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조각과 캠코더 영상으로 기억하는 내 7살 :: 약 20년 전 이야기
늘 얘기하는거지만, 나는 동생이 없어서 울었던 유딩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아무리 투닥거리고 싸워도 같이 손을 잡고 집에 갈 언니, 오빠, 동생이 있었는데 하필 그 유치원에서 나만 외동이었다... 검단산에 올라가서 돌탑을 쌓으며 빌었다. 제발 '남동생'이 생기게 해달라고 빌었다. 꼭 남동생이어야했던 이유는, 우리 유치원에서 언니나 여동생이 있는 여자친구들이 내 앞에서까지 그렇게 싸워대고 울었기 때문이다. 왠지 남동생이라면 싸우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동생이 태어나고 내가 기억하는 7살은 기쁨 뿐이었다. 그러나, 동생이 태어난 당일의 서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지금도 기억나는건, 내가 엄마와 한 침대에서 꼭 붙어서 자는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는데, 엄마가 아기를 낳아서 집에 갈 수 없어서, 나와 함께 안방 침대에서 자지 못한다는게 아닌가... 이런 청천벽력같은 소식에 너무 화가 나서 갓 태어난 동생을 보지도 않고 집에 가버리려고 했는데, 그래도 아빠가 동생과 첫 대면은 해야하지 않겠냐고 해서 억지로 봤다. 그 순간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장면이다.
동생이 간호사 선생님에게 안겨있었고, 당연하지만 너무나 작았다. 7살 인생에서 방금 태어난 신생아를 본 적이 없으니, 신생아가 그렇게 작다는걸 그 때 처음 알았다. 눈도 못 뜨는 채로 하품을 하는데 너무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나오려고 했으나, 엄마와 한 침대에 누워서 잠을 잘 수 없다는 현실에 계속 화가 나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계속 화난 얼굴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내 분노는 이미 동생이 하품하는 모습을 본 순간부터 끝이 나 있었다.
동생이 생겼다고 한 순간부터 나는 나 혼자서 동생 이름 짓기에 열심이었다. 그 때는 당연히 동생 이름을 짓는데에 나의 의견이 가장 크게 반영될 줄 알았으니까, 동생 이름을 뭐로 할지 혼자서 열심히 생각했다. 사실은 동생 이름 짓기에 내 의견 따위는 필요없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너무 슬프고 서운했지만, 나는 적어도 동생이 나와 돌림자인 이름을 갖게 될거라는 건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우리 친가는 남자들만 돌림자는 쓰는 집안이었고 내가 그걸 알리가 없었다. 동생은 나와 성씨 빼고는 단 한글자도 겹치지 않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분명 '나'의 동생이고 왠지 내 소유인 것 같은 사람인데, 이름마저 나와 이렇게 다르다니... 7세의 마음에 큰 상처가 났던 순간임에 틀림 없다.
캠코더 영상이 아닌 내 머릿 속에 있는 내 7살의 기억 중 또 다른 하나는, 엄마가 업데이트 된 등본을 보여줬을 때였다. 7세 평생을 3인 가족으로 살았는데, 이제부터 평생동안 4인 가족이라는 얘기를 하여 보여주셨다. 맨 아래에 추가된 세글자를 보면서 순간적으로 가슴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4인 가족은 동생이 엄마 뱃 속에 있을 때부터 정해진 사실이었는데, 그 등본이 왜 이렇게 7세인 나에게 그렇게 크게 다가왔는지... 내 인생에 무언가 큰 변화가 생겼구나 하는 기분에 가슴이 내려앉았던 것으로 추정 중이다.
동생이 태어난 후는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달랐다. 아무리 7세라고 해도 동생이 태어났을 때는 만 5세였는데, 세상 밖으로 태어난 후 5년 밖에 성장하지 못한 뇌로 깊게 생각할 수 있을 리 없다. 만 5세의 내가 봐오고 상상한 동생이라는 존재는, 외동인 나의 외로움을 해결해주는 존재이자, 유치원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도 나를 놀아줄 또래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꼬박 여섯 해나 차이나는 존재가 나와 같은 또래일 수 없다는 것을 신생아인 동생이 집으로 돌아오고 깨달았다... 신생아 동생이 아기 침대에 누워서 사자만큼 잠만 자거나, 아직 초점 없는 눈으로 팔다리만 버둥거리는 것을 보고있자니 얘가 도대체 언제 다 커서 유치원에 있는 내 친구들처럼 나를 놀아줄 수 있을지 막막한 심정이었던게 그렇게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여기까지가 순전히 내 기억이고, 캠코더에 비친 내 모습은 정말 웃겼다. 엄마는 늘 내가 키우기 쉬운 말 잘 듣고 순둥순둥하고 큰 소리도 안 내는 아이였다고 말씀하셨는데, 영상을 보니 나조차도 보기 싫을 만큼 시끄럽고 정신 사나운 어린이였다. 그리고, 내가 동생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동생에게 엄마를 뺏긴 질투의 마음이 들거나, 엄마가 동생만 사랑한다는 첫째만의 서러움이 전혀 없던 걸로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꾸 엄마한테 짜증을 내고, '엄마는 아기만 귀여워하고 이뻐해'라는 뉘앙스의 말을 계속 하는게 아닌가... 솔직히 7살 정도면 많이 큰거라고 생각했는데 캠코더 속의 나는 영락없는 아가였다... 분명 동생이 진짜 미쳐버릴 만큼 귀여웠고, 유치원에서도 동생의 예술적 감각을 발달시킬 멋진 데칼코마니 나비를 그려가는 등의 기억 밖에 없는데, 엄마한테 투정부리는 모습이라니... 역시 첫째의 질투는 나이차이와 관계 없이 어쩔 수 없나 싶었다.
얼마전에 어떤 인스타툰을 봤는데, 아기 동생이 생긴 7세 첫째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걸 보고 단번에 7살 시절이 생각 났다. 캠코더가 없었다면, 내 자신과 엄마의 기억만을 믿고, 나는 아기 동생에게 조금도 질투하지 않고 너무나 누나의 역할을 잘 해낸 훌륭한 첫째이기만 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인스타툰에서의 7살 아이는 동생을 너무나 이뻐하고 배려심 넘치는 멋진 형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동생이 태어남으로 인해서 겪는 변화에 적응하는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고 했다. 아는 고통이 더 와닿는다고, 그 아이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래도 요즘 슈돌에 나오는 인기 많은 은우 보다는 몇 해 오래 살아서 지능이 조금 더 생긴 후에 동생이 생긴거니까, 더 어릴 때 동생이 생긴 것 보다는 지금 생긴게 더 수월하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런 대화를 나누기에는 너무나 아기이겠지만, 그냥 내 마음이 그랬다.
지금의 나는 동생 찬양자이고, 내 주위에 동생을 가진 모든 언니, 오빠, 누나들은 전부 나처럼 동생 숭배자이다. (이상하게 형아들은 동생의 나이, 생사조차 모름 ㅋㅋㅋ) 동생이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소중해지고 본인의 인생에서 정말 큰 가치를 갖게 되는 존재이니까, 영문도 모른 채로, 아니면 나처럼 지능이 조금 생긴 후에 동생이 생겨서 첫째의 설움을 갖게 된 모든 아기들을 응원한다. 지금의 질투와 혼란의 시기를 잘 거쳐서, 현재의 나처럼 동생과 둘도 없는 친구가 됐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전하고 싶어서 이렇게 길게 글을 썼다. 물론 이 얘기를 전해주고 싶은 아기들은 내가 하는 말이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를 정도로 어리겠지만, 그냥 내 마음이 그렇다. ㅎㅎ 이 세상 모든 첫째들 화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