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 기준을 만들었더니 불편해진 사람이 생겼다.

가계 운영에서 맞는 기준과 납득되는 기준은 달랐다.

by 경리언니찐나

기준이 생기면 다 좋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겐 그 기준이 불편함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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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는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았다.

적어도 처음처럼 매일이 사고 직전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점심 피크도 전보다 덜 무너졌고, 배달과 포장 주문이 겹쳐도 어디서 누가 먼저 움직여야 하는지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하준은 그 변화를 좋은 쪽으로만 생각했다.

당연했다. 기준이 없을 때는 다 같이 더 힘들었고, 기억으로 맞추던 근무시간은 늘 찜찜했고, 누가 조금 늦거나 애매하게 움직이면 결국 그 부담은 가게 전체로 퍼졌다.

그래서 하준은 운영을 더 분명하게 만들려고 했다.


출근은 실제로 도착해서 일 가능한 시점으로 보기. 퇴근은 마감 종료 시점까지 확인하기. 휴게가 애매하면 그날 바로 확인하기. 점심 끝나면 어떤 흐름이 꼬였는지 짧게라도 남기기.

하준 입장에선 이 모든 게 가게를 덜 흔들리게 만드는 일이었다.

문제는 그 변화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편하게 느껴지진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걸 처음 느낀 건 월요일 오전이었다.

오픈 준비가 거의 끝나갈 무렵, 하준은 전날 메모를 보고 있다가 수빈에게 말했다.

“수빈 씨, 오늘은 점심 전에 포장 세트 먼저 좀 더 맞춰둘게요. 지난주 월요일도 11시 30분부터 갑자기 몰렸거든요.”

수빈은 앞치마를 정리하며
“네” 하고 대답했다.

말은 평소랑 비슷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말끝이 짧았다.

하준은 순간적으로 뭐지, 싶었지만 그냥 넘어갔다.

피곤할 수도 있었다. 월요일 아침이 원래 좀 무거울 수도 있었다. 사람 마음이 늘 일정한 것도 아니니까.

그런데 비슷한 장면이 며칠째 반복됐다.

“오늘은 휴게시간 애매하면 바로 말해주세요.”
“퇴근 전에 마감 끝나는 시점 같이 한번 볼게요.”
“출근은 도착 기준으로 정리할게요.”
“포장 겹치면 먼저 말해주세요. 혼자 끌지 말고.”

하준은 그냥 필요한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수빈 표정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가 풀리곤 했다.

대놓고 싫은 티를 내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래서 더 알아채기 어려웠다.


그러다 수요일 점심이 끝난 뒤 하준은 더는 그냥 넘길 수 없다는 걸 느꼈다.

잠깐 한가해진 시간, 수빈은 카운터 옆에서 포장 비닐을 정리하고 있었다. 하준은 배달 정산 화면을 보고 있었고, 가게 안엔 에어컨 소리만 작게 돌고 있었다.

그때 수빈이 별 뜻 없는 듯 툭 말했다.

“사장님.”

“응?”

“요즘 되게 꼼꼼해지셨어요.”

하준은 시선을 화면에서 떼지 않은 채 웃었다.

“좋은 뜻으로 하는 말이죠?”

수빈은 바로 웃지 않았다.
그게 하준에겐 꽤 선명하게 느껴졌다.

“잘 모르겠어요.”

그 대답에 하준 손이 멈췄다.

잘 모르겠어요. 좋다는 말도 아니고 싫다는 말도 아니지만 애매하게 좋은 대답은 절대 아니었다.

하준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무슨 뜻이에요?”

수빈은 포장 비닐 끝을 손가락으로 맞추며 말했다.

“예전엔 그냥 같이 일하는 느낌이었는데… 요즘은 뭘 해도 계속 한 번 더 체크되는 느낌이 있어요.”

하준은 그 말을 듣자마자 곧바로 반박하고 싶어졌다.

아니, 감시하려는 게 아니잖아. 같이 덜 힘들자고 하는 거잖아. 나중에 급여나 근무시간 때문에 서로 안 불편하려고 하는 거잖아.

하지만 그 말들을 바로 꺼내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금 중요한 건 내 의도가 아니라 수빈의 체감이라는 걸 어렴풋이 느꼈기 때문이다.


“불편해요?”

수빈은 잠깐 망설였다. 그 짧은 망설임이 오히려 더 솔직했다.

“조금은요.”

하준은 표정 관리가 잘 안 됐다.

수빈은 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아예 싫다는 건 아니에요. 사장님이 왜 그렇게 하시는지도 알아요. 근데 뭔가… 자꾸 보고 계신 느낌? 제가 뭘 하든 나중에 다시 한 번 확인받는 것 같아서 조금 긴장돼요.”

긴장된다는 말이 하준 마음에 유난히 오래 남았다.

그는 기준을 세우면서 오히려 다들 덜 불안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애매함이 줄고, 억울함이 줄고, 같은 문제로 싸울 일도 줄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지금 수빈은 반대로 더 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준은 그 순간 자기 안에서 두 가지 마음이 동시에 올라오는 걸 느꼈다.

하나는 억울함이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데. 다 같이 덜 힘들려고 그러는 건데.

다른 하나는 불안이었다. 혹시 내가 지금 맞는 일을 하면서도 방식은 틀리고 있는 걸까.


그때 도윤이 주방 안에서 나와 두 사람 사이를 슬쩍 살폈다.

“무슨 얘기하세요?”

하준은 잠깐 망설였지만 이상하게 숨기고 싶지 않았다.

“내가 요즘 너무 체크만 하는 사람처럼 보인대.”

도윤은 물컵을 채우며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그럴 수도 있죠.”

그 반응에 하준은 오히려 제대로 멈춰 섰다.

“왜요?”

도윤은 컵을 내려놓고 말했다.

“기준이 생기면 좋은데, 이유를 같이 못 느끼면 사람은 그냥 감시당한다고 느낄 수 있어요.”

수빈은 그 말에 아무 말도 안 했고, 하준도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감시당한다고 느낄 수 있다.

그건 하준이 가장 원하지 않았던 방향이었다.

그는 수빈이 조금 늦었던 날도 기억했고, 근무시간이 서로 다르게 기억됐던 날도 기억했고, 휴게가 애매하게 끝난 날도 기억했다.

그런 날들을 겪고 나니 기준은 분명히 필요했다. 그건 지금도 변함없었다.

문제는 그 기준을 설명하고 같이 납득시키는 과정이 자기 머릿속만큼 충분히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하준은 숨을 한번 고르고 수빈 쪽으로 몸을 돌렸다.

“수빈 씨.”

“네.”

“내가 확인하는 건 수빈 씨를 못 믿어서만은 아니에요. 근데 그렇게 느껴졌다면 그건 내가 놓친 거예요.”

수빈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조금 있다가 아주 솔직하게 말했다.

“저도 사장님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그냥 예전보다 계속 조심하게 되는 건 있어요.”

그 말이 생각보다 더 아프게 들어왔다.


조심하게 된다.

가게를 안정시키려던 기준이 누군가를 계속 조심하게 만들고 있다면 그건 분명 다시 봐야 할 문제였다.

그날 저녁, 영업이 끝나고 혼자 남은 하준은 노트북을 열어도 한동안 아무것도 못 적었다.

불 꺼진 홀 안은 조용했지만 낮에 들은 말들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계속 한 번 더 체크되는 느낌. 조금 긴장된다. 예전보다 조심하게 된다.

하준은 문득 깨달았다.

자기는 문제는 계속 기록하고 있었지만 잘된 부분은 거의 말하지 않았다.

애매하면 다시 보자고 했고, 틀어지면 기준을 맞추자고 했고, 정산은 정확히 하자고 했다.

그 모든 말은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사람 입장에서는 그 맞는 말들이 계속 쌓이면
“나는 계속 확인받는 사람”이 될 수도 있었다.


기준이 필요한 이유도 같이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씩 써 내려갔다.

확인은 감시가 아니라 정산 기준을 맞추기 위한 것

출퇴근 기준은 서로 안 억울하려고 필요한 것

휴게 확인도 급여와 신뢰 때문에 필요한 것

운영 메모는 누굴 지적하려는 게 아니라 반복 문제를 줄이기 위한 것

기준만큼 중요한 건, 그 기준이 왜 필요한지 같이 공유하는 일

여기까지 적고 하준은 마지막 줄에 천천히 문장을 하나 더 넣었다.

맞는 기준이 항상 편한 기준은 아니다.

그 문장을 보고 나서야 오늘 하루가 조금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기준은 필요하다. 그건 맞다.

하지만 그 기준이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줄 수도 있다는 걸 사장은 동시에 알아야 했다.

좋은 사장은 규칙만 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왜 그 규칙이 필요한지 설명할 줄 아는 사람일 수도 있었다.

다음 날 오픈 전, 하준은 일부러 두 사람을 잠깐 불렀다.

“오늘 시작 전에 5분만 얘기할게요.”

수빈은 약간 긴장한 얼굴로 다가왔고, 도윤은 조용히 옆에 섰다.

하준은 천천히 말했다.

“요즘 내가 출근, 휴게, 마감시간 같은 걸 더 자주 확인하는 건 맞아요. 근데 그걸 그냥 내가 체크하려고만 하면 당연히 불편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수빈은 아무 말 없이 듣고 있었다.

“그래서 말해두고 싶어요. 이건 누가 잘못했는지 잡아내려는 게 아니라, 나중에 근무시간이나 급여에서 서로 안 억울하려고 하는 거고요. 운영 메모도 누굴 혼내려는 게 아니라, 같은 문제 반복 안 하려고 적는 거예요.”

잠깐 정적이 흘렀다.


하준은 이어 말했다.

“대신 앞으로는 내가 혼자 정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현장에서 느낀 것도 바로 말해주세요. 내가 놓치는 것도 있을 수 있으니까.”

수빈은 한참 있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도 그냥… 뭔가 갑자기 분위기가 달라진 것 같아서 그랬어요.”

하준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건 맞아요. 내가 요즘 너무 운영 쪽으로만 생각했나 봐요.”

도윤이 짧게 덧붙였다.

“기준은 있는 게 맞고, 이유를 같이 알아야 덜 답답한 거죠.”

그 말에 하준은 작게 웃었다.

결국 문제는 기준 자체가 아니었다. 기준이 혼자만의 언어가 되어버린 방식이었다.

그날 하준은 처음으로 분명히 알았다.

가게를 덜 흔들리게 만들고 싶다면 기준과 설명이 같이 가야 한다는 걸.

그리고 그때부터 가게 안 공기도 아주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좋은 기준은 맞는 기준이 아니라, 함께 납득되는 기준에 더 가까웠다.


다음 화 예고

다음 화에서는, 사람은 그대로인데 가게 분위기가 달라진 이유를 이야기합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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