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수록 늘어가는 이직 경험담
약 5년이라는 비교적 길지 않은 기간 동안에 나는 참 다양한 종류의 회사에서 일을 했다.
2022년 7월 나의 네 번째 회사로의 이직을 준비하던 기간에 있었던 과정과 그 가운데에서 느꼈던 것들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나는 기획자로서의 커리어를 신입으로 에이전시에서 시작을 했고, 에이전시에서 하는 외주 업무에서 한계를 느껴 인하우스로의 이직을 선택했다.
내가 본격적으로 인하우스 서비스를 한 회사는 완전 초기단계에서 시작하는 스타트업이었는데, 이 회사에서는 제품의 런칭부터 약 1년간 운영을 도맡아 했다.
재밌고 장래가 기대되는 서비스였으나 다양한 아쉬운 점들(초기 기획, 부족한 문제, 좁은 시장, 스타트업 경험이 없는 멤버들 등) 덕에 아쉽게도 큰 성과를 내지는 못하고 회사 사정상 사업이 정리되며 새롭게 이직을 선택해야 했다.
스타트업에서 최소한 라운드 투자까지는 받고 이직을 해야지!!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 나는 인하우스 서비스에서 성공경험을 갖지 못하고 이직하게 되었다.
이것은 이후 면접을 보는 내내 두고두고 아쉬운 점이었다.
내가 이전에 이직을 할 때는 회사를 다니면서 준비하기보다는,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인 이력서/포트폴리오를 준비했었다. 경험 상 무직 상태를 유지한 상태에서는 포트폴리오 완성도를 올리기보다는 당장 회사에 지원하는 게 급급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미리미리 준비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포트폴리오를 만들면서 참고 삼아 본 여러 개의 글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이 었는데, 바로
포트폴리오는 애자일 하게 만들어야 한다.
즉, 너무 완성도를 고집하며 만들기보다는 빠르게 만들고, 지원해서 검증하고 모자란 부분을 고치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만든 기존의 포트폴리오를 개선해서 A타입의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A타입의 포트폴리오는 에이전시에서 했던 '프로젝트' 단위로 구성을 했기에 다양한 것들을 해봤다는 점을 어필하기엔 좋았지만, 하나의 포트폴리오에서 여러 개의 프로젝트를 설명해야 했기에 내가 해봤던 많은 것들을 "~를 했다." 식의 단순한 나열형 구조로 만들게 되었다.
그러나 A타입의 포트폴리오로 지원했을 때 서류를 통과하는 확률이 굉장히 저조했기 때문에,
나는 처음부터 다시 고민을 하고, 지인들에게도 도움을 구했다.
내 A타입 포트폴리오의 문제는 요즘 기업에서 기획자/PM/PO에게 가장 많이 원하는 것들인 "어떤 점이 진짜 문제인지?", "어떻게 해결을 할 것인지?", "여러 해결책 중에서 이걸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지?"와 같은 고민의 과정이 보이지 않는다.라는 의견을 듣고 나는 다른 프로젝트 경험을 빼고 스타트업에서의 문제 인식과 해결 과정만을 집중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만든 것이 B타입의 포트폴리오였다.
B타입의 포트폴리오도 물론 문제는 있었다.
스타트업에서의 경험이 누구에게나 확실하게 어필할 수 있는 '성공경험' 이 약했기 때문에, 내용을 구성하기에 정말 어렵고 한계가 있었다.
(이 덕분에 이후에 나의 회사를 고르는 기준은 '성공경험'을 쌓을 수 있는 곳이 최우선이 되었다.)
그래도 이렇게 '문제'와 '해결'을 기준으로 한 포트폴리오는 어필이 되었는지, 이후로 꽤 많은 수의 스타트업에 서류 합격하여 면접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만약 내가 포트폴리오를 안 고치고 악으로 깡으로 무지성 지원을 했다면, 결국 나중에는 지쳐서 되는대로 회사를 가게 되고, 현재 이직한 회사보다 훨씬 밸류가 떨어지는 회사로 이직을 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포트폴리오를 완전히 뜯어고치는걸 너무 두렵게 생각하지 말자. 오히려 지금 형태에서 완성도를 높이는 것보다 이게 더 쉬울 수도 있다.
이직할 회사를 고르는 것은 늘 어려운 일이다.
기획자는 '내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분야의 서비스를 하는 회사'를 하는 게 맞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함께 스터디를 하는 선배들에게 이직할 때 회사를 어떤 기준으로 고르시나요?라는 질문을 했다.
답변 중 내가 더 기억에 남는 것은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믿음직한 대표님이 있는지?', '함께 일할 구성원이 어떤 사람들인지?'와 같은 부분들이었다.
부족한 도메인 지식은 열정이 있다면 금방 공부해서 채울 수 있는 것은 내가 경험해봐서 알고 있고,
좋은 동료와 함께 일한다는 것은 정말 축복과 같은 부분이라는 것도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좋은 대표와 좋은 문제의식과 해결방안을 가지고 있는 회사를 지원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외부에서는 바라보았을 때는 회사가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회사가 좋은 대표와 구성원이 있는 진짜로 좋은 회사인지 가늠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먼저 회사를 지원하기 위한 몇 가지 기준을 정했다.
1. 최소한 시리즈 A, 가급적 시리즈 B 이상의 투자를 받은 회사
(커리어 동안 제대로 된 성공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에 성공 경험을 가진 회사를 원했다. 물론 예외적으로 제품이 대박을 쳐 투자 없이도 흑자를 내고 있는 회사들도 몇 있긴 했다.)
2. 제품팀의 인원이 두 자릿수 이상으로 있고, 내가 배울 수 있는 선배 PM이 있는 회사
(이전 스타트업에서 개발팀이 내부에 없었기 때문에, 인하우스 개발팀은 필수였다!)
3. 회사의 제품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만들어졌을지, 내가 생각해봤을 때 납득이 되는 회사
(나는 보수적인 편이기 때문에 내가 봤을 때 제품이 말이 안 되는 수준이면, 정말 획기적이거나 망상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4. 최소한 사내 복지가 기본 수준은 되는 회사
(복지의 질과 양보다도 기업 문화와 구성원들에 대한 대표의 생각을 보는 데는 복지만 한 게 없는 것 같다.)
5. 제품이 이미 시장에 나온 회사
(로켓펀치를 통해 온 제안은 거의 제품이 아직 출시되지 않은 경우였는데, 높은 연봉을 제시했지만 내 커리어에서 더 이상의 실패 경험은 너무 리스크가 크다고 생각해서 지양했다.)
위의 기준을 가지고 나는 유니콘과 같은 큰 기업부터 작은 스타트업까지 수많은 기업에 지원을 했다.
회상해보면 한 번에 5~6개씩 나눠서, 최소 35개 이상의 기업에 지원했던 것 같다.
그 가운데에는 무수히 많은 서류 탈락과, 1차 면접 탈락, 2차 면접 탈락까지 별의별 경우들이 있었지만,
내 스스로도 부족한 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행히 멘탈이 무너지진 않았던 것 같다.
여러 개의 기업에 지원하며 느낀 것은 보통 하나의 구직 사이트에서 기업들을 검색할 텐데, (내 경우는 원티드) 어느 정도 내 직군에 맞는 기업에 지원하다 보면 이미 본 정보만 계속 나오기 마련이다.
다른 괜찮은 기업이 더 없는지 보고 싶다면, 이럴 때 잡플래닛이나 로켓펀치 같은 다른 구직 사이트들을 한번 둘러보자. 정렬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괜찮은 기업들을 마주치게 된다.
이렇게 괜찮은(것 같은) 기업들을 만나면, 실제로 괜찮은지 최소한의 검증은 필요하다.
나는 스타트업을 지원할 때 여러 스타트업 정보 사이트들을 비교하면서 확인했다.
더브이씨에서는 스타트업의 투자 라운드와 투자금액, 경쟁사 정보, 투자자 의견 등을 확인하기 좋았고,
혁신의 숲에서는 해당 스타트업의 고용 현황, 재무상태, 손익과 제품의 트래픽, 월 버즈량 등의 정보를 확인하기 좋았다.
이 외에도 각 기업의 자사 사이트나 채용 사이트 등이 있으면 몇 번씩 확인을 했었다.
생각보다 이런 것들을 미리 확인하지 않는 지원자들이 아직도 많은가 보다.
이런 기본적인 정보와 경쟁사들만 미리 알고 가도 면접 분위기가 굉장히 좋아진다.
기업에 지원을 하고 서류합격이 되면 이제 바로 면접이다.
내가 지원한 거의 모든 기업에서는 1) 서류 면접 2) 실무진 면접 3) 임원 면접 순으로 진행을 했다.
(간혹 임원면접 한 번만 하거나, 추가적인 면접이 있는 경우도 있긴 있다.)
나는 이번 이직 이전에도 7번의 면접 경험이 있었지만 그때까지 뭐가 중요한지, 스타트업의 생리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기업에서는 어떤 사람을 뽑으려고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었다.
(오죽하면 면접 때 정말 기본적인 것 외에는 따로 묻지도 않고 입사를 결정했었다.)
이번 이직 간에는 면접 보는 과정에서 배운 것들을 잘 활용해서 계속 성장하는 기회로 삼자!!라는 목표를 가지고 총 8개의 기업과 면접을 진행했다.
마침 이전에 근무했던 스타트업 입사 면접을 봤을 때, "기획자인데 질문이 너무 없다. 그래서 걱정된다."라는 피드백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이와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이번에는 다양한 질문들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막상 질문을 하려고 하니 이 기업과 제품에 대해 아는 게 없으면 질문을 할 거리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다시 지원할 회사를 고를 때 봤던 더브이씨와 혁신의 숲을 보고, 보도자료를 보고, 제품을 설치해서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그 과정을 거쳐 회사마다 면접 간에 해야 할 질문들을 노션에 정리하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질문이 너무 많아서 못 외울 것 같다면, 보기 편하게 잘 정리해두고 면접 때 슬며시 "질문을 적어왔는데 혹시 한번 보면서 질문해도 괜찮을까요?"라고 확인하고 질문을 하면 된다.
아무도 꺼리지 않고, 오히려 질문을 적어올 정도로 준비해왔던 것에 호감을 갖는 경우가 더 많았다.
면접을 진행한 후에는 다양한 기업과의 면접 경험을 그냥 날리는 것보다는 기록해두면 이후에도 좋은 영향이 있을 수 있겠다.라는 판단이 들어 면접 회고도 작성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면접을 보고 나와서 회고를 작성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다행히 아직 비대면 면접으로 진행하던 곳들이 있어서 면접이 종료된 후 잽싸게 질문과 답변을 하나씩 기록을 해나갔다.
실시간으로 기록한 것은 아니고, 면접이 종료된 이후에 기억을 거슬러가며 질문과 답을 기록했다.
사실 이전에는 받은 질문들만 기록했었는데, 이 면접은 내가 한 답변들도 잘 기억이 나서 답변을 적을 수 있었다.
결국 이렇게 기록을 잘했던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었으니, 어쩌면 운명이었을까...?
입사 직전까지도 대표님께 전화를 걸어 다양한 질문들을 했었는데, 이를 보고 내 개발자 친구들은
"니가 기획자지 투자자냐? ㅎㅎ" 라는 우스갯소리까지 했었다.
이 말을 듣고 나니 참 쉽다. 입사 전에는 투자자의 마인드로 회사를 고르고, 질문하면 아주 좋다!
내가 이번에 이직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느낀 것들이 있다.
1. 기획자는 제품의 시작 지점부터 이후 로드맵까지 미리 생각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제품이 만들어졌고, 어떻게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으며, 어떤 점이 좋고, 어떤 점이 아쉬운지, 어떤 부분을 개선하면 좋을 것 같은지, 만약 개선이 안된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지? 등등...
결국 기획자가 입사해서 이후 해야 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기업에서는 이것들을 반드시 물어볼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제품의 문제의식과 해결방법, 그 안의 장점이 발견되면, 자연스럽게 지원 동기가 만들어진다.
(이것들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굳이 지원을 할 필요가 있을까?)
꼭 정답이 아니어도 좋다. 기업이 이전에 한 고민들과 같은 고민을 했다면, 핏이 좋다고 판단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며, 기업의 추후 로드맵에 해당하는 답을 내놓는다면 문제 인식 능력이 좋다고 판단될 것이고,
기업에서 미처 하지 못한 생각을 제시한다면 또 다른 발상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너무 말도 안 되는 답을 하거나 뻔한 답을 하면 내 부족한 역량만 드러내는 꼴이니 단순히 답을 위한 답을 만들지는 말자.
2. 기획자(PM/PO 포함)는 결국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사람이다.
기획자가 뭘 하는 일일까, 기획자로 일하면서 어떤 게 가장 중요한가? 는 이 글에 다 담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지만 내가 최근에 느낀, 그리고 스타트업들이 원하는 기획자는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사람이며, 이를 위해 문제를 정의하고 성공적으로 해결해낸 '경험'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실은 부끄럽게도 스타트업에서 근무를 하면서도, 거의 1년이 다 될 때쯤에야 아! 이게 진짜 중요한 거구나!! 를 체감했다.
이런 성공경험을 기초로 이력서와 포트폴리오가 만들어지고, 기업에서 면접 볼 때 질문할 거리가 된다.
나는 이게 부족했기 때문에, 많은 회사들에서 서류 탈락을 했고, 면접에서도 어버버 말을 절었다.
본인이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면서 자랑스럽게 내세울 문제를 해결한 경험이 없다면, 문제를 빨리 해결하는 게 더 빠른 방법일 수도 있다.
당당한 성공경험 만들기. 이번 이직에서 내가 설정한 가장 중요한 목표다.
3. 결국 중요한 결정은 내가 하는 것이다.
내 주변에 친구들 중에서는 여러 개의 회사에 최종 합격하여 제안받은 오퍼 레터를 다른 기업에 카운터 오퍼해서 더 좋은 처우로 협상한 경우가 있었다.
나도 이번에 그런 것들을 해보고자 비슷한 시기에 회사들을 묶어서 면접을 진행했고, 실제로 비슷한 시기에 두 개의 기업에 최종 합격을 했다.
나의 경우는 아쉽게도 내가 요구한 만큼의 연봉이 수용되지는 못했고, 두 개 기업에서 비슷한 연봉으로 제안을 받았다. (물론 나는 이전 회사에서 최근에 연봉협상을 진행해서 그런 점이 고려되기도 했다.)
최종 합격한 두 개의 기업은 규모도 비슷하고, 투자 라운드도 비슷하고, 연봉마저 비슷했다.
이 기업들 중에서 입사를 할지, 한다면 어떤 회사를 선택해야 할지, 아니면 결정 다음 날 추가로 예정되어있는 시리즈 C 투자를 받은 회사의 면접을 봐야 할지는 너무나도 많이 고민이 되는 포인트였다.
친구들에게도 물어보고, 선후배들에게도 얘기하고, 가족들과도 상의했지만 결국 선택은 내 몫이었다.
당장의 제품 다운로드 수나 사용량은 다른 기업이 나아 보였지만, 나는 결국 '마이 프랜차이즈'라는 기업을 선택했다. 대표님이 성공경험이 많으신 분이셨고, 무엇보다 PM들에게 많은 권한들을 위임하고 믿고 맡겨주시는 부분이 가장 중요한 선택 포인트였다.
나는 이전 스타트업에서 온전한 의사결정 권한을 갖지 못한 PM이었기에, 이에 대한 갈증이 매우 컸나 보다.
다른 기획자라면 또 다른 선택을 했을 수도 있지만, 나는 내가 선택을 했고, 이 선택이 후회 없는 선택이 되도록 또 열심히 해서 내 목표를 이루려고 한다.
약 5년 동안 브런치를 만들자 만들자 해놓고 귀차니즘에 미뤄두고 있었는데, 이렇게 같이 기획 스터디를 하는 피기팟의 글쓰기 챌린지 덕분에 글을 쓰게 되었다.
어떤 글을 쓸까 고민하다가, 이번 이직 간에 경험이 나에게 큰 도움이 되고 많은 것들을 느끼게 해 줬기에 회고하는 셈으로 썼는데... 이거 글이 너무 중구난방이 된 게 아닌가 모르겠다.
또 글쓰기 연습 많이 하다 보면 좀 더 나아지겠지...라는 생각을 갖고 글을 하나둘씩 써보려고 한다.
글 솜씨가 없어 전체적으로 두서없고, 때론 다른 사람들과 생각이 다른 내용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다양한 생각을 나누며 같이 재밌게 봐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