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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Jun 04. 2024

알코올중독자 아버지를 용서하기로 했다

술을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아야 할까?

알코올에 중독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생물학적인 요소 즉, 유전적으로 알코올에 중독되도록 타고나는 확률도 높은 편이다. 특히,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이면 아들도 중독될 확률이 약 25%에 이른다고 한다. 알코올 사용장애로 입원하는 환자의 80% 이상이 친척 가운데 알코올 사용 문제를 겪고 있으며, 입양아 연구에서도 생물학적 부모가 알코올 중독자일 경우 중독의 가능성이 4배 높다고 나타난다.




아버지가 나빠서 알코올에 의존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교육에 무지한 부모님(할아버지, 할머니)이 학교를 보내지 않아서 십 대 초반부터 일찍이 일을 시작했고, 아마도 그때 같이 일하는 어른들로부터 불안과 긴장을 완화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법으로 우연히 처음 술을 접했을 것이다. 내향적이지만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아버지에게 술은 평소 말없고 수줍은 성향과 달리 주저 없이 자기를 표현하는 즐거움을 주는 매개가 되었을 것이고, 타고나길 에탄올 분해가 잘되는 신진대사 기능이 우수해 술을 마셔서 즐거워지는 경험을 반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불안하고 우울한 내성이 생겨서 그때부터는 술을 마시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을 것이고, 결국에는 자기가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이 자신을 잠식해 버린 지경에 이르렀을 것이다.


만일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어린 나이에도 자기 힘으로 학비를 마련한 아버지를 수치스럽다고 생각하지 않고(이는 지금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대견하다며 학교에 가도록 허락했다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착한 아들이 아니라 되바라진 성격이라 자기 뜻대로 학교에 진학했다면? 사회에 나와서 처음으로 접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사람을 사귀는 법이 술이 아닌 다른 활동이었다면? 아버지의 인생은 지금과는 조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는 순전히 운이 없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주사를 부리며 상처와 고통을 남긴 아버지를 원망했고, 용서할 수 없었다. 그가 지금이라도 중독 치료를 받고 단 하루라도 맨 정신으로 사람답게 살아보기를,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나에게 사과하기를 바랐었다.


뿌리 깊은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서 옅어는 지더라도 완전히 치유되기는 어렵고,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현실을 수용하게 되자 더는 그를 원망하거나 혐오하는 마음도, 사과받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과 사람에 집착해서 내 마음대로 바꾸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고 깨닫자 인간관계로 집약되는 인생살이가 조금은 편해지기도 했고.


무엇보다 나에게는 최소한 알코올에 관한 한 중독 유전자를 물려주지 않아서, 에탄올을 잘 분해하지 못하는 신체를 타고나도록 해주어, 그래서 대학 신입생 때 부어라 마셔라 술에 관대한 분위기에서도 술을 매개로 사람을 사귀며 즐겁기보다는, 술을 조금만 마셔도 몸이 거부하는 혐오적이고 부정적인 경험이 각인되도록 해주어, 알코올 중독에 관한 한 타고나길 원천 차단한 길을 가도록 해주어, 그래서 술이 아닌 차(tea)를 음미하는 삶을 살게 해 주어 진심으로 감사하다.


만일, 운 나쁘게 다른 유전자를 물려받았다면 내 인생도 지금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르니까. 아버지 때문에 일찍이 십 대에 부침을 겪고 마음에 생채기는 생겼지만, 바꾸기 어려운 탄생의 첫 단추를 잘 꿰어준 그에게 이제는 감사할 따름이다. 그렇다고 트라우마를 불러내는 여전한 술주정을 듣고 있겠단 소리는 아니고. 중독에서 벗어날 의지가 없는 그와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의미도 아니다.




한편, 우리나라는 술을 매개로 한 사회적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문화가 짙으므로 술자리를 기피하고 술을 좋아하는 권위자(상사 등)의 비위를 잘 맞추지 못하는 성향 때문에 사회적 성공을 하거나 사회적 지위를 높일 수 있는 수많은 기회를 놓쳤는지도 모르지만, 활력적이고 말초적인 술로 대변되는 밤 문화 대신 차분하고 온건한 차로 상징되는 낮 문화에 익숙하고 만족한 지 오래돼 가지 않은 길은 가보지 않았기에 논할 순 없을 것 같다.


주량이 원체 적다 뿐이지 술 자체를 혐오하진 않아서 회에는 소주, 치즈에는 와인, 감자튀김에는 맥주 등을 곁들이길 좋아하고, 양주와 고량주 등의 독주와 해외 등지에서 새로운 술을 한두 모금 맛보기도 즐기는데, 알코올에 겨우 혀만 조금 적시는 내 행동을 두고 친구는 알코올 기미 상궁이라고 놀리지만, 술을 향유하는 것은 인생의 소소한 즐거움이지 않은가. 왁자지껄한 주점에 비해서는 드물지만 밤에도 술과 차를 같이 팔고, 나처럼 알코올/카페인/우유 섭취를 못하는 까다로운 손님 취향에 맞춰서 음료를 만들어주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융통성이 매우 높은 주점을 발견하는 작은 기쁨도 누리고 있다.




술을 마시거나 마시지 않는 것도 결국은 자신의 선택이므로 과도한 음주에 따른 파괴적인 행동에 대해 한 사람의 성인으로서 마땅히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중독이란 의지로 벗어나기가 결코 쉽지 않고, 중독에 빠지기 좀 더 용이한 체질과 성향이 있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술은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거나,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도무지 수긍할 수 없었던 어른들의 말씀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기도 하다.



알코올 중독의 증상


우리나라는 (조직문화가 변하고는 있더라도 여전히) 술에 유난히 관대한 문화이기 때문에 알코올 중독자를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보다 전날 과음 때문에 다음날 업무에 지장이 있더라도 ‘전날 술 마셔서 그렇대’라고 이해하는 태도를 보이거나, 일과를 마무리하며 자기 전 매일 소주나 맥주, 와인 한 잔을 마시고 잔다는 전형적인 알코올 중독 증상에도 ‘하루 술 한 잔은 약주지, 뭐. 그런 낙도 없으면 세상 재미없어서 어떻게 살아가니’라며 오히려 공감하고 지지하는 등 알코올 중독자 또는 그 징후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낙상의 위험이 높은 등산을 하며 산 정상에서 ‘그래도 술 한 잔은 괜찮다’, ‘이것이 인생의 낙이다’라며 자신의 신체 능력과 정신력을 맹신하기도 하며, TV에 출연한 연예인이 ‘육아 때문에 힘들어서 밤마다 술을 마신다. 요새는 술을 하도 마셔서 그런지 기억력이 떨어진 게 알코올성 치매가 아닌지 의심된다’라며 알코올 중독의 징후를 솔직한 심경이라고 거침없이 농담이라고 던지면, 패널들은 걱정하기보다 공감된다며 가볍게 같이 웃고 떠들고 지지를 보내는 촌극을 벌이기도 한다.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신영철 교수는 알코올 중독의 증상을 ‘여러 진단 기준이 있지만 중독자는 일단 (겉으로는 부인할지라도) 본인이 중독인지 아닌지 알고 있으며, 술 때문에 가장 가까운 사람들 예를 들면, 가족 등의 소중한 사람들과 마찰을 빚고 있고, 이들이 ‘술 좀 그만 마셔라’, ‘술을 끊어라’라고 말을 한다면 중독이라고 봐야 한다라고 말하는데 이 주관적인 판단이 어느 객관적인 의학적 진단 기준보다도 설득력 있고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DSM-5의 알코올 사용 장애 진단 기준을 바탕으로 알코올 중독의 증상을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알코올을 예상 또는 계획보다 더 많이, 더 오래 마신다.

2. 알코올 섭취의 양이나 횟수를 조절/통제하고자 하지만 매번 실패한다.

3. 숙취를 회복하는데 점점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4. 술을 마시고 싶은 강렬한 욕구와 갈망에 사로잡혀 있다. 즉, 일상생활 중에 술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가질 않는다.

5. 반복적인 알코올 사용으로 일, 인간관계, 취미생활 등 주요 생활영역에 자꾸 지장이 생긴다.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거나 약속을 계속 취소하는 등)

6. 알코올 때문에 사회적/대인관계적(특히, 가족) 갈등이 반복된다.

7. 신체적 위험이 존재하는데도 알코올 섭취를 멈출 수 없다.

  (건강 검진에서 간 이상을 진단받고, 의사에게 금주를 권고받았는데도 ‘자신은 괜찮다’, ‘한 잔은 괜찮다’라며 계속 알코올 섭취)

8. 내성이 나타난다.

 : 알코올 섭취의 원하는 효과(긴장이 완화되거나 자기표현 활동이 증가하고,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냄)를 얻으려면 술을 더 많이 마셔야 한다. 같은 양의 알코올 섭취로는 이전과 같은 수준의 알코올 효과를 누릴 수 없다.

9 술을 마시지 않으면 금단 증상이 나타난다.

 : 심박수 증가, 손 떨림 증가, 불안/초조, 불면증, 땀 흘림, 오심과 구토, 발작, (일시적인) 환시/환촉 등

 : 대표적인 금단 증상인 불안을 회피하기 위해서(완화하기 위해서) 다시 알코올을 섭취한다.



<부모님과 헤어지는 중입니다>를 구매하시면 알코올 중독자 자녀의 적나라한 심경과 상처, 알코올 중독자 한 명이 가족 전체에게 미치는 악영향, 이를 치유하고 벗어난 구체적인 과정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이 책의 부제는 '알코올 중독 아버지와 가스라이팅 어머니로부터의 해방일지'입니다.


부모에게 제대로 사랑을 받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온전한 사랑을 제대로 주고받는다는 의미와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지 깨달은 과정을 쓴 책으로, 착취하는 관계에서 나 자신을 보호하는 법도 담고 있습니다.


좀 더 자세한 책 소개는 각 온라인서점을 확인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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