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해시태그 - # 커피
미리 고백하건대 나는 커피맛을 모른다. 그냥 내게는 언제나 여전히 쓴 물?이다.
나는 한때 달달한 믹스커피 중독자였다. 믹스커피를 나는 노동 커피라고 부른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꼭 마셔줘야 준비운동이 끝난 느낌이랄까? 방송작가로 일하던 시절 하루에 네 잔에서 여섯 잔 정도를 꾸준히 장복했으니, 그 시절의 나는 참 답도 없었다. 그때의 내가 어느 정도로 믹스커피 중독이었는가 하면, 1년 반 정도의 시간 동안 치아교정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치아 미백 서비스를 받은 날이었다.
‘이삼일 정도는 커피는 드시면 안 돼요. 제일 착색 잘 되는 게 커피거든요.’
‘네? 이삼일이 나요?’
‘네 기껏 미백해놨는데 커피 드시면 말짱 도루묵이 된다고요. 조심하세요.’
‘네 노력해볼게요’
결과는 보나 마나, 저녁 방송을 준비하면서 원고를 쓰는데 커피 금단현상이 나오기 시작한다. 하품이 계속 나오면서 어깨가 뭉근하게 무거워지는 느낌? 그리고 눈꺼풀에 시계추라도 매달아놓은 것처럼 무겁다. 치과에서 하는 말을 한 귀로 흘려듣는 척하며, 하는 수 없이 사무실 한편에 쌓여있는 (당시 라디오국 사무실의 복지정책이라면, 커피믹스만큼은 떨어지지 않게 마시게 해 준다는 거였는데, 요즘엔 그마저도 없다는 놀라운 사실) 커피믹스를 탔다.
‘아 치과에서 커피 마시면 안 된 댔는데, 어쩌지?/ 어쩌긴 뭘 어째? 일 안 할 거야? 원고 안 쓸 거야?’
결국, 나의 선택은 빨대를 사용해서 믹스커피를 재빨리 목구멍으로 넘기는 것이었다. 그러면 커피는 치아에 닿지 않으면서, 위장으로는 넘어갈 테니 각성효과가 날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그때 너무 뜨거운 커피를 빨대로 마시는 바람에 목구멍이 화끈거렸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아뜨뜨뜨~
그렇게나 눈물겨운 노력을 하였건만, 치과에 다시 갔을 때 간호사가 하는 말!
‘커피 드셨죠. 착색됐네. 그렇게 드시지 말라고 했는데도, 어쩔 수 없네요’
‘그래 뭐 나도 어쩔 수 없지.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일을 안 할 수는 없잖아’가 나의 변명이었다.
그렇게 믹스커피 러버로 살아오던 내가 요즘은 원두커피를 내려마신다. 오늘 마신 커피는 케냐 AA였다. 몇 년 전에 친구네 집에 놀러 갔는데, 친구가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려주는 거다. 뭔가 굉장히 있어 보이는 자태였다.
‘이건 무슨 커피야?’
‘에티오피아. 산미가 좀 있는데 마실만해. 한 번 마셔봐’
첫맛은 굉장히 시었다.
‘커피가 쓴 맛인 것도 불편한데, 게다가 시기까지? 내 취향은 아니었다.’
하지만, 친구가 직접 내려준 정성이 있으니 마시긴 다 마셨다.
스페셜티의 시작은 아마도 그때가 아니었을까 싶다.
언제부터인가 커피숍에서 아메리카노를 습관적으로 마신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업무적인 미팅을 위해서 커피숍을 참 자주도 간다. 사실 그럴 때 우리는 커피를 마시는 게 주목적이 아니다.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긴 해야 하는데, 길거리에 서서 이야기를 할 수 없으니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이야기를 하는 거다. 이를테면 프랜차이즈 커피숍의 커피 값은 일종의 자릿세라고나 할까? 그래서 사실 커피 맛에 대한 평가도 무의미한 것 같다. 게다가 나처럼 커피 맛을 모르는 미맹의 경우엔 쓰다 안 쓰다로 나뉘는 정도?
어느 날, 제주도로 출장 갈 일이 있었다. 알고 지내는 바리스타가 있었는데, 내가 제주에 간다니까, 제주도에 가면 그 커피숍을 꼭 가보라고 알려준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래도 커피가 맛있다고 하니 한 번은 가볼까 하는 심정으로 업무를 마치고 밥을 먹고, 커피숍에 찾아갔다. 이중섭 거리 초입에 있는 카페는 규모가 크지 않았지만 사람이 꽤 많았다. 그런데, 대부분의 손님이 관광객들이라기보다는 부근에서 일하는 주민들처럼 보였다. 그 차이는 옷을 보면 느껴진다. 제주도를 관광차 들른 사람들이라면 일단 쫙~ 빼입는다. 사진을 찍어야 하니까..
그런데 주민들은 일하다 잠깐 커피 마시러 나온 옷차림이기 때문에 겉옷을 안 입은 사람들도 있고, 손엔 휴대폰이나 지갑 정도만 챙겼다. 주변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이라면 정말 커피가 맛있는 곳일 수 있겠다.
주문을 하려고 보니까.. 원두커피 스페셜티 A, B, C 타입이 있는데 플로럴 향이 강한 시트러스 블라블라, 다크 초콜릿 같은 느낌의 블라블라, 견과류 특유의 고소한 블라블라 이런 식으로 나뉘어 있었다. 사실 그동안 많은 커피숍에 가서 설명글이 덧붙여진 커피를 마셔봤지만, ‘어 정말 맛이 설명 그대론데’ 하는 커피는 많지 않았다. 그런데 그곳의 커피는 달랐다. 확실히 커피 향부터가 정확하게 구분이 되면서 맛이 달랐다. 아~ 로스팅 잘하고 잘 내린 커피는 이런 맛이 나는구나. 정말로 정확하게 설명이 그대로 느껴지네. 시트러스 자몽 같은 맛이 나고 다크 초콜릿 같은 맛이 난다는 건 이런 거였구나..
그날 이후로, 결심했다. 커피를 한 번 배워보기로. 늘 그냥 쓰다고만 생각했는데 미묘하게 다른 커피 맛이 뭔지를 알고 나니까, 더 궁금했다. 그동안 커피 맛을 몰라서 제대로 못 즐겼다면, 이제라도 배우면 되지 않을까? 실천은 좀 빠른 편인 나는 커피 바리스타 학원에 등록을 하고 두어 달 동안 열심히 다녔다. 필기시험엔 다행히 한 번에 붙었다. 고백하자면, 실기시험에 한 번 떨어졌다. 10분 안에 에스프레소 4잔과 카푸치노 4잔을 만들어 낸다는 게 결코 녹록한 일이 아니다. 나는 두 번째 에스프레소를 만들다가 커피케이크가 머신 윗부분에 붙어 커피케이크가 부서지면서 머신에 쏟아지는 사고를 치고 말았다. 그 이후로는 시험을 어떻게 마쳤는지 기억도 안 난다. 보나 마나 불합격! 내가 여차저차 이런 실수를 했다고 강사님께 설명을 했더니, 몇 년간 학생들을 가르쳤지만, 실기고사장에서 그런 경우는 처음 봤다면서, 다음엔 잘할 거라고 위로를 해줬다. 그 덕분인지, 재도전을 한 결과 커피 바리스타 2급 자격증도 따냈다. 그리고 이어서 커피 핸드드립 과정도 배우고, 라테 아트까지 마스터했다. 라테 아트를 배웠다고 해서 지금도 할 수 있느냐고 묻지는 마시라. 그냥 배우기는 했었다는 거다.
어쨌거나 바리스타 과정을 거치고 핸드드립 과정까지 배운 덕에 우리 집에도 핸드드립 도구들이 쫙~ 정렬되어 있다. 그리고, 요즘의 나는 커피 원두 60알을 세서 원두를 간다. 60알인 이유는 베토벤 때문이다. 원고를 쓰다가 베토벤이 아침마다 커피 원두 60알을 정확하게 핸드 픽 해서 내려마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베토벤은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아침 식사에 나의 벗을 한 번도 빠뜨린 적이 없다. 나의 벗 커피를 빼놓고는 어떤 것도 좋을 수가 없다. 한 잔의 커피를 만드는 커피 빈은 내게 60여 가지의 영감을 준다.” 베토벤의 발 끝도 따라갈 수 없지만, 나 또한 여러 가지 영감을 얻고 싶어서, 아침마다 60알의 모양 좋은 원두를 핸드 픽한다.
천편일률적인 맛의 커피믹스를 주야장천 마실 때와 비교해보자면, 원두를 갈고 핸드드립으로 내리는 조금은 번거로울 수 있는 과정인데 즐겁다. 즐거우니까 하는 거다. 직접 내린 커피를 마시면서 ‘오우. 오늘 커피 괜찮은데’라고 생각할 수 있어서 요즘 나는 조금 행복하다. 커피 맛이 궁금해서 나는 커피를 내린다.
8그램의 행복, 김현정, 신미경, 이윤정, 도서출판 지서연,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