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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인경 Sep 19. 2019

1-2. 자식은 평생 내 품에 있지 않아

<나는 성장하는 엄마입니다>

<나는 성장하는 엄마입니다>


[애 키우기도 바쁜데 자기계발은 무슨?]

 2. 자식은 평생 내 품에 있지 않아     

 사진 4장이 끼워져 있는 액자를 본다. 두 장은 색이 바래 있고 나머지는 선명하다. 모두 백일 무렵부터 서너 살은 돼 보이는 아기들 사진이다. 닮은 구석들이 있다. 야무지게 다문 입에 살짝 미소를 띠고 있는 큰 아이의 얼굴은 나를 닮았다. 웃음기 없는 얼굴에 부리한 눈을 하고 있는 작은 아이의 얼굴은 아빠를 닮았다. 우리 부부의 어릴 적 낡은 사진을 보며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농사일에 바쁘신 엄마가 여섯 살 정도 되는 나를 집에 혼자 놓고서 나가시던 날, 나는 얼마나 애원하며 울었던지. 엄마도 설득시키려 애쓰다가 시간이 되어 포기하고 뒤돌아 가셨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그렇게 엄마 없인 못 살 것처럼 자라던 내가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엄마를 밀어내려 애썼다. 물론 곁에 두고 싶은 마음과 밀어내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는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이러한 복잡한 시기를 지나 성인이 되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엄마 곁을 맴돌았다. 결혼식을 앞둔 날에는 내가 떠난 빈집에 혼자 남을 친정엄마가 걱정이 되었다. 드라마에서처럼 텅 빈 집에 우두커니 서서 내가 사용하던 장롱을 쓸어내리고 계시지는 않을지, 그러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지는 않으실지, 이러저러한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는 한편에선 달콤한 신혼 생활에 대한 기대로 마음이 부풀었으니, 울면서도 웃는 상반된 감정이 참 낯설기도 했다. 아이를 낳고 정신없이 살아가면서 어느새 가족이라는 테두리는 저기에서 여기로 확실하게 바뀌어 있었다. 

 나는 이제 이곳에 산다. 몸도 마음도 태어나고 자라온 곳을 넘어 새로운 가정이라는 테두리 속에서 산다. 어른이 되었고 가지 말라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떼어 놓고 일하러 나가는 나도 우리 엄마 같은 엄마가 되었다. 같이 있어주지 못해 미안하고 더 해주 못해 하루 종일, 몇 날 며칠 한숨을 쉬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아이들은 일터에 나가는 엄마를 붙잡으며 울지 않는다. 매일 학교에 가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매일 일을 하는 엄마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아이들은 하교 후 엄마가 직장에 있는 시간을 스스로 꾸려 간다. 방과 후 활동을 하건, 피아노 학원에 가건, 놀이터, 집 모든 활동에 스스로 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엄마가 해 줄 수 없는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집에 가면 식탁 위에 놓인 엄마의 쪽지를 읽고 간식을 챙겨 먹고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한다. 형과 동생이 서로를 의지하며 엄마 부재의 시간을 채워간다. 아이들은 그렇게 독립을 준비하고 있다.      

 아이들은 미완성이다. 아니, 심지어 어른도 미완성이다. 누구에게나 그 하루는 처음이고 채워가야 할 24시간이 주어진다. 미완성의 사람이 처음 맞는 하루, 24시간. 우리는 이 공평한 시간을 어떻게 채우느냐에 따라 성장의 크기를 달리하게 된다. 내가 채우느냐, 남에 의해 채워지느냐는 질적으로 큰 차이를 만든다. 지금 당장의 속도를 따져서 편법을 이용하거나 전력질주를 한다면 얼마 가지 못해 지칠 것이다.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장거리 경주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실패할 걸 두려워하는 엄마들이 많다. 많은 아이들은 하교를 하면 교문 앞에서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학교가 끝났음을 알리고 다음 스케줄의 지령을 받기 위해서이다. 학원 수업 도중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몇 시에 나가야 하는지, 다음에 어디를 가야하는지를 묻는다. 엄마가 짜 준 스케줄에 따라 학원과 학원 사이를 오가느라 하루를 바삐 보낸다. 이런 아이들의 대부분은 학습 면에서 무척 수동적이다. 그 단원에서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알지 못하며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스스로 생각하려 들지 않는다. 선생님이 하나에서 열까지 지시해주기만을 멍하니 기다리고 있다. 때로는 알려주어도 그때만 끄덕이다가 뒤돌아서면 잊어버린다. 자신이 노력하지 않고서 얻은 지식, 선생님이 물어다 준 지식은 자신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엄마들은 모른다. 아니, 오랜 세월 경험을 통해 배워왔음에도 그 안에 큰 지혜가 있음을 자각하지 못한다. 스스로 해 봐야 알 수 있다. 이 방법이 아님을 실패를 해 봐야 깨달을 수 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알아 가야 하는지를. 아이들에게 평생 물고기만을 잡아다 줄 수는 없다. 아이들은 자라며 언젠가는 우리 부모 곁을 떠나 또 다른 테두리를 만들어 살아가게 된다. 부모의 품을 떠나는 그날 근심을 내려놓고서 즐겁게 인사를 하려면 우리는 아이들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줘야 한다. 혼자서 시간을 계획하고 채우는 시간이 아이들이 성장하는 시간이다.

 지금 당장 수학 점수가 40점이더라도 혼자서 고민하며 풀어 본 문제는 결국엔 내 것이 된다. 틀린 오답을 풀어오던 과정도 다시 풀고 또 풀으면서 얻어 낸 깨달음도 결국엔 내 것이 된다. 선생님이 이해 시켜준 풀이과정은 선생님의 것이다. 아이들은 이때 선생님이 설명해주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의존증이 생긴다. 선생님이 다음 코스를 설명해 주지 않으면 나아갈 수가 없다. 이러한 아이들은 자신의 능력을 판단하는 자아효능감이 떨어져 있는 상태이다. 특정한 문제를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에 대한 신념이나 기대감을 가질 수가 없다. 

 아이들은 서서히 독립을 준비해야 한다. 지금 당장 백점 맞는 비법을 배우는 것은 무의미하다. 성적을 잘 받기 위해서 수학공식을 외우고 영어단어를 외운다면 그 노력의 유효기간은 시험 종료시간이 된다. 아이들은 삶에 녹아 있는 학습을 해야 한다. 성인으로 자라가며 현실과 연결된 문제들을 해결하고 즐기기 위해 배우는 학습을 해야 한다. 그것은 스스로 할 때 이루어지며 부모는 그러한 시간을 아이에게 기꺼이 허락해야 한다. 아이는 평생 내 품에 있지 않다. 우리가 우리의 부모를 떠나왔듯이 언젠가는 떠나게 된다. 

 아이가 독립을 준비하는 시간은 아이가 단단하게 성장하는 시간이며 엄마 또한 성장을 도모할 시간이다. 엄마의 시간으로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엄마로만 살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다. 엄마이기 전에 나였고 현재의 삶에도 내가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내이며 엄마의 삶도 같이 살고 있다. 게다가 자식으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내가 선택한 일이며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다고 나를 희생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내가 없으면 이 모든 역할은 연료 없는 자동차와 같아 결국엔 멈춰 서게 된다. 

 아이가 떠날 그 날을 계획하고 준비하며 엄마의 성장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엄마는 앞서 태어났을 뿐 아직도 미완성이다. 하고 싶은 것을 다하지 못했고 해야 할 일을 마치지 못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모그룹 회장의 말처럼 세상은 넓고 경험해 볼 것은 널려 있다. 엄마의 눈으로 보여주는 세계가 미처 보지 못한 아이의 세계이다. 엄마가 성장할 때 아이도 성장을 시작한다. 아이를 스스로 크게 도와주는 것도 엄마의 성장이다.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웃기지만 웃지 못 할 말이 있다. 이는 꼬박꼬박 월급을 받는 직장인들이 직장을 박차고 나오려 할 때 주변의 사람들이 외치는 충고의 한 마디이다.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계속 해야 하고 내가 없다고 느끼더라도 안정적이기에 버티라는 현실적인 조언인 것이다. 하지만 실패할 걸 두려워하면 직장이라는 좁은 건물이 지금 당장은 안전하더라도 언젠간 자신을 위협할 수도 있다.

 직장인뿐만 아니라 엄마로만 사는 우리도 아이가 떠난 빈자리를 바라보며 껍데기만 남았다는 허탈함에 괴로워 할 수도 있다. 물론 동네 밖은 위험해 보인다. 어느 방향으로 발을 내밀어야 할지 어떻게 디뎌야 할지도 알 수 없어 불안하기만 하다. 하지만 나는 없고 엄마만 있다는 허탈감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려 한다면 스스로 이불을 걷어차고 나와야 한다. 이때야 말로 엄마의 독립을 선언함과 동시에 아이의 독립이 시작되는 시발점인 것이다. 세상은 넓고 하고 싶은 일은 널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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