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로퓨처리즘으로 되살린 미지를 향한 낭만

영화 <판타스틱 4: 새로운 출발> 감상/분석

by 해달 sMinis

1. 서두

마블 시네마틱 작품들은 슈퍼히어로 서사물의 틀 안에서 나름의 독창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중 가장 성공 사례는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로써, 슈퍼히어로물에 첩보물과 정치 스릴러의 재미를 잘 녹여내어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페이즈 2의 작품들은 영화 외적 메시지만 강조하는 반면 작품성은 상대적으로 떨어져 비판을 받았다. 그리고 최근 그러한 실수를 만회하려는 듯, 새로운 페이즈의 시작을 알린 <썬더볼츠*>는 좀 더 보편적으로 공감할 만한 이야기들을 다룸으로써 침체기에 빠진 마블 프랜차이즈를 어느 정도 부활시켰다.

뒤이어 바통을 이어받은 <판타스틱 4: 새로운 출발> 또한 그렇다. 이 영화의 평가는 다소 호불호가 갈리는 듯 하지만, 표면적인 슈퍼히어로 서사에 심층적 이야기를 잘 녹여낸 듯하다. 이 작품은 과거 세대가 품었던 미래에 대한 순수한 상상과 낭만을 탁월하게 구현한다. 영화는 1960년대를 배경으로, 인류가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 확장되던 시절에 꿈꿨던 레트로퓨처리즘을 제시하며, 과거에 상상했던 미래의 모습들을 미묘한 향수와 함께 되돌아보게 한다.



2. Retrofuturism

레트로퓨처리즘(Retrofuturism)은 과거의 사람들이 상상했던 미래의 모습을 현재의 시점에서 재해석하는 미학적 양식이다. 물론 현재 관점에서는 다소 엉뚱하고 올드패션으로 느껴질 수 있으나, 그 이면에는 당대 인류가 미래에 투영했던 순수한 희망과 낭만이 응축되어 있다. 이는 단순한 회상이 아닌, 특정 시대의 열망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유발하는 독특한 경험을 제공한다.

특히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인 1960년대 미국은 '핵 에너지(Atomic)'와 '우주(Space)'라는 두 핵심 키워드를 중심으로 인류의 상상력이 극대화됐던, 문명사의 가장 역동적인 시기였다. 비록 냉전이라는 정치적 긴장의 산물이긴 했어도, 핵 에너지 기술은 무한 동력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켰고, 아폴로 11호로 대표되는 우주 개발 경쟁은 미지의 영역 개척에 대한 인류의 열망을 고조시켰다. 이 열망들은 당대의 자동차나 비행기 디자인, 첨단 가전제품, 그리고 상상 속 우주 도시를 묘사한 대중문화 콘텐츠 등 다양한 문화적 콘텐츠에 반영되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대에도 기술 발전을 통해 유토피아적 미래가 도래할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과 함께, 미래에 대한 낙관적 열망과 꿈이 충만했던 시기라 할 수 있다.

<판타스틱 4: 새로운 출발>은 이러한 1960년대의 시대 정신과 레트로퓨처리즘의 미학을 다각면에서 재현한다.



3. R2-D2(Rocket, Robot-Design, Detail)

<판타스틱 4 새로운 출발>의 시각적 요소들은 레트로퓨처리즘의 미적 양식을 직관적으로 드러낸다.

먼저 이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은 판타스틱 4의 우주선이다. 이 우주선의 디자인은 1960년대의 낭만을 그대로 담아낸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로켓은 기능적 목적에 충실한 원통형 구조물에 가까운 모양이지만, 영화 속 우주선은 은색으로 반짝반짝 빛나면서 매우 매끈하며 날렵한 디자인이다. 마치 그 시대의 하늘을 나는 슈퍼카의 상상화처럼, 당시 제트기나 스포츠카 등 최첨단 운송 수단에서 발현된 아름다움-스피드에 대한 이상과 동경, 그리고 한계를 넘어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탐험-이 우주선에 투영된 듯하다. 물론 그들의 우주선은 다소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과거 우주 탐험에 대한 동경과 낭만을 불러일으키며, 시대적 염원과 감성을 전달하는 고전적 SF 형상으로 구현되었다.

마찬가지로, 로봇 '허비'의 디자인 역시 이러한 레트로퓨처리즘의 또 다른 미적인 특징을 표현한다. 인간과 똑같은 외형의 안드로이드이나 공장에서 사용되는 산업용 로봇과는 달리, 허비의 독특하고 친근한 외형은 마치 반려동물처럼 인간의 동반자로서 로봇에 대한 당대의 낙관적 상상력을 반영한 듯하다. 특히 자기 테이프의 구조적 메커니즘을 인간의 친근한 얼굴로 대입시킨 것은 아날로그 기술의 위트 있고 창의적인 해석으로써 깨알 같은 즐거움을 준다. 이러한 디테일은 마치 <스타워즈>의 R2-D2처럼, 허비를 단순한 기계적 존재가 아닌 감성적 교류가 가능한 개체로 느끼게 한다. 이와 같이 이 작품의 레트로퓨처리즘의 시각적 요소들은 과거의 순수한 과학적 낭만을 생동감 있게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4. 미지(未知)

레트로퓨처리즘의 모티브는 '미지(未知)'이다. 그중에서도 섣불리 예측할 수 없는 미래와 광활한 우주는 영원한 미지의 영역인데, 영화는 이에 대한 인류의 희망과 두려움을 각각 프랭클린과 갤럭투스라는 캐릭터를 통해 상징화한다. 두 인물은 서사를 넘어, 인간과 미지의 영역 간의 관계를 심층적으로 탐구하는 메타포가 된다.

리드와 수가 오랜 염원 끝에 어렵게 얻은 아들 프랭클린은 작고 연약한 갓난아기다. 그러나 리드와 수는 프랭클린의 무한한 잠재력을 미리 알지 못했고, (물론 리드가 프랭클린의 능력에 대해 어림짐작하는 장면이 여러 번 언급되긴 한다.) 이를 초월적 존재인 갤럭투스가 이야기하고 나서야 그의 아들이 어떤 존재인지 깨닫게 된다. 리드와 수는 프랭클린이 어떤 존재로 거듭날지 미래를 알 수 없으나, 어쨌거나 그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에 아들을 지키고자 한다.

어느 부모에게나 자녀는 부모 자신의 미래로서 여기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부모는 자녀에게 무한한 사랑과 기대를 쏟는다. 이렇듯 프랭클린은 주인공들에게 있어 미래라는 미지의 희망을 나타내는 존재이자, 더 나아가 미지의 세계에 대해 인류가 품었던 순수하고 낙천적인 꿈과 낭만을 대변한다. 자녀의 탄생은 부모에게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열어주는 것이며, 이는 또한 인류가 미지의 영역인 미래가 무한한 발전과 진보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염원과 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반대로 갤럭투스는 프랭클린의 명확한 안티테제이다. 그는 미지에 대한 근원적인 두려움을 상징한다. 거의 도시 규모에 달하는 거대한 몸집과 모든 것을 파괴할 듯한 압도적인 힘을 지닌 갤럭투스는, 인류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우주의 광활함과 그 안에 도사린 통제 불가능한 위협을 의미한다. 판타스틱 4가 초광속 여행을 통해서야 비로소 만나게 된 갤럭투스는 플래닛 이터로써 경악스러운 모습으로 대면하게 되는데, 이는 인류의 기술 및 지식 발전에도 불구하고, 우주에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고 감당하기 어려운 거대한 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이는 미지로부터 파생되는 불안감과 막막한 공포를 나타내며, 우주가 선사하는 경이로움만큼이나 그 이면에 숨겨진 통제불능에 대한 본능적 공포를 의미한다.

한편 프랭클린과 갤럭투스의 크기 차이는 인간이 미지에 대해 느끼는 양가적 감정의 대응으로 보인다. 예컨대 인간은 도박처럼 아주 적은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큰 기대를 품기도 하고, 반대로 자연재해나 우주적 재앙처럼 압제적이고 통제 불가능한 대상에 대해서는 불안감을 가지고 그것을 경외하기도 한다. 이렇듯 희망을 상징하는 프랭클린과 두려움을 상징하는 갤럭투스의 사이즈 차이는 미지를 다루는 감정의 상대적인 규모와 인지적 경향성을 드러낸다. 이는 곧 레트로퓨처리즘이 내포하는 '미래에 대한 긍정적 기대'와 '미지의 불확실성에서 기인하는 불안감'이라는 복합적인 감정선을 구현한다.



5. Scientist

영화 속 판타스틱 4 멤버들은 영화 중반까지 그들 고유의 초능력보다는 수학적 수식으로 가득한 칠판 앞에서 고뇌하고, 과학적 역량을 총동원하여 갤럭투스라는 미지의 위협을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주로 보여준다.

판타스틱 4의 문제 해결 방식은 마치 <인터스텔라>, <아폴로 13>, <마션>와 비슷한 듯하다. 해당 영화들에서는 과학자들이 우주적 난제나 생존의 문제를 과학적 지식과 탐구에 의존하여 극복하는 모습을 중점적으로 보여준다. 이들 영화들처럼 판타스틱 4 역시 (다소 허무맹랑하게 느껴지더라도) 초인적인 힘에 앞서, 과학자로서의 지적 능력에 기반한 문제 해결을 우선시한다.

우주 개발이 절정에 달했던 1960년대의 대중에게 과학자들은 단순히 지식 탐구자를 넘어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고 인류의 미래를 밝히는 '영웅'적 위상을 지녔었다. 이들은 일상생활에서 다소 괴짜로 보일 순 있어도, 탁월한 지적 능력으로 인류 문명 진보의 최전선에서 활약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과학자들의 성취는 인류의 역사를 변화시키고 우주를 향한 진보적 발걸음을 가능케 했다. 이 작품은 판타스틱 4 멤버들의 본업인 과학자로서의 역량을 전면에 부각하며, 당대인들이 과학자들에게 품었던 경외심과 동경을 그대로 반영한다. 그들의 '영웅적 행동'은 초능력보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지적 탐구와 이성적 문제 해결 능력에서 비롯된다. 이는 곧 인류가 우주 개척을 위해 행했던 과학적 열정과 노력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즉, 미지를 향한 과학적 탐구와 지적 역량 자체가 영웅적 행위임을 말하며, 1960년대의 과학적 낭만을 스크린에 재현한다. 이는 단순히 빌런을 제압하는 것을 넘어, 지식과 이성을 통해 미지를 이해하고 극복하려는 인류에 대한 헌사로도 보인다.



6. 결론

<판타스틱 4: 새로운 출발>은 레트로퓨처리즘의 미학을 통해 과거 과학기술력에 대한 열망과 미지에 대해 품었던 인간의 감정을 묘사한다. 이 영화는 1960년대의 세대들이 상상했던 미래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고, 프랭클린과 갤럭투스라는 상징적인 캐릭터를 통해 미지에 대한 희망과 두려움을 동시에 품으며, 판타스틱 4의 문제 해결 방식을 통해 과학적 영웅주의를 드러낸다.

비록 1960년대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이 없는 현대 관객에게도 이 영화가 호소력 있게 다가온다면 그것은 보편적으로 공감할 만한 꿈과 낭만, 그리고 미지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인 탐구심을 자극하기 때문일 것이다. 레트로퓨처리즘은 상상이라는 메신저를 통해 과거 세대들이 현재와 미래 세대들에게 순수한 희망과 꿈을 이야기하고, 변치 않을 인간의 탐험 정신에 대한 낭만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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