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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던지는 질문에 대한 생각

100일 글쓰기 챌린지 - 넷째날

by 혜봄

“나 파주로 이사왔어”
“파주? 거기까지 왜 갔어?”
“신혼집을 파주에 차렸다고? 왜?”


얼마 전 파주로 이사했다. 결혼을 앞두고, 우리가 가진 조건 안에서 최대한 괜찮은 공간을 찾다 보니

파주였다. 사실, 그 이유는 더도 덜도 아니다. 돈.
서울에 신혼집을 차리기엔 형편이 부족했고, 서울에서도 좁은 집에 살려면 살 수 있었지만 그래도 신혼이라고 같은 돈으로 좀 더 넓고 쾌적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한 결정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게 그 선택의 ‘이유’를 계속 묻는다.
왜 파주까지 갔는지, 그 다음은 집을 산건지, 아니라면 전세인지 월세인지까지

그 물음에 담긴 궁금증이 악의는 없다는 걸 안다. 대화를 이어가려는 마음일 수도 있고, 진심으로 내 사정을 알고 싶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그 질문들이 나를 작게 만든다.


“왜 파주까지 갔는지”에 대해 말할 때마다, 마치 내가 무언가 부족하거나 잘못된 선택을 한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택한 길을 해명해야 하는 기분이랄까. 본인들에게 중요한 문제도 아니고, 심지어 돌아서면 내가 파주에 사는지 어디에 사는지 신경도 안쓸꺼면서 웬 질문들을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다.


문득, 나도 남들에게 무심코 했었던 질문들을 되돌아 보게 된다.

“결혼 안 해?”
“아이는 언제 가질 거야?”
“집은 샀어, 전세야?”


우리는 너무 자주, 너무 쉽게 타인의 삶을 묻는다.
그 질문에 특별한 악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전혀 무례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누군가의 선택 뒤에는 이유가 있고, 그 이유에는 크고 작은 마음의 결이 얽혀 있다.
그리고 때로는, 그 이유를 굳이 말로 꺼내고 싶지 않은 날도 있다.

물론 나도 안다. 말이라는 건 관계의 시작이기도 하니까.
가벼운 질문은 대화를 열고, 관심의 표현이기도 하다.
하지만 관심과 배려는 다르다.
관심은 물을 수 있지만, 배려는 조심스럽게 기다릴 줄 안다.

그래서 요즘은 나도 질문을 조심하게 된다.
누군가의 상황을 듣고도 굳이 “왜?”라고 묻지 않으려 한다.
그냥 “아, 그랬구나~”라고 말하려 한다.
이유를 알아야 공감하는 게 아니라, 그저 함께 있어주는 것도 공감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속도로 살아간다.
누군가는 빠르게, 누군가는 천천히, 누군가는 돌아가기도 한다.
그러니 조금은 덜 묻고, 조금은 더 들어주고,
그 사람의 삶을 설명 없이도 존중할 수 있다면,
조금 더 따뜻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의 선택을 묻기 전에, 그 질문이 정말 필요한 질문인지,

그리고 내가 그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잠깐 멈춰서 생각해보면 좋겠다.


말은 쉽게 흘러나오지만, 그 말이 닿는 마음은 늘 그렇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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