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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Oct 09. 2023

어쩌다 마케터

지독한 월요병을 앓고있는 마케터의  자기다짐 글


모두에게 그렇겠지만 월요일은 유난히 힘들다

특히 지난주에 대한 주간 매출 분석을 하고 시사점과 향후 방안 준비를 오전 중에 정신없이 해야하는 마케터에게는 월요일은 악몽과도 같다. 매주 새로운 이슈가 있지도 않을 뿐더러 한번 빠지기 시작한 매출에 대한 이유를 매주, 그것도 식상하지 않은 이유를 찾고, 해결책을 제시해야한다는 것이 여간 고달픈 일이 아니다.


그럴때마다 문득문득, 나는 왜 마케팅을 하는가, 나는 어쩌다 마케터가 되었는가?라는 답없는 자조적인 생각들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나는 어쩌다 마케팅을 하고 있는 것일까?


대학교 1-2학년때 실컷 놀고 3학년이 되어 진로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어렸을때부터 뭔가 아이디어를 내고, 기획 하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자연스럽게 기획을 하는 일이 내 직업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막연히 관심있었던 방송, 광고쪽에 어떤 직업이 있는지 살펴보기 시작했고 내 직업에 대한 후보군은 광고기획자와 방송작가로 좁혀졌다.


전공도 난 독어독문학인데, 비 전공자가 저런 직업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찾아보니 해당업종 실무자들이 주로 강의를 하는 전문 아카데미들이 있었는데 광고 연구원이라는 곳과 주요 방송사에서 운영하는 방송 아카데미였다. 2개의 직업에 대해 한치도 기울지 않는, 균등한 관심도 덕분에 결국 최종 결정은 학원비가 결정을 했다. 하필!!! 광고연구원이 방송 아카데미 대비해서 40%는 수강료가 저렴했다. 그때 그 수강료가 나의 진로에 큰 기여를 한 셈이다.


약 30-40명의 수강생들이 모여 5개월정도 수업을 같이 들었다. 경영학과 광고홍보학과 재학생 및 졸업생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긴했었고 나는 3학년으로 제법 어린축에 속했다. 그 안에서 별도 스터디 모임도 만들어졌는데 비전공자로서 일종의 열등감이 있던 나는 의욕적으로 그 스터디도 열심히 참여했다. 지금도 각종 공모전이 많이 있는 것 같은데, 그 당시에는 대기업, 주요 광고대행사에서 광고 공모전을 많이 개최했었었다. 어느날 스터디 모임 멤버들끼리 현대자동차 공모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해당 공모전은 팀으로 참여할수 있었으며 제한 인원이 5명이었었다. 스터디멤버는 6명. 나만 왕따를 당한것이다. 이해는 한다. 나는 광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이제 재밌어보이니깐 공부해보겠다고 온 천진난만한 아이었었고 나머지 멤버들은 다들 공모전 참여 경험도 있고, 전공자이기도 하고, 그런데 인원제한도 있으니 당연히 나는 고려해야할 우선순위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해는 하지만 어찌나 속상하던지 집에 와서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나에게도 기회가 왔다. 갑자기 학원에서 그 광고공모전을 수료 과제로 하겠다는 것이었다. 수료과제라는 것이 있었는데 시기적으로 그런 큰 규모의 공모전이 있으니 겸사겸사 수료과제로 준비하라는 미션이 주어졌다. 팀 공모였기 때문에 학원에서 랜덤으로 팀도 배정해주었다. (이미 준비하고 있던 스터디 멤버들은 그들끼리 그대로 진행하게 해줬다.) 뭔가 하늘의 뜻인것 같기도 하고 오기가 생겼다. 조장까지 맡아 한달간 자나깨나 그 공모전만 생각하면서 준비했던 것 같다. 그리고 결과는 광고부문 우수상 수상!

(그때 그 스터디 멤버 팀은 떨어졌다.)


무려 2002년. SUV 테라칸으로 광고부문 우수상 수상 / 지금도 가끔 지나가는 테라칸을 보면 너무 반갑다


그렇게 처음으로 도전한 광고공모전에서 좋은 결과를 얻고, 자신감이 생긴 나는 이번에는 혼자서 진로에서 개최한 광고공모전에 출품.입선이지만 또 상을 받게 되었다. 이런 수상경력이 일종의 스펙이 되어 마케팅 일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스물두살, 술에 대한 내 철학을 담은 참이슬 광고 / 술은 음식이 아니다, 커뮤니케이션 도구이다.


그렇게 나는 마케터가 되었고, 벌써 15년 넘게 이 일을 해오고 있다. 사실 '어쩌다, 마케터'가 된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마케터'가 되고싶어서 열심히 준비했고 입사를 한 후에도 몇년동안은 주중에 기획할 시간에 대한 여유가 없어서 주말에도 자발적으로 혼자 나가 일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요즘은 안한다)


내가 기획해서 출시한 제품, 프로모션이 광고에서 보여지고, 사람들이 기억하고, 매출이라는 성과로 나타날때 커다란 성취감을 느끼기도 하고 반대로 이거 출시한 마케팅놈들 누구냐는 댓글을 볼때면 뜨끔뜨끔하기도 한다.


​마케팅은 할수록 점점 어렵다는 생각이들고, 특히 요즘은 종종 번아웃을 느끼곤 한다. 15년을 빡세게 일했는데 번아웃을 느끼는게 어떻게보면 정상아닌가?라고 스스로 위로해보기도 한다. 마케팅에 치여서 정신없이 살다보니, 앞으로 내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하지? 정작 나를 위한 마케팅은 잘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글쓰기를 시작했다. 나도 몰랐던 내 생각들을 하나씩 끄집어내어 들여다보다보면 뭔가 길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불현듯 생겼다.


내일은 연휴로부터 복귀해야하는 월요일같은 화요일.  어김없이 매 주 찾아오는 월요병을  극복해보고자 혼자 주절주절 푸념이 좀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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