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벨이 울린다. 똑같은 벨소리이지만 어쩐지 경쾌하다. 핸드폰을 들어 화면을 보니 엄마다.
00아, 밥은 먹었니?
밥은 잘 먹고 있다고, 저번에 주신 반찬 참 맛있었다고 다음에 또 뵙자고 말씀드린다. 그래 다음에 또 보자 밥은 꼭 잘 챙겨먹고로 통화를 마친다. 핸드폰 화면에 뜬 번호만으로 어떤 이야기를 할지 그려지는 사람들이 있다. 어머니의 질문은 항상 밥이다.
문득 일전에 집에서 출퇴근할 때가 떠오른다. 정말 평범한 하루들, 아침을 먹으라는 이야기를 뒤로 하고 나 늦어라고 인사하며 바삐 버스에 올라타던 나날. 집에 와서는 씻고 저녁을 먹으며 하루가 어땠는지 간단히 이야기하던 날들. 돌이켜보면 맛있는 곳에 외식을 가거나, 처음 가보는 곳에 여행을 갔던 것보다 내 마음속에 떠오르는 건 이렇게 같이 식사를 하던 평범한 날들이다.
김장한 날은 보쌈입니다. 술은 너무 마셔도 좋습니다.
첫 출근하던 때에는 집 문 앞까지 나오셔서 손을 흔드셨다. 이제 다 컸어요라고 머쓱하게 말하며 엄마에게 손을 흔든다. 먼 옛날, 초등학교를 배정받고 처음 등교 허던 날 엄마에게 손을 흔들며 내 딴에는 씩씩하게 등을 보이며 걸었다. 그러다가 방지턱에 발이 걸려 넘어져 새로 꺼내 입은 옷 등 쪽이 다 젖어있던걸 엄마가 버선발로 뛰어와 털어주던 때가 생각이 난다. 출근 때도 걱정어린 시선으로 아직도 지켜보신다. 등에도 그리움이 남아있다.
회사일은 지친다. 일단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들다.대학교 때 술 취한 얼굴로 부수수일어나 하루 수업을 빼먹고 다시 자던 일이 꿈같이 생각난다. 회사에서는 아무리 술을 먹어도, 몸이 아파도 출근해야 한다. 그렇다고 휴가를 쓸 수 없냐고 하시면 꼭 그렇지도 않은데 어째서 개근상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출근할까. 콩나물 국이라도 끓여주시던 엄마가 없다는 게 내심 아쉽다.
회사일을 마치고 이제는 멀어진 집으로 가끔 간다. 매일매일 들어가던 집이 아니라 아주 가끔 가는 곳이기 때문에 간다고 미리 말씀을 드려야 집에 계시기 때문에 꼭 전화를 드린다. 매번 뭐가 먹고 싶은지 물어보신다. 나는 엄마의 된장찌개가 먹고싶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국물에 감자, 두부 따위가 넉넉히 들어가서 한소끔 올라간 그 찌개.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고 나서 들어온 내방은 어제 나간 것처럼 그대로라는 게 좋다. 멀리 떠나 있어도 엄마는내가 집에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는 멀리 떠나서도 생각나는 사람이 있고 떠나온 건 우리일지도 모른다는 주접을 떨며 엄마에게 잘 자라고 전한다.
밥은 잘 챙겨 먹으라는 엄마를 뒤로하고
다시 출근한다. 집에 자주 찾아볼 수는 없어도 전화라도 자주 해야겠다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아빠한테는 전화한 게 언제인지도 생각이 안 난다. 우리 부장님께 전화하는 거에 절반만이라도 아빠에게 전화하면 안 섭섭하겠다. 지금이라도 전화를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