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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Jan 02. 2022

요한복음01:19-28 요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소리

요한복음01:19-28 

요한복음01:19-28 요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소리

증언자 세례 요한을 향한 보수 종교 기득권자들은 그의 정체성에 대해 세례와 연관하여 질문을 던집니다. 요한은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자신은 참 빛이 아님을 밝히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 곧 참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증언하는 소명을 중심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그는 참빛의 증인으로서 빛나는 사람입니다. 


# 본문 구성

요한복음 1장 19-51절은 앞으로 등장할 증인들의 증언을 요약해 줍니다. 물론 증거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소개하는 일도 잊지 않습니다. 1-18절이 새 집 혹은 새 성전, 신방의 설계도였다면, 19-51절은 집을 지으시는 목수와 집을 홍보하는 사람들을 소개하는 본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 이 장에서 살필 19-34절에서는 증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이고 선두격인 세례 요한이 소개되고, 35-51절에는 예수님의 첫 제자들이 등장합니다._<예수님을 알아가는 요한복음>_박대영_p78


19, 28절 유대지역(예루살렘)과 이방 지역(베다니)에서 세례요한은 증언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아 빛에 대하여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러 온 사명을 따라 요한은 빛되신 주님에 대하여 증언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요한의 증언과 메신저를 오해하여 오히려 요한이 누구인지 묻게 됩니다. 

왜 이들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서 질문하고 있을까요? 유대인(바리새인과 서기관)-예루살렘-제사장-레위인들, 이 네가지 민족-지명-직분-지파명에서 보여주는 것은 보수-선민-종교-성전의 기득권을 상징하는 것으로 현재의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표현들입니다. 새로운 빛에 대한 증언이 이들을 흔든 것으로 보입니다. 참 선지자의 등장으로 그동안 가려지고 돌출되지 않은 자신들의 문제나 한계가 드러날까 두려웠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한편으로 그런 상황에서 고대하던 메시아의 도래가 이미 온 것이 아닌가에 대한 불안한 생각도 사람을 보내게 된 동기로 보여집니다. 

지금 내가 믿고 따르고 살고 바라고 소망하며 확신하는 것은 과연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인지 아니면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편견속에 고착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그런 우리의 안일한 만족과 고착된 생각에 빛되신 주님의 말씀은 파장을 일으키고 우리 자신의 한계를 발견하게 합니다. 그렇게 우리의 실존과 한계를 깨달은 후라야 비로소 겸손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참 빛되신 주의 말씀 앞에 우리가 날마다 서야 하는 이유입니다. 

# 20-21절 나는 그리스도도, 엘리야도, 그 선지자도 아니다. 
종교지도자들은 메시아나, 종말적 선지자나 모세가 예언한 그 선지자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정작 세례요한을 보고 흔들려 분별하지 못하고 사람을 보내서 긴가민가 확인해 보고 있습니다. 자신들 스스로 나설 용기도 없고, 언제든지 부인하거나 발을 뺄 수 있을만큼만 진실에 접근하려고 하는 비겁하고 비열한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상황입니다. 

만일 분별력과 영적 감각이 있었다면, 그래서 정말 메시아가 온 것이라고 믿었다면 사람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직접 와서 물었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사람을 보낸 것은 메시아가 오시리라는 믿음도 없었을 뿐 아니라 메시아에 대한 합당한 반응도 부족했음을 보여줍니다. 

반면 요한은 자신이 누구인지도 알고, 자신의 역할도 알았으며, 이어 오실 그이가 누구인지도 알고 자신이 그 메시아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추종하고 몰려올 때 수많은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자신의 정체성과 지위를 망각하고 본분을 잃어버리고 말년에 흔들렸던 많은 이들이 있습니다. 사람을 보고, 그들의 환호와 추앙과 권력의 달콤한 유혹에 흔들리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신앙의 연륜과 교회의 직분의 무게가 더해 질수록 깊이 생각하고 예비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우러러보며 높일 때, 내게 과분한 칭찬과 찬사가 쏟아질 때, 단호하게 ‘나는 아니다' 하고 말함으로써 증인의 자리를 지켜야 할 것입니다.

# 22-23절 나는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
요한은 이사야서의 포로 귀환 곧 새출애굽에 관한 말씀을 인용하면서, 자신은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말합니다. 

주님이 오시는 길은 인간이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만들 수도 없습니다. 주님께 가는 길도 스스로 만들지 못하니 하나님이 오시는 길을 예비한다는 것은 어둠과 죄악과 죽음 가운데 살아가는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직접하시는 것입니다. 요한은 그래서 다만 자신은 그 일에 대해서 말하고 메시아의 도래에 대해 전하는 소리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광야 곧 불확실과 혼돈 속에 있는 땅이면서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그곳에서 메시아의 도래를 외치는 소리로서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분명하게 재확인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받은 우리에게도 주님은 부르시고 세우신 목적이 있음을 믿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확신 가운데 이 사명을 감당해 가야 할 것입니다. 

24-27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네 번째로 다시 요한에게 묻습니다. 그리스도도, 엘리야도 그 선지자도 아니라면 왜 세례를 베푸는지 말입니다. 여러번의 질문에 자신들이 원하는 답변이 나오지 않자 급기야 노골적으로 요한에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요한은 분명하게 답변하지 않지만 자신의 사명을 따라서 자신은 물로 세례를 줄 뿐이고,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신의 뒤에 오시는 그리스도께서 분명히 계심을 말하고, 자신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는 차이가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만 주님의 종일 뿐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말씀을 배우고, 전하고 가르치는 말씀을 맡은 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다가 자칫 말씀의 자리를 넘보며 내가 한 말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사람들이 착각하게 만들고 있진 않는지 돌아봅니다. 소리요 도구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는 순간 용서받을 수 없는 교만의 자리에 설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 거둠의 기도
우리를 부르신 주님
지금 우리가 가진 신앙과 삶의 의미와 방향과 목적이 

주님의 뜻에 합당한지 점검케 하시고,
나를 부르신 그 뜻에 대해서 사명을 완수하는 날까지 

흔들리거나 미혹되지 않도록 하옵시고,
광야에서 주님을 만나고 예비하며 전파하는 

증인의 삶에 대해서도 겸손히 잘 감당하게 하옵시고,
오신 주님 앞에 모든 교만을 버리고

다만 소리일 뿐임을 기억하며

겸손히 주어진 모든 삶과 사명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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