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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소향 Aug 17. 2022

잠시 쉬어가길 바라는 마음.

ep 119. 케이윌_Lay Back

가르치는 나도, 배우는 학생들도 힘든 방학특강 기간이 끝났다.

학교방학이 시작되면 그만큼 학원에서 배우는 시간과 숙제는 늘어난다. 아이들이 학교를 안 가기에 집에선 부모님과 학생들은 숙제전쟁이고, 학원에서도 집중못하고 조는 학생들을 깨우며 공부시키기에 정신이 없다.

모든 학생들이 부모와 강사의 마음처럼 열심히 자기가 해야 할 몫의 공부를 잘 채워주면 좋으련만, 그게 쉽지 않은 학생들도 참 많이 있기마련이다.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해야 하는 학생의 마음도,

경제적 부담이 되더라도 공부를 시키고자하는 부모님의 마음도, 

모두 이해가 되기에 학생의 상태도 객관적으로 부모님께 전달드리고, 아직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가 덜 된 학생들도 어떻게든 공부를 시키고자 방학내내 정신이 없었다.

모두가 힘들지만 그래도 가장 힘든 건 공부하고 매일매일 숙제를 해야 할 학생들이기에 애들을 위해 작은 간식꾸러미를 준비했다.

그렇게 방학특강이 끝나는 날 우리 반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나니 작년에 내게 수업을 듣고 윗반에 올라가서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 한 명이 생각났다.

수업도, 숙제도 엄청 열심히 하고 내게 수시로 진로상담을 요청하며 잘 따라줬던 학생.

스승의 날이라며 직접 찾아와 커피와 케이크를 건네준  학생이 생각나 톡을 보냈다.




나 : J야. 수업 끝나고 시간 될 때 쌤 강의실에 와. 우리반 애들 간식꾸러미 준비했는데 너도 와서 받아가~

J : 꺄아아아아아어어어악.

     네네네네네네네네네 (웃음)(웃음)(웃음)(웃음)

     (이모티콘1)

     (이모티콘2)

나 : 언제 오는지 미리 얘기해주고. 쌤이 없을 수도 있으니~

J : 네~!!


(다음날)

J : 쌤~근데 A랑 B도 가고 싶다고 해요. C군도 온데요. 다음 주 토요일에 가도 돼요?

나 : ㅋㅋㅋ 너희 다 연락하고 지내니? 담주 토요일 몇시? 담주 토요일10시에 학원에 없을수도 있는데.

J : 엇. 잠시만여

     애들이 자꾸 오늘 가자고 난리

     잠시만여!!

     쌤~오늘 10시쯤 갈께여.

     앗. 근데 쌤이 괜찮은지 안여쭤봤네여.

나 : ㅋㅋㅋ응. 와~



A,B,C,J는 모두 작년에 한반에서 내게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이었다. A는 수학을 안 해도 되는 미술로 진로를 바꾸면서 학원을 그만두었고, B,C,J는 모두 진급하여 윗반에서 수업을 듣고 있는 걸 알고 있었지만 층이 다르고 마주칠 수 있는 동선이 아니기에 가끔씩 찾아오는 J와 다르게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활달한 J와 다르게 B와 C는 평소 엄청 조용한 성격이고 이제 내가 담당강사가 아니기에 생각지도 못했는데 J와 함께 온다고 하니 조금 미안해졌다.

서둘러 간식꾸러미를 더 만들고 우리 반 학생들 것보다 이것저것 더 담아 넣었다.


8개월만에 본 학생들은 변함없었다. 여전히 발랄하기도 하고 조용하기도 하고 공부로 힘들어하는 모습은 여전히 예전 그대로였다.

돌이켜보면 작년 고1반은 학생들끼리 단합이 잘 되었다. J는 D와 E도 오고 싶었는데 D는 거리가 너무 멀고, E는 시합준비(운동으로 진로변경)로 못 오는 아쉬움의 메세지를 나한테 상세히 보여주었다.

캔디꾸러미만 주기엔 내 손이 너무 부끄러워 얘들을 데리고 근처 카페에서 음료수라도 사들고 보내주려고 했는데 다 문이 닫아서 편의점으로 가서 사고 싶은 것을 고르라고 했다.

아이들은 마치 편의점 모든 물건을 집을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고작 초코우유와 띠부실이 들어있는 과자를 고르는 게 전부였다. 더 고르라고 해도 소소하게 젤리를 하나 더 고를 뿐이었다.


4명의 학생들도 서로 안 본 지 오래되었기에 안부를 묻기에 바빴고,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서로 웃을 나이라 사소한 이야기 하나에도 아이들은 즐거워했다.

그렇게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돌아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시절인연이란 단어가 생각났다.


그 시절에 만난 인연.

나도 그렇고 학생들도 그렇고 작년 한 해. 짧다면 아주 짧은 시간 동안 함께 한 강의실에서 공부한 사이.

그 짧은 시간의 인연과 추억이 학생들의 학창시절 한 켠에 좋은 기억으로 잘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마음에 비해 오늘 아이들에게 준 것이 너무 없어, 학생들에게 편의점 기프티콘을 하나씩 선물했다.

자그마한 선물에도 아이들은 너무 고마워했고,

꼭 좋은 결과로 다시 찾아오겠다고 다시금 내게 약속했다.




강사란 업의 본질은 학생의 성적 향상에 있다.

성적을 올리려면 학생이 할 수 있는 바운더리 내에서 최대한 수업을 열심히 듣게 하고 숙제도 매일매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어느 정도 학생과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너무 친근한 강사가 되버리면 어느 순간 학생들은 숙제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강해지기에 혼낼 땐 강하게 질책하기도 해야 했다.


그런데 때론 그 마음이 무너질 때가 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가르쳐도 아이들이 안 하면 바뀌는 것은 없다는 것을 체감하는 순간,

성적 향상이 이뤄지지 않았는데 어머님은 내게 너무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실 때,

수학성적은 바닥이나 수학만 아니면 이 아인 어디가서든 자기 밥벌어먹고 살 것 같은 학생을 만나는 순간,

넉살이 너무 좋아 혼나는 그 순간에도 나를 웃음 짓게 하는 아이를 만나는 순간,

학생과의 거리두기가 조금은 무색해진다.


그리고 오늘.

어쩌면 다시 볼일이 없을 수도 있는 시절인연인 나를 만나러 아이들이 온 순간에도 내 거리두기가 조금 무색해진다. 그저 먼저 인생을 살아간 선배로써 그저 아이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https://youtu.be/6-xrHZ8g3GQ

천천히 걸어
넘어지지 말고
너의 그림자되어 늘 곁에 있을게


그런 의미에서 선곡한 케이윌의 'Lay Back'

발매된 지 9년도 넘고 타이틀곡은 아니지만 요즘 즐겨 듣고 있는 미디움 템포의 노래.

연인을 위한 노래이긴 하지만 Lay Back(마음을 편안하게 갖다)이란 제목의 의미와 저 위의 세마디 가사가 이 글에 어울릴 듯 하여 Pick!!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줄여서 수플레)'는 다섯 명의 브런치 작가가 매주 수요일마다 본인의 에세이가 담긴 음악을 소개하는 읽고 쓰는 라디오입니다. 잠들기 전 이름 모를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듣고 싶으셨던 분들, 즐겨 듣는 노래에 다른 누군가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해본 적이 있는 분들이라면 매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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