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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Jan 11. 2017

주마가편(走馬加鞭)

쉴만한 물가 - 82편

주마가편(走馬加鞭) - 20140110


고욤나무나 감나무로 깎은 팽이가 제일이었습니다. 아마도 나무의  조직이 치밀해서 묵직한 것이 제격이어서인지 모르겠습니다. 적당한 굵기를 골라서 돌로 쌓은 담장 틈이나 지게 머리에다 기다란 나무를 꼽아두고서 동생들에게 잡으라고 하고선 잘 드는 낫으로 깎기 시작합니다. 마치 연필을 깎는 것처럼 통나무를 뾰족하게 깎은 후에 깎인 부분과 같은 길이를 짚으로 재어 팽이의 윗부분의 길이를 가늠하고 톱으로 자릅니다. 그리고 모서리 부분을 조금 예쁘게 다듬습니다. 그렇게 나무팽이 모양이 완성됩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팽이의 뾰족한 부분에 못을 박아 줘야 합니다. 끝이 좀 둥그스름한 못이 좋은데 없으면 그냥 일반 못을 박았습니다. 그렇게 팽이가 완성이 되면 이번엔 그 팽이를 돌리는 팽이채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팽이채는 적당한 나무 꼬챙이를 가지고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팽이채에 다는 닥나무 껍질입니다. 이것은 일찌감치 준비해 둬야 했습니다. 부모님들은 언제 그것을 해다 두셨는지 늘 있었습니다. 닥나무 그냥 생것은 잘 부서지기 때문에 미리 산에 가서 벗겨다가 잘 말려 놓은 것이 좋았습니다. 나중에는 닥나무를 대체하는 것이 형님들 검은 운동화에서 뺀 운동화 끈이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단단해서 팽이가 멀리 날아가 버리기도 했기에 닥나무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잘 말린 닥나무를 물에 약간 묻혀서 몇 번이고 바위나 나무 기둥에 치고 나면 적당하게 닳아져서 팽이를 치기에 딱 알맞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팽이치기 준비가 완료됩니다. 


펀펀한 흙마당 한가운데에서 팽이 몸에 팽이채 끝에 달린 닥나무를 뒤뒤 감고서,  팽이와 팽이채를 잡은 손을 활짝 펴면서 놓으면 빼글빼글 넘어질 듯 돌아갑니다. 그러면 신속하게 냅다 팽이 채를 휘둘러 팽이를 치기 시작하면 팽이는 이내 자리를 잡아가며 윙윙거리고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흙마당을 휘휘 돌아가면서 팽이 자국을 날리고, 여러 친구들이 함께 팽이를 돌리면서 팽이 싸움을 하기도 하고 옹삭한 골목을 힘껏 피면서 죽지 않고 넘어가는 놀이도 하고 그랬습니다. 낫으로 깎은 팽이가 우린 제일이었습니다. 누가 시장에 가서 기계로 깎은 팽이를 사 오면 모양은 예쁘고 잘 돌아가서 좋긴 한데 땅에는 젠뱅이였습니다. 이게 여간 힘도 없고 두리뭉실해서 팽이 싸움에는 나무로 그냥 깎아 만든 팽이에는 아예 상대가 안되고 그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주마가편이라 했던가요?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가해서 더 잘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말로, 팽이를 치면서도 일정한 수평을 잡도록 궤도에 오를 때까진 계속 모질게 채찍질을 해야 합니다. 그 고지에 오르기까지는 쉼 없이 팽이채를 휘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난코스에 들어가게 되면 더욱 팽이채를 정확하게 휘둘러서 그 코스에서 나오게 해야 하는데 자칫 한눈을 팔거나 제대로 팽이를 맞추지 못하면 이내 주저앉고 만다는 사실을 압니다. 


새해가 밝아 어느새 일주일이 금세 지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달려갈 길이 많이 남았습니다. 우리 앞에 주어진 작은 팽이든 큰 팽이든지 다 매 한 가지로 제대로 주마가편해서 또 자리를 잡을 때까지 매진해야 할 것입니다. 팽이가 한자리에 가만히 서서 계속 돌아가는 시간이 있는데 그땐 잠시 쉬는 여유도 있습니다. 그런 쉼과 가편의 때를 잘 조절해서 세울 일들, 싸울 일들, 바로잡아갈 일들, 지켜야 할 일들, 건강하게 잘 감당해서 잘 살아가는 한 해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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