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해시태그 - # 당첨
얼마 전 집으로 빨간 피구공이 하나 배달됐다. 즐겨 듣는 팟캐스트 방송에서 우울할 때 어떤 방법으로 우울에서 벗어나는지 알려달라기에 간단하게 내용을 적어 보냈다. 나의 우울증 탈피방법은 ‘대청소’라고 썼다. 우울할 때는 청소도 하기 싫어 집이 어질러지기 마련인데, 우울에서 탈피하려고 마음을 먹는 날은, 창문을 열고 음악을 크게 틀고 대청소를 하면 마음이 좀 나아진다는 내용이었다. 얼마 후, 사연이 채택됐다면서 피구공을 선물로 받았다. 피구공을 받은 건 좋은데, 피구? 혼자인데 나 누구랑 피구 하지? 사람을 모아야 하나? 몇 명이나 모아야 하나? 하는 고민에 빠졌다.
또, 얼마 전에는 집으로 샌드위치 메이커가 배송됐다. 더 이상 안 쓰는 신용카드가 있어서 카드를 없앴는데, 마침 다른 신용카드사에서 카드를 새로 만들고 2만 원만 사용하면, 연회비도 면제되고 샌드위치 메이커도 보내주는 이벤트를 연거다. 그래서 냉큼 카드를 만들었다. 6개월 이내 사용 이력이 없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는데, 처음 만든 카드이니 조건에 맞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새로 받은 신용카드로 2만 원을 썼고, 정확히 한 달 후에 귀여운 샌드위치 메이커가 우리 집으로 왔다. 지금 나는 아침마다 샌드위치 메이커를 잘 쓰고 있다. 나는 뭐든 열 번만 쓰면 본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본전은 이미 뽑고도 남았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나는 자주 뭔가에 응모하고, 당첨된다.
얼마 전에는 ‘연두’라는 천연 콩 발효액 체험단을 모집한다기에 요알못(요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 임에도 불구하고 지원했다. 지원 동기는 다음과 같다. ‘엄마와 함께 쭉 살아서 나이가 차도록 라면 끓이기 밖에 못하는 요알못입니다. 그런데 엄마와 이별을 하고 보니 혼자 밥해먹기가 힘드네요. 게다가 코로나 때문에 외출을 자제하라는 정부 시책에 적극 동참하려다 보니, 집에서 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별로 없어 걱정입니다. 혹시 체험단으로 뽑아주신다면 연두를 이용해서 열심히 음식을 만들어 요알못에서 벗어나 보겠습니다. 결과는 당연히 당첨! 집으로 갖가지 연두 4개와 레시피북이 배달되었고, 나는 한 달 동안 미역국과 떡볶이, 새송이 계란덮밥, 양파볶음국수, 계란찜 등을 부지런히 해 먹었다. 요리법을 배울 수 있는 데다가, 내가 만든 요리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기만 하면 되니까, 이득이었다.
SNS 친구들에게도 나는 당첨을 향한 손을 잘 내민다. 어떤 분이 집에 뜨개질 실 남은 게 많은데 필요한 분은 말씀 주세요 하길래, 손을 들었더니 진짜 뜨개실을 잔뜩 보내주셨다. 나는 감사의 표시로 내가 쓴 책을 한 권 보내드렸다. 또, SNS상의 어떤 친구는 자신이 통신사의 VIP 고객이라 영화를 몇 편 공짜로 볼 수 있는데, 혹시 영화 볼 생각이 있으면 예매를 해주겠단다. ‘저라도 괜찮을까요?’ 하고 살포시 연락을 했더니, 진짜로 ‘안녕까지 30분’이라는 영화 예매를 해줬다. 덕분에 재미있는 영화 한 편을 감상했다. 그분께는 어떻게 은혜를 갚을지 아직 고민 중이다.
이렇게 세상에는 생각지도 않은 당첨의 기회들이 널려있다. 작게는 영화 티켓 한 장의 기회일 수도 있고, 크게는 아마도 로또 당첨의 기회쯤이 되려나?
마루야마 겐지라는 일본의 대작가가 있다. 그는 젊은 시절에 작은 무역회사의 통신담당 직원이었는데 그만 회사가 부도가 나고 말았다. 그와 때를 맞춰 마루야마는 틈틈이 준비한 ‘여름의 흐름’이라는 책을 써서 아쿠타카와 상을 수상해 주변을 놀라게 한다. 주변 사람들은 그의 등단을 두고 ‘운이 좋았다면서, 복권에 당첨된 거나 마찬가지’라며 실력을 폄하했다. 그때 마루야마는 이렇게 되받았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사지 않으면 결코 당첨되지 않는다. 당첨될 턱이 있겠느냐라고 생각하기 전에 자네들도 한 번 사보는 것이 어떨는지”라고..
나는 마루야마 겐지의 아쿠타카와 수상과 비교하면 한없이 작은 당첨의 기쁨을 몇 차례 누렸을 뿐이지만, ‘미경이 쟤는 참 운이 좋아.’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을 하고 싶다. “차이는 그것뿐이야. 나는 뭐라고 써서 보내고, 손이라도 들고, 줄이라도 서잖아. 그러니 이제 너네도 하면 된다고. 남의 운을 운운하기 전에, 일단 내일 당장 로또라도 사고 나서 당첨되고 싶다고 말을 하라고.” 지난주에 산 로또가 꽝이었다는 것은 비밀로 하고, 생각난 김에 나도 내일은 로또를 꼭 사야겠다.
[소설가의 각오, 마루야마 겐지, 문학동네,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