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21:01-14
요한복음21:01-14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상을 베풀어 회복시켜 주신 분입니다.
.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도 제자들은 갈릴리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곳으로 찾아 가셔서 텅빈 제자들의 마음을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서 많은 물고기를 잡게하시고, 떡과 생선, 따뜻한 숯불의 온기, 그리고 책망이나 추궁하지 않는 대화를 통한 채움으로 격려해 주십니다.
.
# 1-4a절 예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디베랴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도마, 나다나엘, 세베대의 아들들,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다가 베드로가 물고기 잡으러 가겠다고 하자 모두 함께하겠다고 갑니다. 하지만 밤새도록 아무것도 잡지 못합니다. 급기야 바닷가에 계신 예수님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갈릴리 호수가 지배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이름이 바뀌어 디베랴 호수로 언급됩니다. 갈릴리 어부와 농부들의 한이 밴 절망의 바다가 갈릴리 호수입니다. 그런 곳으로 돌아간 제자들의 마음의 상태도 상징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그러한 곳으로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가신 것만으로도 특별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디베랴 호수에 간 제자들은 일곱명입니다. 중요한 사람이든 수제자이든 일부이든 결국 다른 제자들을 포함하여 대표적인 제자들의 모두 디베랴로 간 것처럼 보입니다. 처음 그들의 부름을 받고 또 주님과 함께 많은 역사를 경험했던 곳입니다. 무엇보다 부르심을 받기 전에 오래도록 노련하게 고기를 잡고 살았던 곳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고기 잡는 일에 배테랑인 그들이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려 했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합니다. 그렇잖아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도 여전히 버리지 못한 제자들의 기대는 결국 다 무너지는 것 같았고, 결국 부름 받기 이전에 하던대로 살고자 그물을 던졌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한 것입니다. 심지어 바닷가에 계신 주님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이들이 얼마나 정말하고 실망하고 망연자실하고 막막한지 알 수 있는 사건입니다.
제자들 스스로 이 절망적 상황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기껏 생각해 내던 것이 버려둔 배와 그물을 다시 찾아 주님을 만나기 전에 하던 대로 돌아가서 그렇게 살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지난 3년여 동안 메시아를 따라 다니면서 이적과 표적과 말씀과 여러가지 경험을 하고 말았습니다. 모는 것을 부인하고 차라리 몰랐다면 몰라도, 이전에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가르침, 기적, 곧 부활을 목도한 뒤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런 자신들의 상태에 대한 확신도 개관적 진실도 상실한채 다 잊고 살고 싶어도 사실은 그럴 수 업습니다.
스스로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고기잡는 일이 밤새도록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것은 오히려 역설적 기적입니다. 갈릴리 호수에 고기도 많고, 무엇보다 그곳에서 잔뼈가 굵어 지형이 눈에 훤하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해야 고기가 많이 잡히는지 빠삭한데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잡지 못한 것이 기적입니다. 빈 그물과 배만큼 제자들의 절망감은 깊었고, 이제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15:5) 그들의 모습을 반영합니다. 심지어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지도 못한 낙심과 절망의 상태를 반영합니다. 이들에게 이제 소망은 없는건가요? 아닙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지금 이곳까지 왔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희망의 기대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 우리 가운데서도 주님은 함께 하십니다. 그러니 주님이 우리의 희망이고 목적이고 전부이며 유일한 소망입니다. 절망이 크면 눈에 뵈는게 없지만, 그래서 주님이 찾아와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을 찾지도, 찾을 수도, 찾으려 하지도 않기에 성육신되고 부활하사 갈릴리로 가라하시고 또 친히 그곳까지 오신 것입니다.
.
# 4b-7절 예수님이 함께하실 때 제자의 삶은 충만함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은 밤새 아무것도 잡지 못한 제자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면 잡으리라 하셔서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베드로에게 주님이라는 사실을 말합니다. 이에 베드로는 벗고 있다가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립니다.
주님의 일성은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는 물음이셨습니다. 단순하게 어부들에게 필요한 양식이나 생계를 위한 고기인데, 이는 삶의 이유와 목적에 대한 부분과 더불어 처음 주님이 부르실 때에 버리고 따르던 것들을 생각나게 합니다.
예수님은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고 하는 제자들을 향하여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합니다. 목자가 어부에게 고기잡는 코칭을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단수하게 던졌다고 순종했음을 언급합니다. 계산하고, 고민하고, 이것저것 고려하지 않고 순종했더니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잡힙니다.
그러자 사랑하는 제자가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기억하게 하는 장치들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 것입니다. 이에 베드로는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내립니다.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이전에 믿음으로 물위를 걸었던 것을 상기하면서…
주님을 떠난 인생에게 삶은 빈그물 만큼 공허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고, 아무리 베태랑이고, 아무리 많은 권세와 권능과 능력을 갖는다 하더라도 주님이 허락지 않으시면, 함께하지 않으시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대해서, 주님이 가르치는 일을 통해서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
# 8-14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상을 베푸셔서 격려하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제자들이 모두 육지에 올라보니 주님은 숯불과 생선과 떡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하는 장치들입니다. 153마리의 생선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그렇게 많이 잡혔는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조반을 먹도록 하고, 이에 제자들은 감히 묻지 못하고
베드로를 부를 때에도 이렇게 물고기를 잡게 했습니다(눅 5:1-11). 숯불은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 부인하던 것이 생각납니다. 물고기 두마리와 보리떡 다섯개로 오천명을 먹이신 사건도 기억하도록 숯불과 생선과 떡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조반을 먹으라 하면서 떡과 생선을 함께 드립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행하신 모습들을 보면 추궁하거나, 협박하거나, 책망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공허하고 낙심한 마음을 어루 만지시고, 추위를 가시게 숯불을 피우시고, 먹을 양식을 준비하시고, 똑도 준비해 주셨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사역의 여정 속에서 주님이 행하신 것을 기억하게 합니다.
배부르기 전에 주님을 알아보고, 식사 한 후에도 주님을 알아본 제자들 모두 주님을 기억하게 하는 것들을 통해서 다시금 주님을 알아봅니다. 이제 감히 묻지 않고 이제 주님이 쥐신대로 먹고, 기억하고, 순종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렇게 주님은 제자들을 위로하고 회복하고 격려하며 온전히 세우십니다. 엘리야에게 먹거리, 보호, 사명을 주신 것처럼… 그렇게 주님은 제자들을 부르신 그 곳에서 다시 제자들을 새롭게 부르고 계신 것입니다.
.
# 거둠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여전히 주님만이 우리의 살아갈 이유와
소망과 능력이 되심을 믿습니다.
지금 여기에서도 우리의 기대를 버리고
오직 주님이 채우시고 예비하시고 인도하시는대로
채움과 회복과 격려를 통해 일어서고
묵묵히 주님이 인도하시는대로 나아가기 원합니다.
다시 실패했어도 포기하지 않고
새롭게 세워주시는 주님의 위로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