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간채집자 Oct 07. 2015

산 위에 펼쳐지는 은빛 바다의 품

간월재, 하늘억새길... 영남알프스 첫 걸음 3

(커버이미지  다음 '간월산 억새평원' 검색)


 "휴양림 상단 지구로 들어가서 하단에서 숙박했었다 말하시고요, 그 곳의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면 간월재로 가보실 수 있어요." 간월재에 오르는 길을 물었더니 들려온 휴양림 직원의 답이었다. 12시에 퇴실을 하고 직원의 안내대로 휴양림 상단지구로 이동.


신불산자연휴양림은 하단과 상단지구 2곳의 휴양림을 별도로 운영한다. 하단지구에서 나와서 도로에 난 이정표를 보고 상단 진입로로 들어서서도 구비구비 산 중턱으로 난 좁은 도로를 따라 더 한참을 들어가야 상단지구로 닿을 수 있다.

허나 반쯤이나 갔을까. 그곳의 체크아웃 후 나오는 차량들과 맞물려 산비탈의 좁은 위에서 결국 차들은 제자리 걸음. 그만 차를 돌려 목적지로의 진입은 포기해야 했다. 휴양림으로 전화를 걸어 상황 얘기를 하니 배내고개에서 등산로를 따라 간월재로 가보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지도를 보니 걸리는 시간이 만만치 않다. 어린 조카의 걸음도 생각하자니 쉽지 않았지만 일단은 도전해보기로 했다.  배내고개에 올라 주차장에 차를 대고 노점을 하고 있는 한 트럭아저씨에게 올라가는 길을 다시 재확인하고 돌아온 답은 "뭐, 1시간 정도 가믄 나와." 좋아, 옥수수 한 봉지를 사들고 출발!



영남 알프스를 산행하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이 들머리로 삼는 곳. 배내고개는 맑은 계곡 옆으로 야생 배나무가 많이 자란다 해서 배내골이라 이름 붙여진 것이라 하는데, 가장 높은 고갯길을 말한다. 배내터널이 관통하는 배내고개는 해발 700미터가 넘는 곳으로 영남알프스를 동서(東西)를 가르는 분수령이다. 동쪽으로 간월·신불·영축산이, 서쪽으로 능동·천황·재약산이 산맥을 이루며 펼쳐진다. 교통의 요지로서 포장도로가 놓여 있어 많은 차들이 여기까지 올라온다.



배내고개에게서 배내봉으로

비교적 완만하게 시작되는 산행길. 배내봉으로 가는 길은 나무계단으로 조성이 되어 있어 오르기 편안했다. 어린 조카를 생각하니 다행이다 싶었다. 30분 정도 올랐을까. 간간이 억새밭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을 하늘 아래 하늘하늘.. 계단을 오르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뒤로 돌아보니 배내고개를 들머리로 해서 반대편에 자리한 굽이굽이 이어지는 영남알프스의 능선들이 보인다.

     

멀리 보이는 언양 시내 전경.


간월재로 향하는 산 능선을 따라 가다 보면 길 왼쪽으로는 탁 트인 시야로 언양 시내의 전경이 한 눈에 펼쳐진다. 길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원형으로 한바퀴 돌 수 있다는 영남알프스의 산군들이 눈에 들어오고.





"엄마, 이렇게 가다 보니까 내가 산속에서 길을 찾아내는 게 아니라 이 산이 그냥 나한테 길을 열어주는 거 같아. 있잖아, 난 그냥 열린 그 길로 몸을 맡기고 걸으면 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한 줄로 서서 걸어가던 능선 길. 들려오던 조카의 얘기. 초보 산행자 답지 않는 산꾼의 말이 아이의 입에서 흘러 나온다. 가르쳐 일러주지 않았는데도 아이는 산행의 맛을 알아가고 있는가 보다.





배내봉에 도착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과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에 걸쳐 있는 산. 전형적인 육산인 배내봉은 해발 966m. 정상은 탁 트인 초원지대로 주변 산들의 경관이 파노라마처럼 시원하게 펼쳐졌다. 북쪽으로 오두산, 서북쪽으로 능동산, 남쪽으로는 간월산, 서쪽으로 천황산·사자봉 등이 우뚝 솟아 있다.




걸음을 재촉해 간월재로

초원 위의 평지를 걷는듯한, 부드러운 잔등 같던 배내봉까지의 길을 지나고 나니 이제는 바위와 비탈진 길들을 쉼 없이 오르내리기를 반복. 마치 울퉁불퉁 덜컹거리는 롤러코스터를 탄듯한 기분이다.
배내봉에서 출발해 1시간 반이 지나도록 간월재는 쉬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배내고개부터 느릿느릿 걸어도 두 시간이면 충분히 닿을 거라는 옥수수 아저씨의 얘기대로라면 벌써 만났어야 하는데..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어른의 몸에도 힘이 부치기 시작하는데 아이의 다리가 어떨까 걱정이 되기 시작하고,  차를 세워두고 출발했던 배내고개로 다시 이 길을 되돌아 가야 할걸 생각하니 아득해지고.. 휴양림에서 산보하듯 쉽게 오를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간월재에 이르는 길이 정말 제대로 된 등산을 하는 길이 되었다.

"이제 그냥 우리 돌아가자" 간월재는 그만 포기하고 되돌아 내려가자는 언니의 말을 꺾고 난 계속 직진을 고집했다. 휴양림을 빠져나오면서 가게에서 사들었던 초콜릿과 소시지로 간간이 요기를 하고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해 옮기면서 지도에 표시되어 있던 앞으로 나아갈 이동길을 되새겼다. 몸이 지쳐갈때즈음, 마침 눈에 들어왔던 나뭇가지의 메모가 조금은 위안이 되고 힘이 되긴 하더라. '낙동정맥을 종주하시는 산님들 힘 힘 힘내세요.'


아, 간월산!

3시간을 걸어 드디어 간월산에 도착했다. 그날 조카는 해발 1000미터가 넘는 산의 정상에 오른 첫 경험을 했다. 잘 따라와 준 것이 대견하고 기특하고.  "우와~" 간월산 정상석이 눈에 들어오자 아이는 몸의 피로도 잊은 듯 성큼성큼 내달렸다. 정상석에 반가움의 입맞춤을 해대며 혼자서 그 희열을 만끽하던 이 표정이라니.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등억리와 이천리에 위치한 산으로 낙동정맥의 종주로, 영남알프스 7개의 산 중 하나. 간월은 肝月로 표기되어 있으나, 대동여지도에는 간월산(看月)으로, 등억리의 사찰 간월사에는 간월(澗月) 등으로도 표기되어 있다. 그 이름의 정확한 유래를 알 수 없으나, 본래 신성함을 뜻하는 순수 우리말 ‘감달’을 한자로 음을 빌어 적는 데서 빚어진 것이라는 설명이 있다. ‘肝’은 우리말 ‘감’ ‘곰’ 등과 함께 우리 민족이 써오던 신성하다는 말의 뜻을 가진 음차이고,‘月’은 넓은 평원을 뜻하는 ‘들’ ‘벌’의 차훈. 달(月)은 불(火)과 함께 신명이라는 우리말 ‘밝’에서 유래하여 평원을 의미하는 벌과 통하며, ‘달’은 예부터 ‘뫼’의 뜻도 담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간월산은 우리말 ‘감달뫼’, 즉 신산(신성한 산)이라는 뜻의 해석을 해볼 수 있다. 간월산 정상에는 한자로 ‘肝月山’이라 쓰고 한글로 ‘간월산’이라 함께 쓴 표지석이 있다.


정상석을 넘어서자 그제야 발 아래로 드넓게 펼쳐져 있는 간월재가 제 모습을 드러냈다. 긴장했던 몸에 비로소 느껴지는 안도감과 충족감. 이제 남은 것은 편안히 억새평원에 몸을 맡기는 일이다. 결결이  온몸을 쓸어 올리듯 비탈진 사면으로 바람이 불어오고.




간월재는 신불산(해발 1159m)과 간월산(해발 1068m)의 능선이 내려와 만난 자리다. 10만여 평의 억새 군락지가 가을이면 능선을 따라 흐드러진 억새꽃의 물결로 장관을 이룬다. 억새밭 사이를 거닐 수 있는 나무데크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간월재에 오르는 데는 2~3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배내고개나 신불산에서 능선을 따라 등산로로 이어지는 하늘억새길이나, 신불산폭폭자연휴양림 상단지구, 등억온천 등에서 트래킹 코스로 오를 수도 있다. 2011년 10월 울산시에서 조성한 하늘억새길 5개 코스에서 1구간과 5구간이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전망대에서 잠시 쉼-.




간월재로 내려오면서 간간이 뒤로 돌아 간월산 정상을 올려다 보고, 다시 가는 걸음을 이어갔다. 산능선을 훑으며 불어오는 제법 강한 바람에 옷깃도 다시 여며주고. 잠시 이곳이 한국이 아닌 유럽의 어느 풍경을 마주한 것 같은 느낌. 짤랑짤랑, 어디선가 가축들의 목에 달린 종소리라도 들려왔다면 알프스의 목동이라도 된듯한 기분에 젖게 되진 않을까.




간월산 억새평원으로


2011년 10월 17일, 오후 다섯 시가 다 되어가던 시간. 드디어 간월재 억새평원에 닿았다. 평원 사이사이로 연결된 나무데크길로 천천히 그곳을 거닐어보고도 싶었지만 언니와 조카를 데리고 돌아가야 할 길을 생각하면 마음이 급했다. 아쉬움은 이내 접어두고 배내고개로 되돌아가는 길을 묻던 중, 휴게소 공사 중이던 인부 어르신들이 차를 태워주겠다 한다.

고맙게 얻어탄 차를 타고 일반인들의 차량 이동은 통제된 임도로 따라 내려가던 길. 내 무릎 위에서 조카는 피곤함에 금세 잠이 들어버리고. "10월 초순, 그때가 이곳은 억새가 한창이지. 지금은 거의 다 졌다고 봐야지. 하얀 억새꽃들이 억새마다 수북이 피어나면 넘실거리는 그 은빛이 정말 기가 막히지, 장관이야. 반짝이는 햇빛이 반사되면 정말 은빛바다가 펼쳐져, 이 산 위에."  

운전을 하는 어르신이 두런두런 언니와 주고받는 이야기를 뒷좌석에 앉아 들으면서 가만히 눈을 감고 간월재의 평원 위에 펼쳐지는 은빛바다 물결을 그려보았다. 억새가 한창일 때 언제고 한번 정말 그 장관을 만나보고 싶다 생각했다.





 *스밈... 사진을 정리하면서 들었던 음악  Fujita Emi_In my life



그 날의 간월재 산행길 :: 배내고개-배내봉-간월산-간월재 억새평원

주황색길이 돌아내려 온 임도길. 위성사진으로 보니 하얗게 확연히 드러나 보였다. 예전에는 이 길을 따라 간월재까지 차로 이동이 가능했으나 당시는 일반인들의 차량 이동은 통제되었다. 운 좋게 공사장 어르신의 차를 얻어 타고 하산하면서 차를 타고 내려오다 보니, 이 길을 따라 간월재로 걸어 오르는 사람들도 종종 보였다. 1시간이면 다다를 수 있다는 옥수수 아저씨의 말은 이 임도길로 걸었을 때야 가능했을 듯싶다. 노란색 길이 휴양림에서 올라오려던 간월재로 올라오려던  길.   




영남 알프스는 울산 울주군 상북면과 경남 밀양군 산내면, 경북 청도군 운문면 등 3개 시도에 걸쳐있는 해발 1000미터 이상의 7개의 산군(山群)을 지칭한다. 가지산(해발 1,240미터), 운문산(1,188미터), 재약산(1,189미터), 신불산(1,208미터), 영축산(1,059미터), 고헌산(1,032미터), 간월산(1,083미터) 등이 그것으로 유럽의 알프스와 풍광이 버금간다는 뜻에서 영남알프스라는 이름이 붙었다.

영남알프스의 명물은 8~9부 능선 곳곳에 펼쳐진 광활한 억새밭. 신불산과 영축산 사이 60여 만평의 신불산 억새평원과 간월산 아래 간월재에도 10만여 평의 억새 군락지가 있으며 고현산 정상 부근에서 20만여 평의 억새밭이 넘실댄다. 재약산 사자평 억새평원은 100여 만평에 이르는 영남알프스 제일의 억새 군락지였으나 잡목이 늘어나고 소나무를 심어 이제는 억새 명소로의 빛은 바랬다고.
영남알프스에는 통도사와 석남사, 운문사, 표충사 등 문화유산을 간직한 고찰이 많아, 이 고찰을 들러보면서
영남알프스 전체를 종주하려면 2박 3일의 일정은 잡아야 한다.

                                                                                                      

KTX 열차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을 오가며 펼쳐봤던 코레일 잡지에서 영남알프스에 '하늘억새길'이라는 걸 조성한 걸 알게 되었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다시 잡지를 찬찬히 살펴보니 간월재를 향해 무작정 걸었던 산행길이 알고 보니 '하늘억새길'의 제5구간.


<하늘억새길_5개구간 29.7km>

1구간_4.5km_3시간 ------------- 간월재~신불산~영축산
2구간_6.6km_2시간 30분 -------- 영축산~청수좌골~죽전마을
3구간_6.8km_4시간 ------------- 죽전마을~재약산~천황산
4구간_7.0km_3시간 ------------- 천황산~능동산~배내고개
5구간_4.8km_3시간 30분 -------- 배내고개~간월산~간월재



여행길 둘째 날,

파래소, 신불산자연휴양림.. 울산 영남 알프스 첫 걸음 2

https://brunch.co.kr/@smileweep/8


여행길 첫째 날,

시인과촌장, 가지산 석남사.. 울산 영남 알프스 첫 걸음 1

https://brunch.co.kr/@smileweep/7

매거진의 이전글 잔잔한 물가, 가을 햇살 아래 숲의 편안함에 물들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