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01:01-16
요나01:01-16 하나님의 낯을 피해 갈 곳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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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라는 말씀에 요나는 불순종하고 다시스로 갑니다. 그러나 곧 큰 바람을 만나 파선 위기에서 처하자 요나는 자신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신 일인 줄 알고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 합니다. 결국 요나는 바다에 던져지고 남은 자들은 살게 됩니다. 요나는 여호와께서 예배하신 큰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 밤낮을 있게 됩니다.
(요나vs하나님 = 요나vs니느웨 = 요나vs사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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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절 환경이 열린다고 모두 하나님의 뜻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적국 니느웨를 향해 하나님의 뜻을 전하라는 것에 대해 요나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민족을 괴롭힌 원수의 나라를 향해 그냥 심판하시면 되는 것이지 왜 하나님의 뜻을 전해서 구원의 여지를 남기시는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지금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과 충돌 된 것이기에 그는 불순종하고 정반대로 다시스로 도망가려 합니다. 때마침 그곳으로 가는 배를 만나 삯을 지불하고 배에 오릅니다.
니느웨의 악독이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음을 선포하라는 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죄악을 깨닫고 돌아와서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만나길 바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전달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자비에 대해 요나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도망갑니다. 자신의 신학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만큼 완고했고 확고했던 것입니다. 때마침 불순종한 여정에 환경이 열립니다. 하나님께서 틀리고 자신이 옳다고 착각하기 좋을 상황이 열린 것입니다. 신앙적, 민족적, 상식적으로 당연하고 정당한 행위라고 생각하며 의기양양합니다.
날마다 겸손히 주님앞에 나아 가며, 자기를 부인하지 아니하면 주님의 뜻을 옳게 듣고 분별할 수 없습니다. 지금 내가 가진 신학과 사상이 과연 주님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있는지 확신하기엔 우리의 앎과 믿음은 연약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더불어 원수에 대해 용서하지 못하고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눈과 귀를 막고 보복에만 눈이 멀어버린다면,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마저 곡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열방을 사랑하시고, 기회를 주시고, 그들도 당신의 백성으로 부르실 수 있으며, 그들에게도 오래 참으시면서 회복되길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오래참으심과 긍휼의 마음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도 주님 앞에 이렇게 살아갈 수 있으며, 우리 주위 또한 그런 이들을 향하여 쉽게 혐오하고, 배제하고, 정죄하는 일들을 지극히 삼가해야 합니다. 우리의 판단과 분별 이전에 하나님의 뜻과 말씀과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고 하나님의 시선과 가치관으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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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절 하나님은 바람과 사람들을 통해 요나를 깨우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셨다고 말합니다. 사공들은 두려워하며 자신들의 신을 부르고, 살기 위해서 배의 물건들을 바다에 던집니다. 하지만 요나는 배 밑층에서 깊이 잠이 들어 있습니다. 선장이 그에게 가서 깨우면서 하나님께 기도 하도록 깨웁니다.
우리의 불순종과 무지를 깨우실 때 하나님은 환경을 통해서 그리고 사람들을 통해서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번 영적 잠에 빠져버리면 그렇게 깨우는 소리와 메시지에도 자신의 무지를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요나의 생각에 도전을 주는 선장의 말은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기도 했습니다.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정말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다면, 자포자기 하는 심정이 아니라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하지만 요나는 철저하게 불신앙적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다른 그 어떤 이유보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결코 기도할 수 없습니다. 요나는 기도하지 않고 깊이 잠들어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문제가 있고, 하나님께 대한 요나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더불어 영적 잠에서 깨어나도록 하나님은 이방인 선장을 통해서 요나를 깨우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임했고(1:1),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내리셨고(1:4), 이제 선장을 보내 깨웁니다(1:6). 매일 말씀 앞에 서서 주의 음성을 듣고, 환경을 통해서 계시하시고, 붙여주신 사람들을 통해서도 주시는 주님의 뜻을 듣고 나의 오만과 독선과 무지와 아집을 발견하고 깨우고 있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이방인들을 통해서, 외인들을 통해서 교회를 깨우고, 교회가 기도하게 하고, 교회가 세상에서 제 역할을 감당하길 바라고 계십니다. 그런 하나님의 마음들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종교에 심취되어 하나님의 계획과 교제와 뜻을 이룸은 멀어지고, 더 깊은 잠에 빠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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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0절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마음이 강퍅한 것은 어리석음입니다.
배가 파선 위기에 몰리자 사람들은 이 재앙이 누구로 말미암음인지 제비를 뽑습니다. 그런데 요나가 뽑히게 됩니다. 제비 뽑기는 고대에 신탁을 분별하는 방법 중에 하나였습니다. 이를 통해 요나를 추궁하게 됩니다. 요나는 자신을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 소개하면서도 지금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는 중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놀랍니다.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느냐고 말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고 스스로 생각하면서도 자신과 다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모순입니다. 이는 경외가 아니라 경멸하는 것입니다. 천지만물의 창조주라고 고백하면서도 하나님을 온전히 알지 못했기에 요나는 자신의 입술의 고백과 행동은 모순된 행동을 하고서도 자신의 생각이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들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하는 영적 무감각 상태가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성도,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 교인등등 우리 모두에게 붙여준 이름들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들도 하나님을 믿노라 복음을 전한다 말합니다. 그런데 과연 믿고 전한대로 또한 살고 있는지 돌아보면 지금 우리에게도 신행불일치, 언행불일치되는 것이 발견됩니다. 오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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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6절 완고한 요나와 달리 무리들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 변화됩니다.
요나는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 합니다. 하지만 사공들은 자신들의 힘을 의지하여 바람을 이기려고 하지만 능히 못합니다. 결국 여호와를 향하여 무죄한 피를 자신들에게 돌리지 않길 기도하며 요나를 바다에 던집니다.
요나는 지금 이 모든 일이 자신의 불순종 때문인것을 알면서도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 합니다.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살려 주실 것을 간구해야 할 순간에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죽음을 통해서 반항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공들은 이 과정 속에서 여호와께 구하며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시는 분’임을 고백하면서 마침내 바다가 잠잠해지자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제물과 서원을 드립니다. 자신들이 경험한 일을 통해서 생각을 바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또한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어떤 결과를 낳게 될른지에 대해서도 암시해 주는 일입니다. 하지만 요나는 이것을 보지 못합니다.
지금 내가 가진 신학과 교리들이 원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의도와 마음을 옳게 분별하고 있는지 늘 점검해야 합니다. 불필요한 욕심과 완고한 고집들이 신앙을 가장한 불신앙으로 점철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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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절 하나님은 불순종한 요나를 위해서 큰 물고기를 예비하신 분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배하셔서 요나를 삼키게하고 삼일 밤낮을 그 속에서 있게 됩니다.
망망대해에서 아무리 큰 물고기라도 그 시간 바로 그곳에서 입을 벌려 요한을 삼키게 했다는 사실 자치게 하나님의 은혜와 특별한 개입이 아니면 설명이 불가합니다. 딱 바로 그 시간, 그 때, 그곳에서 던져진 요나를 삼키고 바로 죽지 않고 살리신 것은 하나님의 긍휼이 요나에게도 적용된 것입니다. 요나 자신이 니느웨를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스스로에게 적용한다면 요나도 지금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긴 어렵습니다. 그러나 지금 하나님께서 그를 계속 만나 주십니다. 큰 물고기 뱃속의 삼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어떻게 살게 되었는지, 그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설명보다 결국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살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비하시고 살리시고 회복시키시는 계획이 이미 있었습니다. 우리는 연약하고 부족하고 불평하고 원망하지만 하나님은 한번도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우리를 위해 예비하시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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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창조주 하나님,
환경과 사람들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옳게 분변하면서,
주님의 말씀 앞에 날마다 서면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의 뜻과 마음을 바로 알아
신행일치된 삶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