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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Jul 22. 2020

내가 딩크족으로 사는 이유

저출산의 궁극적인 원인

현재 상황에서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는 노인 빈곤층, 막다른 길에 몰린 이들이 약한 바람에도 흩날리는 민들레 씨앗처럼 고귀한 생명을 스스로 흩어버릴까 정말 염려가 되어 잠시 다른 이야기로 새 버렸다. (앞선 글: 양가 부모님 용돈을 산술적으로 같게 드려야 할까?) 말이 나온 김에 나는 애당초 결혼 후에도 아이를 가질 생각은 없었다. 나의 부모님은 좋은 분들이지만 우리 시대의 많은 부모들이 그렇듯이 생각은 상당히 완고하고 보수적인 분들이다. 나의 이십 대는 성인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나의 정신의 많은 부분을 (그분들의 자의가 아니더라도) 지배하려고 하는 부모님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일차적인 삶의 목적이었다. 그래야만 나의 이후의 삶이 정상적으로 펼쳐질 것이란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들과 따로 살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자유롭게 커리어를 쌓고, 편견에서 벗어나 세상을 넓게 바라보고, 연애와 사랑을 하면서 완전한 독립적인 인격체가 될 수 있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지금까지 유전자와 피로 연결이 된 내가 낳은 혈육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든 적이 없었다. 이제야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되었는데 다시 누군가와 물보다 진한 혈연관계로 얽히고 싶지 않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결혼을 하고 나니 지나가다 마주치는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이 예전보다 예뻐 보였다. 이전까지 아기나 아이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사람과 동물은 다르지만 친구들과 길을 가다가 예쁜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하면 그렇게 곤혹스러울 수가 없었다. 다들 발걸음을 멈춘 채 귀여운 고양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멀뚱히 서있을 뿐이었다. 예전에는 만 두 살 남짓 아이들에게 나 스스로는 이모 내지는 언니(누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 나잇대의 인간 존재에게 나는 ‘엄마’라고 불리는 게 더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신비로웠다.


정말 잠시 잠깐 출산에 관한 생각을 했었는데 이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모르긴 몰라도 육아는 체력전인데 지금부터 준비를 해서 출산을 한다면, 마흔 언저리에서 예순 언저리까지 자녀 양육을 해야 한다. 그때까지 한 생명체를 책임을 져 건강하고 바르게 키워내기 위한 체력(체력에서 비롯된 정신력 포함)에 전혀 자신이 없었다. 나이에 상관없이 무슨 일이든 도전을 할 수는 있는 시대다. 하지만 어떤 일에는 다 가장 적합한 때가 있는 법이기도 하다.




더 현실적으로는 양육에 들어갈 비용을 어쩌면 언젠가 양가 부모님의 노후 자금으로 사용하도록 예비비로 남겨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부 정책을 일일이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은퇴 한 노인 인구에 대한 복지 시스템이 매우 헐겁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앞으로 노인 빈곤 문제는 정말 심각한 주요 사회 문제로 대두될 것이다. (이미 뉴스 단골 기사이다.) 당연히 정부는 정책을 만들거나 보완을 하겠지만 정책이 실효성을 거두기까지는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 년이 걸리기 마련이다.


이론적으로 해법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노인 빈곤 문제의 해결은 궁극적으로는 경제와 분배 문제와 맞물려 있다는 생각이다. 그렇지 않아도 저성장 시대에 코로나 상황까지 장기화되는 시점에서 기업의 성장은 어찌할 수 없이 둔화될 것이다. 지금도 어려운데 일자리는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결국에는 어떻게든 해결이 되고 제도가 정착이 되겠지만, 갈 길은 멀고 생각보다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앞으로 내가 제 급여를 받고 일을 할 수 있는 기간을 긍정적으로 길게 잡아서 약 20년 정도라고 생각하자. 그 기간 동안 나는 스스로 3~40년을 버틸 노후 자금 마련은 물론이고, 어쩌면 20년가량의 부모의 생활비(의료비 포함)까지 부담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양가 부모님의 경제력이 낮다고 할 수는 없지만, 평균 수명이 길어진 상황에서 예기치 않은 의료비까지 부담을 할 정도로 여유로운지는 잘 모르겠다. 부모님께서는 늘 자신들 걱정을 말라고 하신다. 지금껏 잘 살아오셨듯이 나름의 노후 준비도 해두셨을 거라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원하신다면 그래도 일자리를 구하실 수가 있었는데, 앞으로 그 기회는 현저히 줄어들 것이 분명하다.


모두가 처음 경험을 해보는 평균 수명 100세 시대에서 수입이 없는 상태의 불완전함을 과연 얼마나 견뎌낼 수가 있을까. 견딘다고 해결될 문제일까. 무엇보다도 돈은 계산적이고 정직하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의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부모님께서는 손주를 아쉬워하실 수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는 아직 세상에 있지도 않은 자식보다는 애증의 관계일지언정 이 세상에 같이 발 붙이고 살고 있는 부모가 더 소중하다.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를 일에 생각이 앞선 기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노후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로 부모 세대가 은퇴하고 있다는 것, 그 자식 세대도 기업과 사회의 수요가 있는 경제활동인구로 인정받을 기간이 긍정적으로 길게 잡았을 때 20년~25년이라는 것, 이 상황에 모든 국민의 평균 수명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모두 사실이다. 안타깝게도 자칫 잘못하면 나는 평균 수명이 늘어난 부모의 생활비와 의료비를 부담을 하면서, 자식 양육비를 부담을 하면서, 스스로의 인생을 비관하고 부모 세대처럼 미처 나의 노후 준비까지는 하지 못하는 절망적인 상황에 이를 수도 있다. 돈이라는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에 어쩌면 이 상황에서 부모를 포기하고 평생 양심의 가책의 굴레에 사로잡혀 마찬가지로 절망 속에서 살아갈지도 모른다.


나처럼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나처럼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더라도, 말로 설명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출산이 현재 자신과 어쩌면 낳기도 전인 새끼(자식)의 생존에 위협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내재된 직감으로 알고서, 그에 따라 행동을 할 뿐이라는 것이다. 종족의 번식이 인간의 본능이라고 한다면, 자신의 생명을 위협에서 지키고자 하는 또 다른 본능 때문에, 어쩌면 슬프게도 본능을 거스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게 바로 내가 생각하는 오늘날 저출산의 궁극적인 이유이다. 사회문화적인 요인, 발언의 조심성 등을 배제했을 때 ‘경제적인 고민은 1도 없이, 가족을 이뤄서 토끼 같은 자식을 낳고 부부가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자의적으로 상상을 하지는 않더라도 이것이 자신에게 찾아올 확정된 현실일 때 굳이 거부할 사람이 있을까.




부모님 용돈의 공정성을 이야기하다 보니 부모 세대의 은퇴 이후의 삶과 경제력으로 연결이 되었다. 어쩌다 보니 딩크족으로 사는 이유, 내가 생각하는 저출산의 원인까지 털어놓게 되었다. 한마디로 요약을 하다면 결국은 그 자체에는 감정이 없지만, 인간들의 무수한 감정을 자아내고 생각과 행동을 좌지우지하는 ‘돈’ 문제가 기저에 자리 잡고 있다. 새삼 내가 자본주의 체제에 살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난다.


사실 이 글은 ‘내가 생각하는 공평한 가사 노동(집안일)’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이 되었다(관련글: 급여가 낮은 사람이 집안일을 더 해야 할까?). 공평함의 기준으로 부부 각자의 급여라고 주장을 한 의견에 반박을 하고, ‘시간적 여유’를 들었다. 집안일을 물리적으로 5:5로 하기보다는(사실 정확히 5:5로 나눈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 출퇴근 시간을 포함한 근무 시간을 제외한 후 더 많은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 더 많은 집안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의견이었다. 마찬가지로 양가 부모님 용돈도 산술적으로 5:5가 아니라, 경제력이 약한 분들께 더 드리는 게 내가 생각하는 공정함이다. 그러다가 글이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공평한 집안일의 두 번째 기준이었던 ‘약속의 이행 여부’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마무리를 하려고 한다. 이것은 시간적 여유, 급여 수준, 노동 강도 등 아무것도 상관이 없다. 그냥 서로 간에 그렇게 약속을 했으니까 지키는 거다. 우리집에서는 욕실(화장실) 청소는 이유 불문하고 남편이 책임자다. 먼저 결혼을 한 친구의 결혼식에서 신랑이 낭독을 한 결혼 생활 다짐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내가 너의 손에 평생 물을 묻히지 않게 한다고는 말하지 못해. 대신 화장실 청소는 평생 내가 한다고 약속을 할게.’ 참신하기도 하고 솔직하기도 하고 이 다짐이 그렇게 좋아 보였다. 우리가 결혼을 할 때 예비 신랑에게 얘기를 했더니 흔쾌히 ‘그러지 뭐.’라고 받아들이면서 우리의 계약은 성사가 되었다.


3년 결혼 생활 중에 남편이 회사 업무가 너무 많아서 피곤할 때는 아주 가끔씩 내가 욕실 청소를 할 때도 있었다. 그래 봤자 내 기억에 3번(?) 정도였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그는 욕실 청소는 자신의 임무라는 것을 아주 명확하게 인지를 하고 있다. 과장을 좀 하자면 내가 욕실 청소를 한다고 하면 그의 역할을 빼앗긴다고 생각을 하는지 약간의 불쾌감을 표출하기도 한다. 매우 바람직한 집착이다. 감사하고 사랑한다♥



연관 포스트


아이 낳기를 강요하는 어른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

 : '너나...... 잘하세요.'



총 3개의 글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각 글은 집안일, 부모님 용돈, 저출산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관심 있는 주제만 읽으셔도 내용을 이해하시는데 무리가 없습니다. 글의 전체적인 유기적인 관계를 파악하고 싶으시다면 3개 모두 읽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이전이전 글] 급여가 낮은 사람이 집안일을 더 해야 할까?

 : 집안일을 공평하게 나누는 기준


[이전 글] 양가 부모님 용돈을 산술적으로 같게 드려야 할까?

 : 내가 생각하는 공평한 부모님 용돈 배분


[현재 글] 내가 딩크족으로 사는 이유

 : 저출산의 궁극적인 원인



참고 자료


중산층이 몰락한다|매일경제|2019-10-28

https://www.mk.co.kr/news/culture/view/2019/10/881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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