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그게 뭐라고

오늘의 해시태그 - # 행복

by 새로운 니나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지고 싶어 한다.


행복 그게 뭔데?

행복하고 싶어요. 행복하세요.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행복을 빌어요.라고 하는 것일까?


나는 어렸을 때부터, 행복은 나랑은 별 상관이 없는 이야기라고 알고 살아온 것 같다. 우리 집은 그리 부자도 아니었고, 엄마 아빠도 그냥 내 눈에는 ‘보통사람’ 같았다. 하나 있는 오빠는 나보다 조금 잘 나게 태어나서, 엄마의 편애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나는 집에서 그냥 문제만 안 일으키면 되는 존재였다. 학교에서도 나는 어중간한 학생이었다. 공부에서나 떠드는 것에서나 두각을 드러내는 것 하나 없는 존재감이었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 책상과 걸상을 들고나가버리면, “000은 어디 갔니?”라는 질문도 없이 그냥 한두 시간은 문제없이 수업을 했을 것 같은 그런 존재. 그래서 나에게 있어서 행복도 그 정도였던 것 같다. 그냥 별 일 없으면 되는 거지.. 행복까지 바라는 건 욕심 아닌가? -라고 말이다.


인터넷 검색창에 ‘행복의 비결’이라는 다섯 글자를 넣고 엔터키를 쳐보았다.


제일 처음 올라와 있는 글은 중앙일보의 2018년 기사다. “행복의 비결이요? 자신의 삶을 사세요.”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제목에 커서를 놓고 엔터키를 친다.

이 기사의 주요 내용은 다큐멘터리 영화 ‘타샤 튜더’의 내용을 소개하고 있는데, 타샤 튜더는 100여 권의 그림책을 출간한 베스트셀러 동화작가이자 동화책의 삽화 작가이다. 그리고 쉰여섯이 되던 해 버몬트라는 시골로 내려가 30여만 평의 정원을 가꾸기 시작한다. 아흔네 살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타샤 튜더는 그녀의 정원을 돌봤고 함께 성장했다. 아흔이 넘은 어르신에게 성장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맞을까 싶지만, 그녀는 죽는 그 순간까지도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그녀에게 사람들은 앞 다투어 행복의 비결을 물었던가 보다. “사람들이 행복이 비결이 뭐냐고 물어오는데, 그때마다 나는 내면의 소리를 듣고 자신의 삶을 살라고 합니다.” 에이 그런 거 말고 뭔가 다른 게 있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다면 조금은 김 빠지는 대답이려나. 행복은 역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찾아지는 것이 아니고, 내면이 채워져서 넘칠 때 느껴지는 것 같다. 글을 쓸 때 그녀를 감싸는 에너지라든가 정원을 가꾸면서 느껴지는 여러 복합적인 감정들이 그녀를 채워 나갔을 테고, 그녀는 그것이 차고 넘칠 때 ‘행복’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렇다. 행복은 사냥꾼의 심정으로 찾아 나설 일이 아닌 것이다. 나의 내면을 착실히 수북하게 채우다 채우다 비로소 흘러넘칠 때 느껴지는 것이다. '행복해지려면 뭘 해야 할까'가 아니라, 일단 당장 뭐라도 착실히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한 이유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안심시키는 것은 타샤 튜더는 56세 되던 해에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나에게는 아직 56세가 오지 않았으니, 무엇을 하면서 남은 30년을 살 것인지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