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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Jan 26. 2024

마흔여섯, 무작정 퇴사하기

40대에 방황 좀 하면 어때?

주니어 시절 나에게 ‘퇴사’라는 말은 적어도 두려움보다는 희망을 의미했었다.  퇴사를 하면 당연히 어딘가로 이직한다는 뜻이었고  한단 업그레이드된 커리어의 기회, 좀 더 나은 대우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연차가 쌓이면서 ‘퇴사’에 대한 생각은 달라졌다. ‘회사가 다 거기서 거기지’, ‘안 힘든 사회생활이 어디있어?’에서 시작해서 사실은 ‘이제 갈 곳도 점점 마땅치 않은데’와 같은 생각들까지..이런 생각들로 목구멍까지 차오 ‘퇴사’라는 말 억누르 살고 있었다.


이게 맞나 싶다가도 이게 아니면 당장 생활을 어떻게 할껀데? 라는 하기 그지없는 질문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해지곤했다.  ‘퇴사’는 내가 생각하면 안되는 어떤 금기어같은 것처럼 느껴지곤 했고 그래서 항상 불안했다. 언젠가는 마주해야하는 ‘퇴사’이기에.


‘퇴사를 하더라도 대책이 있어야지. 그냥 퇴사할 순 없잖아?’ 라는 생각에 각종 재테크와 부업에 대한 유튜브를 벼락공부하는 학생처럼 파고 들기도 해봤고 관련 모임에 나가보기도 했었지만.

‘야 너도 할 수 있어. 나도 회사 다니면서 다 했어’라고 얘기하는 그들과 다르게 나는 회사 생활을 하면서 잘되지 않았다. 잠시 동기부여가 되면서 어쩌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희망 도파민이 돌기도 했지만 그때 뿐이었다. 다시 생활로 돌아와서 고되게 일하다보면 녹초가 되어 그런 것들을 생각한다는게 사치처럼 여겨지곤 했다. 당장 매일 이어지는 내일의 보고 준비하기에 바빴다. 새벽같이 출근해서 밤 늦게 퇴근하는 생활의 연속이었고 끝없는 업무를 정신없이 쳐내느라 정작 내 인생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내 인생은 늘 뒷전이었다.


과중한 업무로 인한 몸의 이상과 스트레스, 불안으로 인한 마음의 이상 징후가 뚜렷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목과 허리에 디스크 증상이 예사롭지 않았고 공황장애에 가까운 심리 상태라고 진단받으며 정신과 치료도 받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버티고 버텼지만,  어느날 입 밖으로 ‘퇴사’라는 녀석이 튀어나왔다 이상하게도 그 말을 뱉은 후에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꼈다. 후회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말하는 ‘번아웃’이라는게 제대로 온 것이었다. ‘번아웃’이라는 말을 한참 많이 쓰기 시작할때 나는 공감하지 못했다. 안 힘든 사람이 어딨어?

어떤 키워드가 하나 나오면 너무 거기에 몰입해서 유행처럼 따라하는 트렌드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번아웃을 제대로 느끼고 나니 번아웃을 비하했던 것에 대해서 사과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고장난 기계를 계속 작동 시키려고 해봤자 미련한 짓일 뿐이다.  왜 고장이 났는지 찬찬히 들여다보고 고쳐야한다. 지금의 내가 그렇다.  


40대의 대책없는 퇴사라니. 마지막 출근길의 기분은 어떨까?  전날 잠자리에 들면서도 궁금했다. 이별앞에서는 울컥울컥 감정 콘트롤을 잘 하지 못하는 편이라 이전에 퇴사할때 질질 울면서 나오곤 했었다. 누가 그만두라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그만두지 말라고 붙잡는 사람들을 모질게 뒤로하고 나오면서도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런 대책없이 퇴사하면서 이렇게 기분이 좋다고?’ 할 정도로 마지막 출근길 나의 발걸음은 너무 가벼웠다. 그리고 회사를 나설때의 기분도 그랬다. 배웅해주는 동료들에게 얼마만인지 모르는 진심을 담은 기분좋은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며 씩씩하게 나왔다. 다행이었다. 무작정 퇴사하면서 질질 짜면서 나오면 세상 찌찔하지 않은가.


그렇게 나, 46세 정부장은 무작정 퇴사를 했다.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에 대한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말로 ‘무작정’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기도 한다. 무작정 영어공부, 중국어 공부, 일본어 공부.. 무작정 여행 시리즈 등등.  너무 생각 많이 하지 말고 일단 시작해라. 시작이 중요하다. 불필요한 생각이 많아지면 행동을 하지 않게 된다. 라는 의미이다.  그런 의미로 나는 ‘무작정’을  퇴사에도 용해보기로 했다. 그동안 이 길이 맞나?라는 중간 점검, 의심없이 여기까지 왔다. 뒤돌아보니 꽤나 멀리 와버렸고 갑자기 이 길이 맞나?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두려웠고, 그 생각이 혹시라도 맞으면 어떻게하지?라며 불안했다. 그런 생각이 들때마다 모른척하며 발걸음을 더욱 재촉했고 가던 길을 그냥 갔다. 만약에 이 길이 아니라면? 잘못된 목적지로 더 멀리 가고 있을 뿐인데 말이다.


아직 나의 퇴사는 몇몇 친한 사람들만 알고 있다. 부모님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그들이 알게된다면 도대체 왜 40대에 뒤늦은 방황이냐고 할 것 이다. 분명한 방향이나 목표를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것을 의미하는 ‘방황’. 사춘기도 없었고 대학때도 2학기 중 한학기는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나름 열심히 대학생활을 했고 대학 졸업하기 전에 취직해서 지금까지 쉼없이 달려왔다. 그동안 바쁘게 사느라 ‘방황’ 한번 할 시간이 없었으니 늦었지만 그 ‘방황’이라는 것을 이제 시간을 내서 해보려고 한다. 길을 잃은 것 같은면 잠시 멈추고 방황을 하는게 차라리 낫다는 생각.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내가 진짜로 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그 곳에 가기 위해서는 어떤 길로 가야할지를 다시 정리해야하지 않을까.


그래서 일단은 ‘방황’을 제대로 한번 해보려고 한다. 이 방황 끝에는 무엇이 있을지 나도 모르고 궁금하다.  방황 끝에 지금까지 온 길이 맞는 것 같아. 그대로 가도 되겠어… 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역시 그 길은 아니었네, 내가 원하는 곳에 가기 위해서는 방향을 바꿔야.. 라는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


본격적방황을 위해 나는 퇴사 후 치앙마이로 날아왔다. 치앙마이 간다고 답이 나오나? 어디 여행 갔다온다고 그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돼? 일시적인 도피일 뿐이야! 평소 내가 나에게 해오던 말이었는데 참 우습다. 매일 내가 부대끼면서 생활했던 곳과 어느 정도 분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필 영하 10도를 밑도는 한파에 무작정 퇴사해서 추운 날씨에 움츠러들위축될까 내 자신이 걱정 되기도 했다. 무작정 퇴사를 하긴했지만 그렇다고 걱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니깐. 따뜻한 곳에서 좀 더 나에게 따뜻하게, 관대하게 대해주고 싶었다.


어쨌거나 난 이미 퇴사했고, 이곳에서 ‘나’와의 그동안 가지지 못했던 시간을 가져볼 생각이다. 매일 매일 치이는 일상에 항상 밀리기만 했던 나를 좀 천천히 돌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먹고, 기도하며 사랑하라’라는 영화처럼 나는 이 곳에서 먹고, 운동하며 생각할 것이다.  

그 말은 곧 나 자신을 진심으로 돌보고 사랑하겠다라는 말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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