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엘리 May 04. 2023

회사 째고 카페에 앉아있습니다.

스스로도 준비하고 있었던 여름 신제품 출시 플랜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마케터라고 늘 내가 하고 싶은 것, 재미있는 것만 기획하고 실행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마케터가 되면 크리에이티브한 아이디어를 뿜어내면서 멋있게 일할 줄 알았다. 현실은 당장 매출을 올릴 수 있는 할인과 같은 프로모션을 주구장창 기획하면서 할 수 있는 마케팅이 겨우 할인밖에 없나라는 회의감에 시달리곤 한다. 그래도 하나라도 더 팔아야지.. 으쌰으쌰하면서. 


이번 프로젝트는 브랜딩과 매출적인 측면에서 모두 결과를 만들어낼만한 기획이었다. 하필 모처럼 찾아온 5월 연휴에 광고니 브랜디드 PPL이니 일정이 잡혔음에도 불구하고 괜찮았다. 상상할 수 있는 아웃풋이 있었고 생각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확신했었기에 설레였다. 브랜드뿐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모멘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뭐든 괜찮았다. 오랫만에 신나고 재밌었다. 그런 프로젝트가 촬영을 몇일 앞두고 모두 뒤짚어졌다. 예산 집행에 대해서 CFO가 불허를 내리면서였다. CMO가 구두로 보고했었던 부분이 있었고 최근 좋은 성과를 낸 부분이 있었기에 이 흐름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회사의 지원이 당연히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게 우리의 착각이었던 것이었다. 중요한 시기이니 하반기 예산 중 일부를 끌어다 쓰겠다는 마케팅팀과 월별 배정되어있는 예산 내에서만 집행을 해야한다는 재무팀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했고 절대 승인하지 않겠다라는 결론으로 우리가 졌다. 어렵게 확정받아놓은 모델, 광고, 방송 촬영 모든 것을 취소하면서 눈물이 왈칵 났다. 각자의 롤과 KPI도 중요하지만 어찌되었건 조직이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가는게 더 중요한 것 아닌가.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는데 아버지가 말씀하신다. 학비 낼 돈이 지금은 부족하니, 내년에 다시 수능을 봐서 들어가라고.  저축할 돈을 일단 빌려쓰고 갚으면 되지 않냐고 물으니 절대 안된단다. 내년 수능은 어떻게 될지,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른다. 책을 집어들 기운조차 나지 않는다.


2개월동안 준비한 프로젝트가 날아간 것도 억울했고 누군가의 고집스러운 얼굴이 자꾸 떠올라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도저히 오늘은 회사에 갈 기분이 아니어서 아파서 쉬겠다고 하고 회사에 가지 않았다. 카페에 앉아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한다. 이만큼씩이나 나이를 먹고도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격분하는 내 모습이 참 미숙하다고 느껴지면서도 그만큼의 열정과 애정이 있었기 때문에 이만큼 내가 속이 상하구나.. 라며 다독여보기도 한다. 나에겐 아직 3일간의 연휴가 남았고 내일은 마침 어린이날이다. 어린아이처럼 화가 잔뜩나서 씩씩거리고 있는 내 마음을 잘 진정시키고 다음주에는 아무일 없었듯이 출근해야지 뭐 어쩌겠는가. 일단 오늘 하루 결근을 맘껏 즐겨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