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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연 Aug 10. 2022

음악 선생님이 좋아졌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선생님의 말은 힘이 세다


내 아이는 음치다.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음반을 구매해서 가사집을 보며 따라 하는데, 도대체가 음이 맞지 않아 내 머리 위로 물음표가 마구마구 돌아다녔다. 본인은 똑같이 부르는 거라며 웃는 엄마가 이상하다고 했지만, 아이의 노래 시작은 나의 웃음보가 터지는 시점과 자연스럽게 일치했다.

노래방에서 빵점 나오기 어렵다는 건 대부분 아는 사실, 그 어려운 걸 해내는 사람이 내 아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공교롭게도 아빠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덕분이니까.


그런 아이가 음악시험을 봤다.

전날 음악시험 준비를 위해 노래 연습을 하는데, 악보와는 거리가 먼 음 높이에 "잠깐 마안~~~"을 외쳤다. "자아~ 엄마가 선창 할게 따라 해 봐!" 아이도, 나도, 터지는 웃음에서 헤어 나와 한 소절씩 이어나갔다. 단 한 소절이라도 맞으면 물개 박수로 요란을 떨었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한곡을 제대로 부르기는 어렵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무렵, 이제 됐다고 했다. 가사만 다 외우면 괜찮을 거라고. 선생님과 아이들 앞에서 노래를 부를 텐데 수줍음 많은 아이가 반 친구들의 웃음에 행여나 마음 다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더 이상 없었으니 최선을 다하라고만할 수밖에. 음악시험은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넘어갔다.


여름방학식이 있던 날. 친구들과 놀다가 5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온 아이는 무더위로 잔뜩 붉어진 얼굴로 힘이 빠졌을 법도 한데, 그 어느 때보다 밝고 환한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엄마! 음악 선생님이 나 개성 있게 노래 한대! 얼른 읽어봐."







서술형 통지표를 읽기 전이었지만 반사적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어머~! 음악 선생님 좋은 분이시구나!"


아이의 입은 귀에 걸린 지 오래. 금화를 닮은 초콜릿 2개를 꺼내더니 양손에 잡고 흔들었다. 하교할 때 음악 선생님과 마주쳐서 인사했더니 주셨단다. 그러더니 이내 "엄마! 나 음악 선생님이 좋아졌어!"라고 말했다.


그렇다. 아이들에게 있어 선생님의 말은 거의 신의 말이다. 같은 말이라도 부모가 한 말과 선생님이 한 말을 다르게 받아들인다. 음감이 부족한 아이에게 개성 있게 노래한다는 표현을 쓴 음악 선생님은, 아이에게 매우 긍정적인 신호를 준 것이다. 자퇴라는 단어를 언급했었기에 좋아하는 선생님이 늘어났다는 건 나에게도 좋은 신호가 아닐 수 없었다.  





중학교 1학년 아이의 입에서 자퇴하고 싶다는 말이 나온 지 일주일쯤 되던 날, 과학시험 일정이 다음날로 바뀌었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나 또한 아이의 입장이 되어 갑자기 일정을, 그것도 다음날로 바꾸면 어떻게 하냐고 호응했다. 나의 호응에 힘입은 아이는 공부 시간이 부족하니 90점으로 조정해 줄 것을 요구했다. (자퇴하고 싶다는 아이에게 혼자서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달라며, 과학시험 점수를 조건의 하나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90점으로 바꿔달라는 아이의 표정에 내 가슴은 다시 한번 '쿵!'

자퇴는 진실이었다.


다음날, 과학시험을 본 아이는 90점을 받았다며 잔뜩 찌푸린 얼굴로 들어왔다. 속으론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틀린 게 뭔지 알고 그것을 이해했으면 된 거라고 대화를 이어갔지만, 아이는 입술을 잔뜩 내밀며 이제 어차피 자퇴 못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일단 여름방학을 잘 보내보자고, 네가 계획한 대로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달라는 말로 위로인 듯, 상황 모면인 듯 넘기려는데 , 그러면 자퇴해도 되는 거냐고, 자퇴는 언제 하느냐고 계속 물었다.


자퇴가 단순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라고 얘기해도 '자퇴'를 불쑥 등장시켰다. 가만히 듣고 있다가 조용히 얘기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어느 날은 화가 나서, 긁어 달라며 내미는 아이 등짝을 한 대 때렸다. 그때 나를 쳐다본 아이는 나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등에 난 땀띠를 보며 자주 씻으라는 말을 덧붙였지만, 그건 핑계였다는 걸 눈치를 챈 모양이다. 으이그... 사과할 수밖에.


다음날.

하교한 아이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오늘의 학교 생활은 어땠는지, 힘든 친구가 있는 건 아닌지, 학교 공부가 어려운 건 아닌지, 혹시... 다른 이유가 있는지 다시 물었다. 다 아니라고 하더니 학교 선생님을 거론했다.


체육시간이었단다. 발에 붕대 감는 수업을 했는데, 선생님은 대뜸 "너! 무지외반증이구나!"라고 하셨단다. 친구들 다 듣도록 너무 크게 말씀하셔서 무척 속상했다고.

그렇다. 다른 이유가 있었다.

"선생님이 걱정스러워서 하신 말씀은 아닐까?"라고 되물었지만 아이가 모를 리 없다. 걱정스러운 말투를......

(그래도 이 정도의 문제라면 아이의 마음을 돌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아이의 발은 무지외반증이 있는 것처럼 생겼다. 심하지는 않지만 반듯한 모양은 아니다. 흔히 하이힐을 신어야 생기는 거라고 알고 있지만, 그와 상관없이 발 모양이 그렇게 생겼다. 아마도 남편의 발 모양을 닮은 것 같은데, 내 발 모양도 그다지 예쁘지 않아 "엄마 닮아서 그래요.라고 말씀드리지 그랬어~"라고 말했지만, 내 아이는 그럴만한 번죽이 못된다는 걸 안다.


선생님은 아무 생각 없이 하신 말씀일 거라고, 하지만 네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고 덧붙였다. 친구들 앞에서 큰 소리로 말씀하신 선생님의 의도가 나쁘지 않았더라도 딴에는 무척 속상하고, 왠지 창피하고, 선생님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 모양이다. 결국 아이는 삐죽이던 입에 그치지 않고 눈물을 보였다.


선생님의 말씀과 본인의 마음 불편함으로 '그냥 혼자 공부하는 게 편하다'는 지점에 닿았을 것으로 짐작한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의 학교에 걸어가는 것을 무척이나 즐거워했고, 똘똘 뭉쳐 다니는 단짝 친구도 있고, 담임선생님도 무척 좋아했다. 혼자 공부하는 게 좋다는 이유를 내세워 학교를 그만둔다고 했지만 말하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설령 그 이유가 별 것 아닌 것처럼 들릴 수 있지만, 같은 충격이라도 아픔의 강도는 다 다르기에 아이의 심정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다른 시야에서 바라보면 이건 자존감 문제 일 수 있다. "엄마 닮아서 그래요."라고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냥 '그까짓 것'이라고 넘길 수 없었던 단단하지 못한 아이의 마음이 '내가 잘못 키운 건 아닐까?'라는 지점에 이르게 했다. 아이의 문제는 대부분 결국 부모의 문제라 나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경제적으로 풍요롭지는 못하더라도 잘 키운다고 키웠는데, 무엇이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지 못한 걸까.  


오늘도 난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며 여름방학을 보내는 중이다. 자퇴에 대한 언급은 되도록 하지 않으며.

아... 아이 키우기 정말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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