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글쓰기 챌린지 - 23일차
부천에서 파주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한 교차로에서 신호 대기를 하며 잠시 멈춰 있었는데,
대각선 길 너머로 익숙한 이름의 학교가 눈에 들어왔다.
‘금옥중학교.’
어? 금옥중? 순간 혼란스러웠다.
내가 졸업한 금옥여고가 금옥중학교와 붙어있었기 때문이었다. 금옥중학교가 이사를 한건가?
아무리봐도 이 동네는 낯설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낯섦 속에 희미하게나마 그 시절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동네는 내가 알아보지 못할정도로 온통 아파트촌으로 바뀌어 있었다.
'와.. 여기가 우리 고등학교, 내가 매일 다니던 그길이었다니...'
조금 전까지 낯선 곳이었는데 우리 학교임을 알아차리고 나니 그때 그 시절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햇살이 좋고 벚꽃이 만개한 4월 어느 날,
교복 치마 자락을 살랑이며 깔깔대던 여고생들.
하교길에 떡볶이를 사 먹고,
하루 종일 붙어서 시덥지 않은 이야기들을 쉬지 않고 하고서도 집에 돌아가서 전화를 붙들고
몇 시간을 수다 떨던 그때의 우리 다섯 명.
신호등이 초록으로 바뀔 때까지,
나는 그때의 우리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동시에 따뜻했다.
그 시절의 우리는 참 해맑았고, 늘 웃는 얼굴이었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아무 일도 우리를 무겁게 짓누르지 않았었다.
함께여서 두려울 것도 없었다.
그랬던 우리가 이제 40대 후반에 접어들었다.
삶이라는 이름의 짐을 어깨에 얹은 어른들이 되어 각자의 자리에서 분투하며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는 가족 문제로, 누군가는 커리어의 갈림길에서,
또 누군가는 경제적 고민 속에서 힘겨워한다.
한때는 매일같이 울리고 떠들던 단톡방도 언제부턴가 조용해졌다.
서로가 서로의 상황을 대충이라도 알기에,
힘들다는 말조차 꺼내기 조심스러운 요즘이다.
괜히 상처가 되지 않을까, 혹은 괜히 내 힘듦을 떠안게 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입을 다물게 된다.
다들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 마음,
나부터도 그렇다.
한창 치열하게 살아온 20대, 30대를 지나
이제 좀 편해질 줄 알았건만 모두들 입을 모아 말한다.
"사는 게 나이 들수록 더 어렵다"고.
그 말이 왜 이렇게 슬프게 들리는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의 우리가 있었고
지금도 그때의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이 문득 큰 위로가 된다.
삶이 각박해도, 마음 한구석에 활짝 핀 벚꽃처럼
여전히 환한 웃음을 떠올리게 해주는 그 시절의 우리.
오늘, 뜻밖의 교차로에서 아주 오랜만에 행복한 순간을 마주했다.
그때의 우리가, 지금의 나를 잠시나마 웃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