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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양 Aug 29. 2024

돌아온 소년. 남편의 첫 염색

함께 한 시간의 위대함 / 나의 지팡이

나는 유전적 영향으로 흰머리가 아직 없고 머리숱도 정말 많고 새까맣다. 친정아빠가 아주 늦게 흰머리가 났고 두 남동생들도 이제 40을 훌쩍 넘었지만 까맣고 풍성한 머리카락을 유지 중이다.

주변의 친구들도 이제 염색 안 하면 반백발이라고 투덜거리는 친구들이 늘어나고 있다. 다들 나이 듦(노화)과  익숙해지려고 혹은 익숙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중이다.

남편은 몇 년 전부터 한 가닥 한 가닥 귀 옆으로 흰머리가 올라왔다. 한 가닥에 500원씩 딸아이에게 알바를 시키더니 어느 순간 한가닥에 100원으로 가격을 낮춰서 흰머리를 뽑아냈다.

그만큼 흰머리 찾기의 난이도가 껌이 된 거다.

자꾸 뽑아 대다가 머리에 땜빵 생기겠다고 염색을 하라는 말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일상이 흘러갔다. (웃으면서 '엉' 하고 자기 길 가는 스타일)

여름휴가 1박 호캉스를 즐기며 수영장 썬베드에 누워 있는 남편의 옆머리가 어느 사이 회색이 되어 있었다.  아직도 장난기 많고, 나름 나에게는 소년 같은, 달리 말해 철 없이 해맑은 저 아저씨가 언제 저렇게 머리가 새었나?

아직도 20~30대들 틈에 끼여서 일주일에 한두 번 농구도 하고, 사회인 야구도 하고, 밤마다 컴퓨터 게임 와우(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도 하시는 분!

그런데 벌써 머리에 하얀 눈이 내리기 시작하다니.

컴퓨터 게임이라고는  초등학생 때 남동생과 함께 성에 갇힌 공주를 구하기 위해 끝까지 가보았던 그 옛날의 DOS게임 페르시아왕자, 그리고 작은 공룡이 와 물방울을 쏘는 뽀글뽀글이 전부였다가 남편을 만나고 와우를 처음 해보았다. 차가 없던 25, 22의 우리는 화관, 노래방, 카페 따위를 가고 나면  자연스럽게 피씨방을 찾아갔었다.

난 딱히 할 줄 아는 게임이 없었고, 게임하고픈 남친(남편)은 게임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여친(나)이  아마도 살짝 부담스러웠겠지?

그래서 캐릭터를 하나 만들어서 나를 끌고 다녔다.

"문 열렸어. 들어와. 저기 저 구석에 숨어 있다가 내가 나오라고 하면 나오는 거야"

그럼 나는 그곳에 숨어 있다 남편이 버린 값싼 아이템들을 주웠더랬다. 뭔가 크고 더 반짝반짝 아이템이 나오면 행복해하면서....

"파란 물을 먹어. 빨간 물을 먹어. 내가 문 열어 주면 여기서 넌 젖소(?)를 잡고 있어.

뭐 그런 요청을 했었던 거 같다.

난 그 들판을 내내 달리며 들판에서 수많은 젖소들을  잡고 별 쓸데없는 것들을 주웠던 거 같다. 아직도 나의 유일한 적이었던 젖소들은 잘 있겠지?젖소와는 결혼과 동시에 헤어졌다.  가 차버렸다. 그런 추억을 가진 와우.

(와우 맞겠지? 20년이 흐른 기억이라 정확하지 않다. 검색해 보니 디아블로 였나보다.... 뭐 중요한가?디아블로였어!!ㅎ ㅎ)


늦은 저녁 와우를 한다고 책상에 앉아 있는 남편 머리에 염색약을 차곡차곡 발랐다.

"이게 뭐야? 잘할 수 있지?"편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싫지 않은 내색이었다.

제일 말 안 듣고,  아내마음 모르는 사람이면서 또 나에겐 다정하고 든든하기도 한 사람.

게임을 끝내고 깨끗하게 씻고 나온 그 다시 나에 조금 배 나온 소년이 되어 있었다. 



몇 년 전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에 나왔던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이제 할머니와 손 잡고 걸어 줄 수 있는 날이 얼마 없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끼신 할아버지가 단단한 나무를 베어 알맞은 가지들을 모아서 툇마루에 앉아 나무를 깎고 깎고 깎아 지팡이 7자루를 만들어 두셨다. 내가 떠나고 없을 자리에  나 대신 허리 아픈 할머니를 도울 할아버지의 지팡이 7자루. 그렇게 할아버지는 마지막선물을 남겨 놓고 가셨다. 함께 몇십 년의 시간을 보낸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육지에 잘 살고 있는 부모님을 제주에 불렀다.

"엄마, 나도 엄마 옆에 좀 살아보자.

엄마 김치도 얻어먹고 엄마 얼굴도 자주 보면서 그렇게 살아보자."

엄마를 열심히 꼬셨다. 제주이주바람이 꺼져가고 있었지만 그래도 제주는 한번쯤은 살아 보고픈 섬이였고  엄마, 아빠를 공적으로 모셔왔다. 육지에 집을 팔고 제주에 터를 잡았다. 오기는 쉽게 왔는데 직장이 따로 없어도 다시 가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여긴 나  밖에 없으니 내가 잘 챙겨야 하는데 해가 갈수록 게으름이 나고, 5년차까지는 밖으로 잘 따라 다니시더니 이젠 엄마 아빠도 시큰둥하니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신다. 

평일 어버이날. 주말에 온 가족이 같이 밥 먹었으니 시간도 안되고 그냥 전화만 하고 지나가자 싶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하니 남편이 용돈봉투랑 곱창, 막창 사들고 와서 같이 구워서 점심 먹고 갔다고 했다. 그리곤 나한테는 이렇다 저렇다 말도 없이...

곱창은 아빠의 최애음식이다. 건강에 좋지 않으니 자주는 먹지 않고 특별한 날 먹는 메뉴이다.

내가 못한 효도 사위가 혼자 찾아가 챙긴 마음이 이쁘고 감사했다.


내 생일날이면 아무것도 못해도 소고기 미역국은 직접 끓여준다. 미역국에 시판용 새우튀김에 연어회 같은 간단한 생일상을 준비해 준다. 내 실력도 뭐 비슷하다. 어슬프고 화려하지 않지만 애쓴 흔적이 뭍어나는 생일날의 식탁풍경.


이런 것들이 나에겐 할아버지의 지팡이다.

내가 마음속에 혼자만 모아 가는 지팡이 하나, 둘...

남편의 수백 가지 소소한 단점들을 눈감게 하고

그래도 결국엔 내 편은 남편 밖에 없다고 믿을 수 있게 하는 내가 힘주어 잡는 나의 지팡이.

나는 남편에게 어떤 지팡이를 선물하며 살아야 할까? 한두 달에 한번 염색해 주기.

아주 소박한 지팡이지만 이런 거라도 하다 보면

나도 언젠가  단단하고 튼튼한 지팡이를 건네줄 수 있겠지...

부부는 측은지심의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듯하다.

나 없으면 걷지도 못할 텐데. 불쌍해서 어쩌나?

그래서 마음을 내어 방법을 찾아보는...

여하튼 남편이 플러스 30쯤 젊어진 감사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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