식과 가치관을 따라 살도록 방치하거나 강요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우리의 잘못된 신앙은 결국 우리 자신 뿐 아니라 우리의 자녀들까지 가증한 우상의 노예로 살아가도록 강요하게 있는지도 모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정결하게 살아가야 할 우리들이 결국 욕망으로 점철된 우상으로 더럽혀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결과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은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입니다.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동안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서 애굽으로부터 시작하여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으로 오는 동안내내 비로 그들은 우상숭배로 점철된 인생을 살았지만 모세의 중보로 부터 시작하여 많은 의인들이 여호와께 기도하고, 또 이스라엘도 경각간에 부르짖어 부르짖으면 여호와께서는 응답하여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다시금 속아주시고 용서해 주시고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나라가 망하고 유배지까지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악용하면서 끝까지 불순종으로 일관한 이들을 향하여 이제는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닫으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여전히 하나님보다 이스라엘이 눈과 귀를 닫고 있고 자기들의 욕망을 따라 듣고 싶어하는 것만 들으려 하기에 하나님이 단절하시는 것으로 생각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은 그렇게 하시지만 여전히 그 눈과 귀와 손을 거두지 아니하시고 다시금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고 계신 것입니다.


# 32-39절 여호와께서는 새출애굽을 단행하시지만 불순종한 이들은 유기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응답해 주시지 않자 이들은 급기야 이방인처럼 되어서 우상을 섬겨야 하는거 아니냐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그런 그들의 마음에 품은 뜻을 아시고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에스겔을 통해서 다시금 응답해 주고 계십니다. 여호와께서는 새출애굽을 단행하시며 심판을 하되 옥석을 가려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여전히 반역하고 범죄하는 이들은 새출애굽에서 제외되고 다시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끝까지 불순종하려거든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유기하십니다.
*
하나님의 본심을 헤아리지 못하는 이스라엘은 급기야 패역한 생각을 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불순종하고 결국 심판을 받는 역사라고 한다면 이방 나라와 다른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결국 똑같이 되었으니 그들처럼 우리도 더이상 희망이 없고 끝났으니 하나님을 섬길 필요가 없고 우상숭배나 해야 하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을 품게 된 것입니다(32절).
장로들은 에스겔을 통해서 587년에 있을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신탁을 듣고 싶어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구속사처럼 하나님께서 이번에도 자신들을 구속해 주시지 않을까 하는 신탁을 기대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에스겔은 통해 들려진 신탁은 이제 이스라엘은 심판을 받고(33-35절은 여호와의 분노로 여러나라와 지방으로 흩어지게 되는 것을 전제로 한 것으로 보아 이스라엘은 심판을 받아 587년에 멸망하고 흩어지는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광야로 가게 되고 그 중에서 다 구원하시지 않고 신실한자, 계명을 지키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구별하여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뉩니다.
약속의 땅에서는 여호와께서 친히 왕이 되셔서 다스리겠지만 광야에서 걸러진 자들은 광야에서 그들이 하고 싶은대로 방치하고 유기하십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이방인처럼 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상숭배하지 말라고 하고,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고 하십니다.
*
위기의 순간에 여호와께 찾아가지만 이미 이들의 어두운 눈과 귀는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욕망과 바램을 관철 시키는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분노를 쏟고 능하신 손을 들어 친히 왕으로서 열방을 다스릴 것과 심판 이후에 흩어진 백성들을 다시 모아서 인도하고 광야에서 연단하고 걸러 택하신 백성들만 다시 새 백성으로 세우시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가십니다. 우리는 지금 이 광야에 있습니다. 이곳에서 우리가 배우고 알아야 하는 것은 오직 여호와가 하나님이신 것과 우리를 비롯하여 모든 나라의 생사화복과 흥망성쇠가 주의 손에 달려 있으며, 우리가 행한대로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과, 끝까지 순종하는 자들은 약속의 땅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출애굽한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고, 지금 광야학교 곧 종말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고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유기되는 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부디 이 광야학교에서 우리가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순종하며 살아갈 거룩한 백성의 길을 제대로 배우고 훈련하며 합당하게 반응할 수 있기를, 그래서 약속의 땅에 온전히 거할 수 있길 원합니다.


# 거둠의 기도
약속에 신실하시며
우리를 거룩한 나라의 백성으로 인도하사
거룩한 백성으로 거룩한 삶을 살게 하여 주신 하나님 아버지
지금 천국 백성 된 것이 전적인 주의 은혜로 된 것임을 알고
합당한 경배와 산제물됨과 거룩함으로 주께 열납되길 원합니다.
우리의 욕망을 따라 주님을 분노케 하는
부정하고 불의한 예배로 점철되지 않게 하옵소서.
세상의 부정한 풍속을 따라 휩쓸리지 않으며
가증한 것들에 마음을 빼앗겨 행음하지 않게 하옵시며
우리의 자녀들을 허탄한데 빠지지 않게하고
우리의 욕망의 산물로 취급하지 말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자녀로 양육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듣고 싶어하는 말이 아니라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에 귀 기울이고
주님과의 관계를 즐거워하며
주야로 주님과 즐거이 소통하는 복있는 자로
부족함 없이 살게 하옵소서.
헛된 세상의 문화에 휩쓸리지 않게 하옵시며
왕되신 주님의 통치와 인도와 뜻을 따라
우리를 택하시고 연단하시고 세워가시는 대로
온전히 순종하여 살게 하옵소서.
우리 삶에 반역과 범죄는 멀리하게 하여 주시고
날마다 주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여
거룩한 주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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