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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 Sep 15. 2023

작가와 함께 성장하는 독자로서의 경험

무라카미 하루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는다는 것


이 책의 제목을 접하고 읽어 내려가는 과정은 몇 번이고 꾸어서 익숙한 꿈의 세계를 여기저기 걷는 것과 같았다. 제목에서부터 나는 이 세계가 품고 있을 이야기를 짐작했고 익숙하지만 조금 다른 내(주인공)가 되어 이야기를 따라갔다. 그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조금씩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실은 같은 사람이 겉모습이라는 가면을 바꿔 쓰고 등장하는 듯 그 내면은 어디까지나 이어져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심지어 꿈의 여정도 희미하게 예측할 수 있었다. 친밀한 음악이 흐르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장소와 소품들이 잘 갖춰진 카페에서 책을 읽는 것 같은 익숙함. 마치 이 꿈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나(작가)라는 것을 아는 자각몽처럼 꿈속에서 마주하는 낯선 감정들까지도 편안하게 흐르도록 내버려 둘 수 있었다.


그렇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꾸준히 따라 읽어온 독자들에게 이 책은 익숙하고도 안온한 세계를, 익숙한 길을 따라 펼쳐낸다. 내가 그동안 읽어온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세계(책)가 내 안에 한 자리(서가)를 내어준 기분이 든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처음 접한 열다섯의 나에서 지금의 나까지. 그동안 나는 많은 이야기를 통과해 왔고(여러 책을 읽어 왔고), 인생의 이벤트들을 하나하나 밟아나가고(현실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어떤 것은 나의 의지로, 어떤 것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동안 나라는 도서관에는 무라카미 하루키 말고도 여러 작가들이 각자의 빛을 내며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어떤 이야기는 스르륵 빠져나가고 어떤 이야기는 다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단초가 되어주고 어떤 이야기는 현재의 나를 강렬하게 뒤흔든다. 내 안에 나만의 도서관을 구축해 나갈 수 있도록 마음의 빗장을 풀어준 이 중 하나로 무라카미 하루키를 자리해 둘 것이다.


 


책을 읽는 행위는 내면의 여정이다. 내 안의 굴곡을 따라가며 걷고 또 걷는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익숙한 곳에 있지만 이전과는 무언가 미묘하게 달라진 것을 느낀다. 하나의 이야기를 통과한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다. 이 역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다. 실제로 이 책을 여기저기 걷고 이동하며 읽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물론 가장 많은 시간, 가장 편안하게 읽고 이 글을 쓰고 있는 건 익숙한 물건들에 언제고 손을 뻗을 수 있는 나의 서재이지만 카페로, 도서관으로, 공원으로, 어딘가로 이동하는 짧은 순간순간에 조금이라도 읽으려고 노력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내면과 외부의 풍경에 눈길을 주는 것. 그게 우리가 이 세계를 즐기며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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