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28년 후> 감상/해석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를 볼 때마다 늘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문명이 붕괴된 이후의 세계는 어쩌면 창세기의 원시 상태와 유사하지 않을까? 비록 시간적 차이는 있겠지만, 두 세계 모두 고도화된 법률이나 규칙, 매너, 불문율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오직 생존만이 지배하는 세계, 홉스가 말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벌어지는 현장인 것이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는 줄곧 이러한 극한 상황에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해 왔다. 그중에서도 좀비물은 인간 자체가 재앙의 주체가 된다는 점에서 더욱 자극적이고 흥미롭다. <28일 후> 시리즈는 현대적 감각의 좀비 아포칼립스물의 시초로, 여타 좀비물이 '식욕'을 원동력으로 삼는 것과 달리 '분노'를 좀비화의 핵심 동력으로 설정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를 꾀했다. 이는 인간에게서 이성적인 부분들을 제거하고 본능적 욕구만 남았을 때 무엇이 될지에 대한 발칙한 상상이었다.
<28년 후>의 전작인 <28일 후>에서는 좀비가 아닌 군인들 역시 잔혹한 폭력성을 드러내며 주인공을 위협하는 존재로 그려졌다. 이 시리즈는 전통적으로 성악설에 기반을 둔 비관적 인간관을 근본으로 하고 있는데, 신작 <28년 후>에서도 과연 변함없이 같은 견해를 견지하고 있을까?
철학과 기술이 진보하면서 인간의 정의는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가장 통용되는 정의인 '인간은 이성을 가진 동물'이라는 명제조차 이미 한계를 드러낸 지 오래다. 역사적으로는 근대를 종식시킨 세계대전들이 이성의 한계를 증명했고, 최근에 우리 앞에 나타난 생성형 AI 기술은 이성이 더 이상 인간 고유의 영역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더 나은 존재가 되려고 노력할수록, 쌓아올린 물질적·정신적 문명이 오히려 진정한 우리 본연의 모습을 가리는 '노이즈'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어쩌면 우리를 둘러싼 노이즈를 과감히 제거함으로써 인간의 본질을 찾으려는 생각에서 파생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의 오프닝은 텔레토비 VHS 영상을 보는 마을 아이들의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몇 가지 사실들이 우리에게 알려준다.
첫째, 마을 아이들이 모여있는 모습은 학교라는 제도가 붕괴되어 전근대적인 공동체 양육 방식으로 대체되었다. 둘째, 영상과 음성이 늘어지는 VHS 영상은 현대 문명의 잔재가 서서히 소멸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아이들은 결국 잔혹하게 살해당하는데, 이는 문명 사회의 규약들이 통용되지 않는 잔혹과 무법의 세상임을 강조한다.
오프닝으로부터 28년이 지난 후 주인공들이 거주하는 마을의 모습을 보면 완전히 중세시대로 회귀한 듯 하다. 총기류는 사라지고 활과 창, 칼이 주요 무기가 되었다. 영화는 문명의 퇴화를 강조하려는 듯, 주인공들의 생존기를 중세 전쟁 장면과 교차 편집해서 보여준다. 이는 영화 속 세계관이 단순한 설정이 아닌 핵심 주제임을 강조하는 듯 하다.
또한 공간적 배경 역시, 다른 포스트 아포칼립스물들이 폐허가 된 현대 건축물을 통해 문명의 흔적을 보여주는 것과 달리, <28년 후>는 원시 자연환경 그 자체를 무대로 삼는다. 문명의 흔적을 아예 지워버린 무대 위에서 서사가 전개되는 것이다.
주인공 스파이크의 아버지인 제이미는 아들에게 인간과 좀비를 구분하는 기준을 설명한다. 그는 이성의 유무가 인간과 좀비의 기준이라 말한다. 이 기준은 언뜻 명확해 보인다. '이성'은 감정과 본능을 통제하고, 논리적 사고를 통해 판단하며, 도덕적 기준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능력으로, 보통 일반적으로도 이성을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짓는 핵심 요소로 여긴다.
하지만 이 시리즈는 이미 1편부터 인간과 좀비의 모호성을 보여준 바 있다. 1편 클라이맥스에서 '정상인'인 군인들은 잔인한 폭력을 행사하며 분노 바이러스에 감염된 좀비들보다 더 위협적인 적으로 묘사된다. 이들은 분명 이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폭력성을 억제하기는커녕 오히려 합리화하는 데 사용된다. 좀비와 인간이 구분되지 않는 것이다.
<28년 후>도 다른 방식으로 같은 딜레마를 다룬다. 이 영화의 좀비들은 원시인들 처럼 나체로 있는데, 마치 문명을 벗어던진 인류의 퇴화를 보여주는 듯하다. 아예 '슬로우로우'라는 감염자들은 에너지 효율성을 위해 느리게 움직이도록 '진화'된 것으로 설정된다. 하지만 '진화'라는 표현이 무색하게도 이들은 지렁이까지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자연 생태계의 스캐빈저로 퇴화된 모습이다. 이것만 놓고 보면 <28년 후>의 좀비들은 동물적 본능만이 존재하는 새로운 종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영화는 이런 감염자들에게도 감정과 교류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사람 머리를 찢어발기는 괴물같은 감염체 알파에게도 같은 여성 감염체와 사랑을 나누는 듯하고, 그 여성 감염체는 임신하여 아기를 낳기까지 한다. 그리고 이 출산과정에서 여성 감염체는 아일라와 고통을 교감하는 듯한 모습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러한 감정의 교류는 결국 이성의 발로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영화는 제이미의 구분법이 실제로는 인간성의 복잡성을 담아내지 못하는 불완전한 잣대임을 다시 한번 말해주는 듯 하다.
5. 언약의 실현
하지만 1편서부터 제기한 인간 본성의 문제의식은 이제 다시 단순하게 반복하기엔 너무 진부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28년 후>는 전작들이 제기한 문제를 단순히 반복하는 것을 넘어, 이제는 나름의 해답을 제시할 차례에 직면하지 않았을까?
그러한 맥락에서 <28년 후>는 세 인물들을 통해 성악설의 인간 반대편에 있는 이상적 인간관을 제시한다. 그들이 바로 주인공 스파이크와 그의 어머니 아일라, 그리고 닥터 이언 켈슨이다. 그들은 마치 기독교의 삼위일체처럼 각각의 인간 본연의 가치들을 상징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영화의 주된 서사는 스파이크의 여정이다. 그에게는 멘토이자 아버지인 제이미와 시한부인 어머니 아일라가 있다. 스파이크에게 제이미는 생존 모험을 함께할 만큼 존경과 신뢰의 관계였으나, 그의 외도를 목격하고 또 어머니를 죽이려 했다는 사실을 알게되자 감정은 배신과 분노로 바뀌게 된다. 스파이크에겐 어머니에 대한 동정과 가족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에 그 배신감이 크게 다가온 것이다. 스파이크가 느끼는 분노는 좀비들의 분노와 다르다. 좀비들의 분노가 무차별적이고 무지성인 반면, 스파이크의 분노는 복잡다단한 인간적 감정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스파이크는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그녀를 데리고 마을 바깥의 세계로 나가게 된다. 자기 몸 하나 지키기 어려운 상황에 정신과 육체가 온전치 못한 아일라를 데리고 가는 것은 매우 위험하지만, 그것을 무릅쓰더라도 어머니를 치료하기 위해 닥터 이언 켈슨을 찾는 여정을 떠난다. 이런 용기는 사랑이 생존의 문제을 앞선 초월적 감정이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스파이크의 행동에 개연성이 있다고 생각된다면, 우리는 인간이 단순히 동물적 본능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이타적인 것을 추구하는 존재임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상적 인간상은 어머니 아일라이다. 그녀가 아들 스파이크를 위해서 택한 존엄사는 또 다른 인간적 희망을 보여준다. 인간은 단순히 생명 연장의 본능만 좇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의미를 희생으로 승화시켜 받아들일 줄 안다. 또한 인간들은 타인의 희생을 기리며 감사를 느끼고 아가페적 사랑을 베풀며, 이를 통한 정신적 성숙을 추구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닥터 이언 켈슨이 만든 해골탑은 인간 정신 활동 양태의 정점을 보여준다. 해골탑은 희생과 사랑을 상징하는 조형물이다. 상징은 인간의 추상적 관념이자 기호학적 소통 수단이므로, 해골탑은 단순히 닥터 이언 켈슨에게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스파이크와 아일라에게도 의미 있는 것이 된다.
또한 영화는 스파이크 일행들이 해골탑에 도착했을 때, 아일라가 신생아를, 스파이크는 참수당한 에릭의 머리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병치시켜 보여준다. 이는 죽음과 탄생이 아이러니하게 결합된 의미가 해골탑에 부여되고 있음을 드러낸다. 즉, 해골탑은 무의미한 '뻘짓'이 아니라 생명과 죽음이 뒤섞여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고 인간 소통 매개체가 되는 중요한 공간이다.
해골탑은 종교의 시작을 암시한다. 인간 본연의 이타심을 추존하여 관념으로서 체계화시킨 것이 바로 종교다. 창세의 인간들이 가혹한 환경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을 벌이며, 죽음을 또 다른 시작의 희망으로 해석하고 종교를 만들어 문명을 만든 것처럼, <28년 후>의 종말 이후의 인간들도 절망적인 현실에서도 정신적 숭고함을 좇고 새로운 의미와 희망을 만들어내며 다시 시작하는 존재처럼 그려진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인간성이 발현되는 지점이다.
<28년 후>는 문명과 불완전한 통념이라는 두 겹의 노이즈를 제거함으로써 인간 정의에 대한 나름의 고찰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시리즈의 전작들은 폭력이라는 동물적인 야성을 통해 좀비와 인간 구분의 모호함을 이야기하고 인간 본성에 대한 절망적인 면모를 그려냈지만, <28년 후>는 본능을 초월하여 사랑을 위해 도전하는 용기, 죽음을 포용하는 희생, 그 속에서 의미를 찾는 지혜와 희망을 창조해 내는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의 희망을 이야기한다.
인간의 이러한 능력들은 시간적, 환경적 상황을 개의치 않는 희망과 가능성을 품게 한다. 무법천지의 창세이든, 종말 이후이든 무슨 상관이 있을까? 결국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진보하는 존재로서 어떻게든 살아남을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