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의 조각들
저는 농부의 딸로 태어나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제가 꼬마 시절,
저보다 여섯 살 많은 언니는
밤중에 급히 엄마 심부름을 가야 하기에 무서워서 저보고 같이 가자고 했지만, 제가 싫다고 고집을 부렸다는데...
저는 기억이 없습니다.
벼 모종을 논에 심는 모내기 철의 일이었답니다.
언니가 논에서 엄마 일손을 돕고 집에 와 보니, 제가 동네 꼬마친구를 불러놓고, 언제 봤는지.. 그 당시에는 귀했던, 농 안에 감춰두었던 건빵을 전부 꺼내 커다란 대야에 물을 가득 부어 퉁퉁 불려놓고는 놀고 있더랍니다.
저는 그것도 기억이 없습니다.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1학년 때,
반쯤 담긴 세숫대야 물에 손을 담갔을 때 거짓말한 아이는 손가락이 썩는다는 말이 진짜인 줄 알고 대성통곡하며 엉엉 울었던 순진한 아이.
6학년 졸업식 날에는,
남동생과 둘이 50원짜리 쭈쭈바 하나씩 사서 쭉쭉 빨아먹으며 50원 쭈쭈바에도 행복했던... 그때는 그랬습니다.
기념으로 언니가 사진관에 데려가
남동생과 셋이 찍은 사진과,
운동회 때 입었던 치마저고리에 꽃 대신 '배'라도 손에 들고 찍으라고 사진관에 놓여 있던 배를 손에 들고 찍은 촌스러운 독사진!
3살 차이 나는 남동생과는,
어릴 적 이불 속에서 킥킥거리며
잠 안 자고 속닥거리면, 옆에서 잠자던 큰오빠 "빨리 자라!" 묵직한 한마디... 입을 틀어막고 참다 참다 터져 나오는 웃음 때문에 킥킥거리다 또 한 번 야단 맞고…
한 달에 한 번 마법에 걸리는 그날이면, 순진한 남동생에게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가게 가서 이것 좀 사다 줄래? 그리고 너 먹고 싶은 과자 하나 사 먹어."
심부름을 해주면 과자를 사준다는
미끼를 덥석 문 남동생은
'프리'라고 쓴 종이를 손에 달랑 들고 '프리'가 뭔지도 모르고 저의 부끄러움을 대신해 주던 사춘기 '프리 담당 동생'이었습니다. (참고로 '프리'는 생리대)
키 높이가 한참 높아,
동생은 옆으로 발을 끼고 페달을 밟던 아버지의 자전거!
자전거를 배우겠다며 뒤를 잡아달라는 언니,
출발 전부터 불안했던지, "야, 꼭 잡아! 뒤에서 잘 잡고 있는 거지?" 하고 몇 번이나 확인합니다.
저는 안심시키듯 "응, 언니! 잘 잡고 있어!"라고 대답하고...
신작로에서 비틀거리는 자전거에
간신히 올라탄 언니는 몇 발짝 나가지도 못하고 제가 살짝 손을 놓은 틈에 그대로 논바닥에 곤두박질치고...
온몸이 진흙 범벅이 된 언니는 덜덜 떨면서, "아, 추워! 00야, 나 먼저 갈 테니 네가 자전거 좀 끌고 와!" 말하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쌩~ 집으로 달려가던 언니의 뒷모습... 지금 떠올려도 웃음이 나옵니다.
그 후 언니는 두 번 다시 제게 부탁하지 않고, 남동생이 담벼락을 짚고 연습하는 모습을 보더니, 자기도 허우적거리며 담벼락과 비비적거렸습니다. ㅎㅎㅎ
저는 어릴 적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근사하게 시인처럼 멋진 시를 쓰고 싶은데 떠오르는 단어는 없고...
펼쳐놓은 노트에 '하늘' 하나 써놓고 고심하고, '별' 하나 써놓고 고심하고...
그렇게 한 자씩 끄적이다 보면 별도 자고 가는 밤늦은 시간, 방문 밖에서 아버지의 헛기침 소리가 들립니다.
"이제 그만 자거라~"
아버지는 제가 늦은 시간까지 공부하고 있는 줄 아셨나 봅니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사춘기 시절 내 작은 공부방 창문 밖에는 반짝이는 별들과 바람결에 부딪치는 수수대 소리가 시, 노래, 그림이었습니다.
학교 갔다 집에 들어서면
작은오빠가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을 주절주절 말합니다.
이튿날도 며칠 뒤에도 제 일기장 내용과 똑같은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 봐, 내 일기장 훔쳐봤어!"
작은오빠가 매일 야금야금 제 일기장을 몰래 보고는 내용이 너무 웃겨서 참지 못하고 저를 놀렸던 것입니다.
그 뒤로 저는 자물쇠 달린 일기장을 사용했습니다.
우리 집은 바닷가라 여름이면 민박을 했습니다.
엄마는 제 공부방이고 뭐고 방이란 방은 다 손님께 내주셨죠.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아, 짜증~ 초등학교 때부터 쓰던 일기라 몇 권으로 두툼했던 일기장을 손님이 베개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분명 읽어봤을 텐데…'제 일기장이라고 달라고도 못하겠고, 그렇게 그 일기장들은 민박 손님들 머리맡에 뒹굴다가 없어지고...
사춘기 때부터 써 오던 일기장들은 이사할 때마다 보물처럼 가지고 다니다가...
어느 날 지난 추억을 펼쳐보고 싶은 마음에 한 장 한 장 들쳐보니… "아, 그때 작은오빠가 얼마나 웃겼을까." 오줌을 참았다는 등, 참 대단하다는 등 유치함 그 자체였습니다.
나이 많은 아주머니들이
허리를 굽혀 제게 "아기씨, 아기씨" 하며 "아버지를 똑 빼닮았네요" 하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어린 마음에 "아버지, 저 사람들 누구야? 왜 나한테 절하면서 아기씨라고 해?" 하고 할아버지같이 연세 많았던 아버지께 응석 부리며 물어보니, 아버지는 그 사람들이 머슴이었다고 하셨습니다.
할아버지가 양반집으로 잘 살았나 봅니다.
나 어릴 적 꿈은 선생님이었습니다.
동네 아이들을 모아 놓고 선생님 놀이를 하면, 울 아버지 저보고 "선생님, 선생님" 불러주십니다.
매일 밤마다 아버지 방에서는
창을 하듯 책 읽는 소리가 방문 밖으로 새어 나왔습니다.
"험, 흠~ 아무개야~~~ 들어와 봐라."
아버지 불러서 방에 가 보면 펼쳐진 종이에 한자가 쓰여 있습니다.
"이것이 무슨 글씨인 줄 아니?"
어떤 날은 퍼즐 같은 모양을 내보이며 "이것을 움직여서 뭐가 되게 만들어 봐라" 하셨고,
또 어떤 날은 정승 이야기며, 우리 집 가문은 몇 대손이요, 영의정, 좌의정 하며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볼 수 없는 아버지… 기억은 남아있는데 그 사람은 가고 없습니다.
길 가다 우연히 논에 핀 벼를 보면
아버지와의 추억이 생각나고,
그때 아버지가 들려주셨던 이야기들을 다른 곳을 통해 듣게 되면 아버지가 떠오르고, 아버지의 아버지들을 보면 아버지가 그리워집니다.
이렇게 기억의 부재 속에서도
빛바래지 않고 추억되는 기억은,
아마도 꼬꼬 할머니가 되어서도 기억의 조각들로 선명히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각자의 인생은 마치 한 권의 책과 같습니다.
마음의 화가가 되어 그림을 그리고, 자신만의 소설을 써 내려가며 페이지를 채워갑니다.
누구는 몇 페이지는
쓰다 만 얇은 책도 있고,
누구는 긴 시간을 써 내려간 두꺼운 책도 있을 겁니다.
제 인생의 남은 페이지는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즐겁고 행복하게, 너도 좋고 나도 좋은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너와 내가 함께 이롭고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 그것만큼 의미 있는 삶이 어디 있겠습니까?
곁에 있는 사람 많이 아껴주고 사랑해 주세요!
서툰 인생, 모르고 부족해서 실수하더라도 서로 이해하고 감싸주며 힘이 되어 주세요.
인생은 긴 것 같아도
짧은 것 같습니다.
천천히 가는 듯해도 돌아보면, 어느새 먼 길을 걸어온 나를 마주합니다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면
헤어져도 언젠가 다시 볼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있지만,
영원히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나는 날은 예고 없이 찾아올 것입니다.
제가 아는 모든 이들이
저로 인해 마음 아프지 않기를...
저를 스치는 모든 생명들이
저로 인해 웃을 수 있기를...
제가 알고 모르는 모든 생명들이 행복하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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