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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밈 Feb 07. 2022

[海人해외취업자 인터뷰]2 미국 미술품 프로덕션매니저上

上편: 미국에서 인턴십부터 영주권까지! 계기, 과정 그리고 직장 문화


안녕하세요, 당신에게 스며드는 글을 쓰고 싶은 스밈입니다.


<海人;해외취업자 인터뷰> 프로젝트

해인(海人)이란, 바다 건너 일하는 사람이란 뜻이자 해외취업자 인터뷰의 줄임말입니다. 최대한 다양한 나라에서 일하고 계시는 다양한 직군의 분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합니다. 해외취업을 준비하시는 분께는 정보를, 해외에서 일을 하고 계시는 분들께는 공감을 드릴 수 있는 글을 쓰겠습니다.




오늘의 인터뷰이: 엘리샤 (Alisha)

이력: 한국에서 문화예술 관련 경력을 쌓고 학사 졸업을 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인턴부터 시작해 현재는 시니어 프로덕션 코디네이터로 일하는 중.

인스타그램: xiaolu_1999



두 번째 인터뷰이로 미국 LA에 위치한 한 미술품 제작/판매회사에서 시니어 프로덕션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계시는 '엘리샤'님을 모셨습니다. 제 오랜 절친이기도 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 선뜻 제 프로젝트에 참여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上편: 미국에서 인턴십부터 영주권까지! 계기, 과정 그리고 직장 문화



자기 소개와 회사 소개


Q.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엘리샤라고 해요. 한국에서 학사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인턴십을 와서 이제 미국에서 일한 지 5년 차로 넘어가고 있어요. 현재 오렌지 카운티에 거주하고 있고, 미술품 제작/판매업체에서 일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데이터 분석에 관심이 생겨 관련 공부를 하고, 직장에서 현재 속해 있는 부서 일에 접목시켜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제 이야기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인터뷰에 임하겠습니다!



Q. 해외에서 미술품 제작/판매업체에서 일하시는 분 이야기는 처음 들어봐요. 다니는 직장은 어떤 회사예요?

미술 작품을 대량으로 생산해서 호텔, 병원 같은 데 납품하는 B2B 회사입니다. 개인 소비자한테 가는 건 아니고요. 모델하우스 같은 데 가면 작품들이 많이 걸려있잖아요. 그런 데에 판다고 보면 돼요. 규모는 직원 400명 정도 되고요. 저는 그중에서 프로덕션 부서에서 일해왔어요.



Q. 프로덕션이면 뭐 하는 부서인가요?

클라이언트한테 주문이 들어오면 그 주문이 들어오는 게 세일즈 부서고요. 세일즈 부서가 주문을 정리해서 보내면 프로덕션 부서는 손님이 원하는 시간에 정확한 스펙으로 만드는 일을 합니다.



해외취업 계기


Q. 해외 취업 계기가 어떻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완전히 현실적으로 얘기해도 되나요?(웃음) 일단 저는 문화예술 쪽으로 직업을 너무 갖고 싶었어요. 그런데 막상 일 해보니 너무 힘들어서 우울한 시기를 보냈거든요. 그래서 도피성으로 간 것도 있고, 또 미국에서 문화예술 쪽으로 일할 수 있다고 하니까 흥미가 생긴 것도 있었죠. 아무래도 미국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고 하면 한국에 돌아왔을 때 좋게 봐줄 것 같아서요. 타지에서 오래도록 살고 싶단 맘으로 간 건 아니에요.



Q. 오, 처음부터 해외 이주를 목적으로 오신 게 아니군요. 원래 문화예술 쪽으로 직업을 갖고 싶으셨던 이유는 뭐예요?

제 대학교 전공 얘기부터 해야 할 것 같아요. 저는 문화예술경영을 전공했어요. 당시에 공연 기획에 대한 엄청 큰 꿈을 갖고 있어서 관련 학과를 갔어요. 공연이란 단어만 들어도 너무 행복했던 시절이었죠. 공연이 제 인생의 전부였고요. 그래서 대학 생활 내내 관련 스펙을 쌓았어요. 그런데 3학년이 되면서 공연예술 관련 일을 실제로 하다 보니 현실의 벽에 딱 부딪혔어요. 기대가 크고 꿈이 클수록 현실에 부딪혔을 때 넘어지는 게 더 크다고, 거기서 와르르 무너졌죠.



Q. 어떤 일이 있었나요?

일 자체는 너무 좋았어요. 공연을 보기만 해도 너무 떨렸고 매 회차 제가 무대 감독을 했을 때만 해도 너무 좋았죠. 그런데 일하는 환경이 너무 견디기 어려웠어요. 저는 제가 열정이 있으니까 열정 페이 받으면서 고되게 일해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보통 열정으론 안 되겠더라고요. 제 인생을 포기해야 하더라고요.


88만 원 세대라는 말 있잖아요. 딱 그 단어가 떠올랐어요. 그 정도 받는 걸 당연하게 여겨야 하고, 무엇보다 너무 당연하게 추가 급여도 없이 몇 시간 야근을 시키는 것 보고 심각하다고 느꼈어요. 제 일상이 없었죠. 그것뿐인가요. 갑자기 새벽에 전화 와서 술 마시러 나오라고 하고. 노래방에서 가만히 있으면 네가 어리니까 분위기를 띄워야 한다면서 노래 부르는 걸 강요하고.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이 일의 미래가 안 보인다고 생각했어요.



Q. 그러셨군요. 한국에서 문화예술 관련 일하기가 쉽지 않죠. 저도 비슷한 전공을 했어서 공감이 많이 가네요.

네. 그래도 계속 길을 찾았어요. 그다음 길을 찾은 게 관련 공공기관 인턴이었어요. 2개월 동안 일했죠. 거기에 희망이 있을 거라 생각했고요. 그때도 저는 열정과 꿈이 넘쳐났었어요. 제가 겪은 문화예술 환경을 개선해나가는데 도움이 되는 일을 할 거라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거기 계신 분들 표정이 다 너무 어두운 거예요. 다들 정말 진짜 일하기 싫은데 일해야 해서 여기 있는 것처럼 일하시더라고요. 더 속상했던 점은, 그분들도 저처럼 정말 문화예술 쪽에 엄청난 관심을 갖고 시작하셨단 거예요. 그분들을 보며 제 미래도 이런 건가 슬펐고 제 인생에서 가장 우울한 시기 중 한 시기를 보냈어요.


이제 와서 꿈과 진로를 바꿔나가야 하나 생각하던 차에 이 인턴 기회를 만났어요. 제가 문화예술경영을 전공했다고 했잖아요. 과에서 제일 큰 분야가 전시 기획과 공연 기획인데 저는 미술 쪽도 관심을 계속 갖고 있었어요. 그러다 제가 다니는 회사에서 진행하는 인턴십에 대해 알게 됐어요.



인턴십을 찾은 방법


Q. 어떻게 찾으신 건가요?

이 회사를 만난 계기는 제가 만난 에이전시에서 이 회사를 클라이언트로 갖고 있어서였어요. 이 회사를 소개받을 때 미술 작품을 생산하고 파는 회사라고 들었고 그래서 여기로 가야겠다고 맘을 먹었죠.



Q. 혹시 어떤 웹사이트를 통해 알게 되셨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사실 너무 오래돼서 아쉽게도 정확한 웹사이트는 기억이 안 나요. 대신 제가 찾은 경로를 말씀드리자면, 우선 J1이란 인턴십 비자를 알게 되어서 관련해서 집중적으로 정보를 찾았어요. 해당 비자 같은 경우 보통 대학교에 프로그램을 통해 혹은 에이전시들이 강연을 통해 정보를 얻는데 제가 다니는 학교엔 관련 프로그램이 없었어요. 그래서 다른 강연을 찾다가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홈페이지에 문화예술 관련 해외취업 설명회 공고가 뜬 걸 보고 가서 강연을 들었어요.


사실 한예종 학생 대상 해외취업 설명회였는데 제가 에이전시 측에 연락을 따로 했어요. ‘한예종 학생이 아닌 데 가도 괜찮냐. 너무 관심 있어서 꼭 듣고 싶다’고 했는데 다행히 괜찮다고 얘기를 해주셔서 들었어요. 들어봤더니 내용이 괜찮아서 인턴십 준비를 했고요.



Q. 정말 적극적이시네요. 선발 과정이 어떻게 되나요?

우선 서류를 보내고 합격하면 면접 요청이 들어와요. 그렇게 면접을 합격하면 비자 신청을 진행해요. 대사관 면접을 본 후 최종적으로 비자를 받으면 미국으로 갈 수 있죠.



Q. 면접에선 주로 어떤 걸 물어봤나요?

자기소개, 왜 미국에 오고 싶은지, 미국에서 지낸 경험이 있는지, 미국에서 어떤 걸 얻어갈 계획인지와 같은 질문을 물어봤어요. 제 이력서에 적혀있는 경험들에 대해서도 물어보셨고요. 아무래도 인턴이다 보니 직무 관련 깊이 있는 질문보단 미국과 미국 생활에 관해 많이 물어보시더라고요. 한국에서 미국까지 가서 인턴십을 하다 보니 미국에서 어느 정도 잘 적응하며 살 수 있을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오는지를 궁금해하셨던 것 같아요. 아, 그리고 제 경우 전공이 직무와 관련되어 있어서 깊게 안 물어보셨는데 아예 다른 전공이면 그거에 대해서도 물어보는 것 같아요.




미국 인턴에서 영주권까지


Q. 인턴십 국가로 미국을 고르신 이유가 있을까요?
문화예술 쪽 일자리를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어요. 알아봤을 때 인턴십하는 국가는 다양했었어요. 싱가포르, 일본, 캐나다, 호주 등이 있었는데 저는 국가보단 제 전공과 관련된 인턴십을 하고 있어서 그쪽으로 알아봤어요. 그런데 공연이나 문화예술 쪽 일자리는 거의 없더라고요. 보통 미국 같은 경우는 UXUI 디자인 쪽, 아니면 개발, 패션 쪽을 많이 뽑았던 걸로 기억해요.


인턴십에 있어서 전공이 중요해요. 지원하고자 하는 사업과 연결이 되는 게 꽤 중요한 부분이죠. 그렇기도 하고 제가 지금까지 관심 있게 해온 분야 자체가 문화예술 밖에 없으니까 이 회사에 지원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미국으로 가게 되었어요.



Q. 그렇게 인턴을 시작하셨군요. 미국에서 학사, 석사를 나오지 않고 한국에서 학사를 나오고 바로 미국 회사에서 일을 시작해서 영주권을 지원받았다고 들었는데, 이런 케이스가 귀하잖아요.  인턴에서 시작해 어떻게 영주권까지 받으셨는지 그 구체적인 과정이 궁금해요.

일단 인턴으로 이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미국까지 왔으니까 너무 힘들지만 어떻게든 여기서 잘 살아남자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열정적으로 일했죠.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 너무 힘든 거예요. 직업 특성상 계속 촉박하게 마감 날짜를 맞춰야 하고, 잘못되면 큰 문제가 발생해서 스트레스를 좀 많이 받았어요. 집에 와서도 맨날 일 관련해서 공부하고 야근도 많이 해서 번아웃이 오기도 했고요.


저희 엄마께서 예전에 제게 ‘아무리 힘들어도 끝을 봐야 한다’, ‘뭘 시작을 했으면 끝을 봐라’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는데, 그 말을 기억하고 어떻게든 버텼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한 덕인지 상사분들도 예뻐해 주셔서 영주권 지원 제의도 받았어요. 그런데 당시만 해도 저는 무조건 인턴 기간인 1년만 채우고 돌아가려 했었어요.



Q. 오, 왜 1년만 계시려고 하셨어요?

일단 너무 힘들었고, 타지에서 생활하는 것도 싫었어요. 미국으로 출국할 때도 울면서 갔고요. 갈 때만 해도 1년은 긴 시간이 아니니까 경험을 해보러 가자는 의미로 간 거였고, 영주권 기회가 만약에 오더라도 한국으로 무조건 돌아올 계획으로 갔어요. J1 인턴십이란 게 미국에서 일하면서 문화를 경험해보란 취지에서 나오는 거기도 하고, 에이전시 측에서도 무조건 1년만 있다 오는 거라고 강조했기도 했고요.



Q. 미국의 J1 비자가 다른 나라의 워킹홀리데이 비자와 비슷한가 봐요.

네, 맞아요. 워킹홀리데이랑 거의 똑같다고 보면 돼요. 워킹홀리데이도 돈은 벌 수 있긴 한데 문화체험이 초점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입국 심사에서도 1년 이상 머물지 않겠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게 제일 중요하거든요. 그때만 해도 저는 전혀 상관없었죠. 어차피 1년 동안만 있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영주권 지원 제안이 왔을 때 고민만 두 달 했어요.



Q. 타지 생활에 대한 로망이 별로 없으셨던 타입인가 봐요.

네, 제가 어렸을 때 캐나다에서 몇 달간 짧게 어학연수를 했었는데 그때 너무 힘들었거든요. 그때 주변 한국분들도 보면서 생각보다 외로운 게 해외생활이란 걸 알게 됐어요. 마냥 로망 가득하게 해외 생활을 그리지 않았던 거죠. 그래서 저는 해외에서 살 마음이 없었어요. 특히나 저는 해외에 가족이나 친척이 사는 것도 아니었어서요. 멘 땅에 헤딩하기 싫었죠. 한국엔 부모님도 계시고 친구들도 있는데 외국엔 없잖아요.



Q. 그럼에도 영주권을 신청하신 이유가 있다면 뭘까요?

살다 보니 제가 사는 오렌지 카운티라는 지역이 너무 좋고 저랑 잘 맞더라고요. 일하는 문화도 저랑 잘 맞고요. 그게 가장 컸던 것 같아요.





Q. 미국 학사나 석사, 경력도 없이 영주권 지원 제의를 쉽게 받진 않았을 것 같아요. 엘리샤 님께서 생각하는 본인이 영주권을 받을 수 있던 비결이 있을까요?

일단 처음엔 일이 너무 재밌었어요. 정말 다양한 미술 작품을 많이 볼 수 있었거든요. 충격받은 게 우리나라와는 비교도 안 되게 큰 문화예술 산업 규모였어요. 교수님께 배운 건데 우리나라 문화예술 산업 매출은 껌보다도 작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미국은 상상 그 이상이었어요. 산업의 종류도 굉장히 다양했고요. 문화예술 산업도 돈이 되고 상업성을 띌 수 있단 걸 알게 됐죠.


동시에 일하면서 다양한 작품들을 보는데 너무 재밌었어요. 정말 창의적이고 예쁘고 재미있는 아이템들이 많았거든요. 너무 재밌어서 그 원동력으로 신나게 일했죠. 일이 재밌으니까 일 끝나고 집에 와서도 일 관련해서 공부하고, 외워야 할 것들을 빠르게 외웠죠.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빠르게 습득을 했고, 엔트리 레벨보다 조금 더 윗 단계 일을 받기 시작했죠. 그렇게 좋은 평판을 쌓다 보니 회사에서 영주권을 지원해줬어요.



Q. 대단한 인재시네요.

하하, 전혀 아닙니다. 제가 잘했던 건 시간 관리였던 것 같아요. 마감 기한이 있으면 그때까지 어떻게든 다 끝내는 걸 잘 해냈었어요. 그리고 또 현실적인 이야기지만, 또 일하러 온 한국인들은 외국인 노동자라 인건비는 그다지 비싸지 않은데 정말 열심히 일하잖아요. 그게 또 먹힌 거죠.



데이터 분석과 앞으로 커리어 계획



Q. 그게 사실 해외취업의 현실이긴 하죠. 요즘엔 데이터 분석 쪽에 관심이 많으시다고 들었는데요. 그쪽엔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신 거예요?

인턴 시작 당시에는 매니저분들이 계셨는데요. 코로나로 인해 판데믹이 터지고 나서 회사도 많이 힘들어져서 제 위에 있던 매니저분들을 다 해고했어요. 그분들이 안 계시다 보니 부서 일에 대해 제일 잘 아는 사람이 저더라고요. 그렇게 갑자기 슈퍼바이저가 됐죠. 처음엔 무지막지하게 힘들었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부서도 다시 자리 잡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매니저로서 적응하다 보니 데이터 분석 쪽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왜냐면 매니저 업무를 하다 보면 크고 작은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그때 감에 의존하는 부분이 많더라고요. 그 부분에 늘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는데 데이터 분석을 알게 되면서 ‘이걸 배우면 좀 더 정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데이터 분석 부트캠프를 일과 함께 병행했어요. 거기서 배운 것들을 일에 활용하기도 했거든요. 그러니까 임원들이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그래서 감사하게도 분기마다 보너스도 받았죠.



Q. 멋있으세요. 앞으로의 커리어 플랜도 덩달아 궁금해지네요.

사실 프로덕션 매니저가 될 때만 해도 프로덕션 팀을 안정화시키고 워크 플로우를 정상화시키자는 게 목표였는데 이제 끝났어요. 조금 안정화된 시기가 오니까 슬럼프가 오더라고요. 그 와중에 데이터 분석을 만났어요. 데이터 분석을 공부하면서 데이터 분석의 막강한 힘에 대해 배웠어요. 제가 뽑아낼 수 있는 중요한 정보들이 많다는 걸 느꼈죠. 하면서 재밌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데이터 분석 쪽으로 앞으로 커리어를 쌓아나가고 싶어요.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데이터 분석가로 풀타임으로 일해보고 싶습니다.




해외에서 일하면서 좋았던 점과 문화차이


Q. 해외에서 일하면서 가장 좋은 점이 뭐예요?

가장 좋은 점으로는 일단 회식이라는 게 없다는 점이 있어요. 요즘 한국이 어떤지 모르긴 한데… 좀 더 나아졌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제 생각엔 문화예술 분야 쪽 기준으로 하면 아직도 회식이 있을 것 같아요. 한국 사회생활에서 시키는 대로만 해야 되는 문화나 눈치 봐야 하는 문화가 없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언제든 내가 원하는 제안할 수 있는 분위기가 좋다는 거죠. 오히려 그걸 좋아하고 안 하면 좋은 평가를 못 받기도 하고요. 그래서 매니저들과도 허물없이 편하게 얘기할 수 있어서 좋아요.



Q. 해외에서 일하면서 문화 차이를 느꼈던 에피소드 하나만 소개해줄 수 있을까요?

네. 야근 문화에 관한 건데요. 인턴십 초반에 9시까지 야근한 적도 있고 토요일에 나와 일한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자꾸 추가 근무하니까 부사장님이 부르더라고요. 제가 제일 말단이라 저를 부를 일이 없어서 완전히 긴장해서 갔죠. 갔더니 ‘기록을 봤는데 네가 야근을 많이 하더라'면서 제게 ‘야근을 왜 그렇게 하냐'라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야근하면 돈을 1.5배 받고 토요일엔 2배 받았어요. 그래서 부사장님이 얘는 누군데 이렇게 야근을 많이 하나 궁금해하셨던 것 같아요(웃음).



Q. 오, 많이 떨렸겠어요. 부사장님께 어떤 대답을 하셨나요?

그래서 제가 ‘끝내야 될 일들을 다 못 끝내서 그랬다'라고, ‘책임감 있게 일하고 싶어서 야근했다'라고 말했죠. 그랬더니 부사장님께서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이렇게 야근하는 건 너한테 너무 안 좋을 것 같다'며, ‘이렇게 일하는 걸 회사는 반기지 않는다. 또 너 스스로도 그렇게 계속 몰아가며 일을 하다 보면 번아웃이 올 거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야근을 하기보단, 주어진 일을 어떻게 하면 주어진 시간에 끝마칠 수 있는지에 대해 더 고민을 해봐라'라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일하는 방향이 맞는지를 비롯해 전반적으로 워크 플로우에 대해 좀 더 고민을 해나가라는 말씀이셨어요. 그래야 더 훌륭한 직원인 거지 회사 입장에선 그냥 맨날 남아서 오랫동안 일하는 직원이 더 가치 있는 직원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 말씀을 들은 뒤 야근을 거의 안 했어요. 오히려 근무 시간 안에 딱 집중해서 끝내고 못 끝내면 왜 못 끝내는지를 고민해보고 해결해나가려 노력했죠.



Q. 한국인으로서 컬처쇼크였겠어요.

네. 전 오히려 야근을 많이 해서 칭찬을 들을 줄 알았어요. 누가 봐도 열심히 일하니까요. 저는 쉬는 시간, 점심시간에도 쉬지 않고 일했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신기한데 전 그 당시 제가 정말 일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여기 문화에선 저같이 일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더라고요. 일을 끝내든 말든 쉴 때는 딱 쉬고 야근 잘하지 않고 정해진 시간에 일을 끝내는 태도가 너무 중요하더라고요.



Q. 흥미롭네요. 또 다른 문화 차이를 느꼈던 부분이 있을까요?

네. 엔트리 레벨한테는 책임을 전혀 기대하지 않다는 점에서도 충격을 받았어요. 제가 책임을 지려고 하니 이상하게 생각하더라고요. ‘네가 왜 무슨 책임을 지려고 하냐'는 식으로 되묻더라고요. 여긴 윗 직급일수록 돈을 더 많이 받고 책임을 더 많이 지는 구조라 그런 것 같아요. 회사가 비상상황이라면, 아랫 사원들이 먼저 나서서 일을 더 많이 하는 게 아니라 매니저들이 제일 먼저 남아서 일해야 되는 게 있어요. 또 한국인으로서 놀랐던 건 회의에서 정말 다들 편하게 있단 거예요. 편한 옷을 입고 편한 자세로 있어요. 또 금요일이 되면 먼저 상사들이 나서서 ‘Happy Friday!’ 외치며 ‘이번 주 너무 힘들었다'며 반기고요.





<下편에 이어서>


下편에선 네트워킹 방법, 영어 공부법, 미국 LA 오렌지 카운티 살이에 대해 다룹니다. 정말 재밌고 유익한 이야기가 가득하니 놓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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