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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Jul 23. 2020

팀 동료와 같이 제주도 여행을 간다는 사실을 들켜버렸다

꼰대 상사의 노예를 자처하는 이들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

회사 동료와 함께 제주도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조금 찔렸던 부분은 같은 팀 동료인데 둘 다 동시에 평일에 연속으로 3일 휴가를 냈다는 점이다. (지금 와서 생각을 하니 연속 5일도 아니고 연속 3일인데 그게 뭐 그렇게 대수인가 싶기도 하고.) 변명 겸 상황을 조금만 더 설명을 하자면 처음부터 둘이 같이 가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이미 몇 달 전에 휴가를 보고한 상태였다. 동료는 마침 스트레스가 극심했던 프로젝트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조기에 종료가 되었고, 직장인 여행 수혈이 매우 시급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우리 팀은 보통 월의 마지막 한 주에 일이 몰려서 월말에 무지 바쁜 팀이었다. 중순에는 회사 규칙 상 출근을 하기는 하는데 물론, 일도 하긴 하지만 시간의 상당수는 자리를 지킨다는 표현이 더 맞았다. 당장 처리할 급한 일이 있다기보다는 업무와 관련된 잘 된 케이스를 모으면서 아이디어 노트를 정리를 한다거나, 업계 현황에 관한 자료를 살펴본다거나, 미뤄뒀던 문서 정리를 한다거나, 자료 통계를 내본다거나, 상사가 갑자기 호출한 회의에 불려 가서 앉아있는다거나 등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물론, 이것도 모두 필요한 일들이다. 팀원 두 명이 같은 기간에 휴가를 사용을 하는 게 별로 좋게 보일 리는 없었을 것 같다. 그렇다고 비교적 업무가 여유로운 중순에 두 사람이 없다고 다른 팀원에게 업무가 가중이 된다거나 딱히 팀에 부담이 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동료는 급하게 가까운 해외 여행지를 여기저기 물색을 했다. 어차피 관광이 목적이 아니라 피폐해진 몸과 마음을 쉬러 가는 건데 굳이 해외 관광지를 갈 필요가 있을까 라는 결론에 도달한 모양이었다. 마침 내가 가는 제주도 숙소는 바닷가가 보이는 명상과 다도가 있는 힐링 콘셉트의 공간이었다. 예전부터 내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2인 숙소인데 혼자 가니까 원한다면 언제든지 합류하라고 운을 떼 놓은 상황이었다. 이 말을 기억을 하고 동료는 조심스레 휴가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동행을 해도 되는지를 물어왔다. 숙소비도 아끼고, 두 사람이면 식당에서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맛있는 음식도 시킬 수 있으니 당연히 대환영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제주도 힐링 여행 모임이 결성이 되었다.




무심결에 약간 아차 싶었던 것은 어쩌다 보니 둘이 같이 여행을 간다는 사실이 팀에 알려졌다는 것이었다. 법적으로 보장된 휴가를 사용을 하는 것은 근로자의 권리이고, 결재까지 된 마당에 휴가 기간에 무엇을 하는지는 개인의 자유이다. 주어진 업무를 태만히 했거나, 휴가 기간 동안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만일에 따로 간다고 거짓말을 했다면 그건 또 그것대로 찔렸겠지만, 이런 사실은 되도록 알려지지 않는 게 좋은 것 같다. 시선이 곱지 않고 말고를 떠나서, 회사 내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다른 동료와의 친분을 과시를 한다거나, 지속적으로 공적인 듯 사적인 그룹을 형성을 한다든가 할 때, 만일 내가 그 문제를 지적을 하고자 한다면 발언권이 상당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는, 관계에 관해 지적을 한다는 게 두루뭉술하고 애매하기도 해서 사실상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를 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생각이다.)




회사는 공적인 공간인데 공적인 관계의 사적인 친분을 지나치게 과시하는 행동은 자신의 능력 향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팀워크를 해치는 행위이며, 매우 무해하고, 찌질 하다고까지 생각을 한다. 이 행동이 지속이 돼 공고화된다면 각 팀원의 의욕 저하는 팀 전체의 사기 저하로 이어지고, 회사 전체는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다. 회사 분위기가 안 좋아지면 매출을 떨어지고 결국 누군가는 비자발적으로 회사를 떠나는 최악의 상황에 이를 수도 있다. '브라질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갯짓을 하면 미국 텍사스에 돌풍을 일으킬 수도 있는가.'와 같은 나비 효과처럼, 별 것 아닌 일 같지만 조직 전체에 끼치는 해악은 금전적 가치로 환산할 수 조차 없다.


하지만 회사도 일종의 권력 다툼의 장이기도 하고, 특히 여전히 연공서열을 중시하고, 보수적이며 버티는 게 중요한 우리나라 기업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그들의 나름 생존 전략이라는 생각에 안쓰럽다가도, 여전히 윗대가리에 포진해 있는 수많은 꼰대들에게 이 전략이 먹힌다는 것은 참으로 씁쓸한 일이기도 하다. 그들이 세력을 공고히 하고 동아줄을 잡고 올라가는 것은 상관이 없는데, 그 말인 즉, 권력 다툼에 관심 없이 주변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던, 일 자체로 인정을 받던 진짜 실력자들은 밀린다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듣지도 않을 테지만) 동아줄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주말에 상사와 등산을 가고, 그의 운전기사, 술친구 노릇을 하고, 40분 일을 한 후 담배 피우면서 흡연 그룹원(?)과 20분 노가리 깔 시간에, 매출 끌어올 수 있는 곳에 연락 한 통을 더 하거나, 구구절절 동정심이라고 자극하는 메일 한 통이라도 더 보내라고. 뭐, 이 정도의 의지가 있었다면 꼰대 상사의 노예 노릇도 하지 않겠지. 자신의 인생을 갉아먹는 줄도 모른 채 설령 알더라도 성인인데, 그것이 더 편한 길이거나 생존에 유리하다거나 자신과 더 맞다고 생각을 해서 선택을 한 거겠지. 그 선택을 존중하며, 권력의 방향을 잘 읽고 살아남기 위해 구차하고 처절하게 몸부림치면서 견디는 인내심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상사의 노예 노릇을 자처하는 이들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꼰대 짓을 해대면서 노예가 되기를 강요하는 상사가 없었다면 그들도 하찮은 처지로 전락하지 않았을 테니까. 나도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끌려간 거래처 미팅이나 회식이 부지기수니까. 비자발적이면서, 반복적으로 개인 시간을 빼앗긴 채 지루한 식사와 술자리를 견뎌냈는데, 다른 동료들에게 어떻게 비치건 말건, 그에 대한 보상을 받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을 하니까. 나라고 뭐 상사와 같이 있고 싶어서 있었나. 지금 일이 문제인가. 상황이 그런 걸 나더러 어떡하라고.




나도 개인적으로 알게 되었다면 얽히고 싶지 않은 사람이 상사일 경우, 회사에서 나보다 높은 권력관계에 있는 이들에게 (항상 성공하는 건 아니었지만) 능력껏 잘 보이면서 좋은 관계를 맺고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재미없는 농담에도 눈은 웃지 않더라도 애써 입은 웃는 거짓 웃음을 지어 보였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인데 상사의 관심사에 관련된 것을 우연히 듣거나 경험을 한 경우, 기억을 해두었다가 과장된 표정과 몸짓으로 능청스럽게 상사에게 말을 붙이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그 와중에도 지시하신 일은 어디까지 진척이 되었고, 고민되는 부분이 있는데 고견을 주실 수 있는지를 물었다. 최근 업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고 의도적으로 틈틈이 어필을 했다. 한국에서는 한국어를,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영어를 구사하듯이 회사에서는 일종의 숙련된 ‘회사어’를 끊임없이 구사를 했다. ‘내 일에도 최선을 다할 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 팀에서 진행 중인 여러 일들에 관심을 가지면서 계속 팔로업을 해가고 있다. 나는 당신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고, 늘 노력을 하고 있다.’라고 회의에서건, 상사나 동료와 개인적으로 업무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건 은근하게 그러나 의도적으로 끊임없이 말을 흘렸다. 인사권을 갖고 있는 권력자들을 향한 내 나름의 처절한 생존 전략이었던 것이다. 


상사의 노예를 자처하는 이들은 실력으로 인정을 받고 싶은데, 처음 입사했을 때와는 달리 자신의 성장에 한계를 느끼고,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일 수도 있다. 아이디어를 구체화해서 실행에 옮긴 후 평가를 받고, 새로운 판로를 뚫기 위해 낯선 사람을 만나 설득을 하느라 머리가 빠개지는 것보다 상사의 가방 돌이(가방 순이) 노릇을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견디는 게 더 낫다고 판단을 했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일도 어차피 사람이 하는 것이고, 시스템도 사람이 만드는 것이지만) 업무 체계가 촘촘하게 설계되어있고, 직원 대부분이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한 평가 시스템이 존재했다면, 조직에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 꼰대 상사와 그의 노예 역할을 자처하는 직원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실력을 키울 생각은 하지 않고 계속 꼰대질을 해대어도, 가방 순이(가방 돌이)를 해도, 친분 그룹을 형성해서 누군가를 밀어내면서 자신들은 올라가도 제재할 사람이나 수단이 없고, 버틸 수 있다는 믿음이 존재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더라도 공공연하게 구성원들도 그 사실을 인정을 받아들이고 묵과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참극이라고 생각을 한다. 선택은 개인의 몫이지만 자신의 시간도, 다른 이들의 시간도 자신의 시간만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길 간절히 바라본다. 어쩌면 인생은 결코 생각만큼 길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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