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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Sep 21. 2023

마흔 다섯, 연애 6개월차

마흔 다섯살에 만나서 참 다행이야

마흔 다섯까지 미혼으로 있는 덕에 남자도 많이 만나보고 연애도 남들보다 많이 해봤다. (만난 남자가 모두 연애 상대인 것은 아니니 구분해서) 30대에 접어들면서 친구들과의 주요 대화 주제는 '나이 들수록 연애란 얼마나 어려운가'였고 '내가 만난 이상한 남자' 콘테스트라도 열린듯 각자 만난 남자들에 대한 험담을 하며 서로가 서로를 위안삼고 안도했었다. 그렇게 30대를 보내고 40대가 되니 이제는 그런 얘기할 기력도 떨어지고 그냥 그러려니, 이번 생에는 혼자 살다 가나보다라며 마음을 내려놓게 되었다.  


묘하게도, 마음을 내려놓는 그 순간 그를 만났고 벌써 연애 6개월차에 접어들었다. 

30대 들어와서는 연애를 3개월 이상 해본 적이 딱 두번 이었던 것 같다. 사랑 하나로 열정적이었던 20대와는 달리 생각해야할 것도 계산해봐야할 것도 많았었던 것 같다. 나도 상대도 마음이 채 깊어지기 전에 이성이라는 녀석이 마음이의 어깨를 확 뒤로 잡아당기며 '너 일단 가만히 있어봐, 내가 알아서 할게'라며 소매를 걷어부치고 나서서는 짧은 시간안에 담판을 짓고 돌아서는 그런 느낌이었다. 


'난 얼굴보다 키와 체격이 중요한데..' 키 작은 남자와 소개팅하러 가는 길에 기대감은 전혀 없었다. 퇴근 후 피곤해서 그냥 집에 가서 자고 싶기도 한데 소개팅 해 준 사람의 성의가 고마워서 빨리 밥먹고 들어가야지. 라는 생각으로 나갔던 소개팅이었다. 


내 스타일 아니라고 생각했던 그는 알고보니 너무나도 내 스타일인 사람이었다. 테니스라는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고 여행을 좋아하고 활동적인 사람. 자신감있고 자존감이 높은 사람. 유쾌하고 위트 있는 사람. 배려심 많고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 술도 적당히 즐기면서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는 사람. 그까짓 키가 좀 작은게 뭐 대수라고 '딱 내 스타일'인 그를 알아보지 못할 뻔 했다. 30대때 남자만 만났다하면 나댔던 '이성'이라는 녀석 역시 나이를 먹으면서 기력이 딸리는지 이제는 시간을 가지고 좀 더 여유로워 진 것 같다. 


내가 20대, 30대에 그를 만났다면... 알고보니 너무나도 내 스타일인 그를 못알아 봤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지금 마흔 다섯에 만난게 얼마나 다행인지. 나밖에 모르고, 항상 받기만을 원했던 내가 누군가를 챙겨주고 싶고, 그 사람때문에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생각이 항상 어딘가 허기졌던 내 마음 한구석을 따뜻하게 채워주는 것 같다. 


40대의 연애라고 하면 열정은 기대하기 힘든, 웬지 뜨뜻미지근할 것만 같은데 우리의 연애는 그렇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이번 생에는 혼자 살다 갈뻔한 두 남녀가 만나서인지 서로에게 고마워하면서 그 동안의 시행착오 연애들을 반면교사 삼아 꽤나 훌륭한, 모범이 될만한 열정적이면서 성숙한 중년의 연애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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