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서02:01-10 구원은 여호와께 있습니다.

요나서02:01-10

by 평화의길벗 라종렬

요나서02:01-10 구원은 여호와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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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던져진 요나는 삼일 밤낮을 뱃속에 있으면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여호와께서는 큰 물고기에게 명하여 요나를 삼키게도 하셨고 다시 토해 내게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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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절 요나는 여호와의 명령에 불순종하면서 참으로 회개하진 않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여호와께 기도합니다. 먼저 주님이 자신의 기도를 들으실 것에 대해서 확신합니다(2절). 비록 자신은 지금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지만 그래도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고 말하면서 지금의 상황이 주께로 말미암아 된 것임을 피력합니다(3-6a절). 하지만 지금 살아 있는 것 또한 여호와께서 살려 주신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6b-7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상숭배자들은 은혜를 버렸지만 자신은 감사하고 제사를 드리며 서원을 갚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8-9a절). 이어서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다’고 말합니다(9b절).

요나는 지금의 상황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된 것을 말하면서도 자신의 불순종 때문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여전히 주님이 살려주고 계신 것은 회개를 바라고 계시는데 요나는 거기까지 미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요나는 감사하고 제사도 드리고 서원을 갚는다는 말은 하면서도 주의 명을 거역한 자신의 죄에 대한 회개의 고백은 없습니다. 심지어 구원이 여호와께 속하였다고 고백하면서도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채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고 마치 니느웨의 구원에 대해서 여호와가 아닌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면서 말하고 있습니다. 요나의 기도 전체는 여호와를 향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있지만 잘못된 신학과 신앙으로 바른 인식과 참된 회개 없이 오히려 여호와를 향하여 완고한 모습이 담긴 고백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러한 요나의 모습은 오랜 신앙 생활을 한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모습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신앙에 대해서도, 복음에 대해서도 그리고 여타 신학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이미 형성된 자기 신앙의 테두리 안에 갇혀서 더이상 성숙과 진보 내지 변화와 교정의 여지 없이 멈춰 굳어버리고 완고하고 목이 곧은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경우입니다. 그런 이들의 기도와 예배와 신앙고백은 흠잡을 데 없이 지극히 종교적이며 갖은 신앙언어로 치장되어 있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생명이 없고, 겸손이 없고, 선한 열매와 진심이 보이지 않습니다.

신앙이 무르익어 갈 수록 우리 자신의 한계 앞에 겸손하고 열린 사고, 부드러운 마음을 갖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말씀 앞에 서는 일이 없고서는 이와 같은 유가 나올 수 없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날마다 먹지 않고서는 우리의 성숙은 정체 내지 퇴보하여 굳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여전히 주님과 평행선을 걷고 있는 요나의 모습은 지금 우리의 신앙의 자리가 어디인지 거울처럼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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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절 큰 물고기는 여호와의 명에 순종하여 요나를 토합니다.

여호와께서는 큰 물고기에게 명하여 바다에 던져진 요나를 삼키게 하고, 또한 명하여 육지에 토해내게 합니다. 이로 인해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 밤낮을 있게 됩니다.

과학적으로는 고래의 뱃속에 사람이 삼일 동안 있는 일은 불가능하다. 실제로 삼켜진 사람의 경우 대부분 소화액 때문에 심하게 녹아져 버려 생존은 커녕 흔적이 제대로 남겨 지느냐도 불분명 할 것이라고도 말합니다. 본문에서는 고래라는 표현이 아니라 ‘큰 물고기’라고 표현하기 때문에 어떤 고기인지는 모르지만 3일의 시간동안 요나가 생존할 수 있는 것 자체 만으로도 하나님의 개입 이외에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보다 앞서 바람도 바다도 그리고 큰 물고기도 피조물로서 창조주의 명령에 순종하는 모습들은, 불순종한 요나의 모습과 대조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창조주 앞에서 피조물된 인간의 불순종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부각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여호와께서는 니느웨를 깨우기에 앞서 요나를 깨우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물고기가 요나를 토한 것은 변하지 않는 요나의 기도와 기만적 모습들이 역겨워서 고래가 토했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앞서 요나의 기도의 진정성과 참된 회개로 보기엔 부족하다는 생각을 해 보면 일리 있는 얘기입니다.

피조 세계를 보면 창조의 질서를 따라 생육 번성하나 그 땅들을 오염 시키는 것은 언제나 인간의 죄악에서 시작됨을 오늘의 현실 속에서도 확인하게 됩니다. 계절의 변화 속에서 과연 우리 자신도 그렇게 때를 따라 성숙하고 변화되고 열매맺는 순종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아울러 우리의 부정하고 불성실하고 부족한 신앙의 모습들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역겹고, 우리를 바라보는 이들에게도 뻔히 보이는 술수로 기만적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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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구원의 주님

피조물로서의 순종의 삶을 다시금 결단하며

나의 신앙이 정체되고 굳어지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자라고 성숙해지는 신앙이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 완고하고 강퍅해 지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변화와 성숙에 민감하고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영적 분별력을 잘 길러가면서

미혹과 유혹과 기만과 술수에

쉬이 놀아나지 않도록 깨어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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