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학년 때 다리가 마비됐습니다
스카우트 하면 뭐다? 뱃지 자랑이다!
미션을 성공할 때마다 하나씩 늘어나는 뱃지를 보면 어깨가 으쓱해지곤 했죠. 뱃지 하나하나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어요. 지도 하나 들고 비맞으며 미션 수행했던 기억, 무거운 고무보트를 들고 함께 노를 저엇던 기억 등 뱃지가 하나둘 가슴에 채워질수록 뭔가 해냈다는 뿌듯함이 함께 쌓여갔던 시절입니다.
그렇게 중학교 3학년 가을,
저는 고등학교 입학 전 마지막 스카우트 캠프를 떠났습니다.
5박 6일 동안 텐트에서 먹고, 자고, 산 타고, 보트 타고... 말 그대로 자연과 하나 되는 시간이었죠. 도시에서 살던 저는 자연과 하나되는 이 캠프 시간을 좋아했어요. 낮엔 땀흘리며 미션을 수행하고, 밤엔 침낭 속에서 친구들과 속닥이다 잠드는게 전부지만 세상에서 젤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어느새 벌써 마지막 날이 되었고, 저녁 전 자유 시간에 "맘껏 놀고 오라"는 대장님의 말씀에 우린 신이 나서 계곡으로 달려갔어요. 드디어 자유다! 시원한 계곡물에서 첨벙이고 싶었어요. 계곡물은 깊었지만 딱 적당한 정도였고, 우리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을 마주치고 손을 잡고 "하나, 둘, 셋!" 외치며 뛰어내렸습니다.
첨벙! 성공적인 입수!
'이 느낌은 뭐지?' 발바닥이 찌릿한 느낌이었어요.
물 밖으로 나와 보니 발바닥 한쪽이 패어 피가 고여있었어요. 알고 보니 제가 뛰어내린 자리에는 뾰족한 바위가 물속에 숨어 있었던 거죠. 급하게 응급처치를 받고 밴드를 붙인 뒤, 저는 대수롭지 않게 “에이 뭐, 흉터 하나 남겠지!” 하고 넘겼습니다. 캠프 마지막 날의 작은 해프닝 정도로만 생각했어요.
(설마 이게 시작일 줄은 꿈에도 몰랐죠.)
몇 달 뒤… 그 발바닥이 사마귀 농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상처 난 발바닥으로 맨발을 딛고 다녔던게 화근이었어요. 사마귀가 퍼지는지도 모르고 계속 걸어 다닌 탓에 어느새 발바닥이 사마귀로 뒤덮였고, 이제는 무서운 수준이 됐어요. 부모님께 말하면 혼날까봐 다쳤던 사실도 사마귀의 존재에 대해 말을 못하고 있었었죠.
결국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상태가 되어서야 엄마에게 털어놓고 아빠와 함께 병원으로 갔어요. 그리고... 아악! 사마귀들을 불로 지지는 처참한(?) 치료가 시작됐죠.
사마귀 정도야 이번 시련의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끝이 아니었던거죠.
다 나았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오른쪽 다리가 말을 안 듣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몇 일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나아지지 않았어요. 앉아있는 상태로 무릎이 제 힘으로 들리지 않았거든요. 무릎 반사가 안됐던 거예요. 그 원인은 바로, 사마귀 치료 과정에서 엉덩이에 맞은 항생제 주사였습니다.
큰 병원에 가서 진단을 해봐도 정확한 원인을 찾을 수 없었어요. 사람마다 신경 위치가 조금씩 다르기도 하고, 피부과에서 항생제 주사를 맞고 몇 달이 이미 지난 상황에서 손상에 대한 증명이 어려웠어요.
지금 돌아보면 명백한 의료사고였죠. 의료 사고 중에서도 드문 편에 속한다고 하는데.. 법적으로 보아도 의료진의 과실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비슷한 케이스가 많더라구요. 하지만 그당시에는 운이 없었던 것으로 생각하는 거 말고는 이걸 누군가에게 따질 상황이 아니였어요.
결국, 좌골 신경이 마비가 되었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엉덩이부터 다리 전체를 지배하는 신체에서 가장 굵고 긴 신경이 주삿바늘에 건드려진 거예요. 좌골 신경이 손상되면 다리 저림, 감각 마비, 근력 저하가 올 수 있는데 저는 그중 무릎 반사 소실이라는 증상으로 먼저 나타난 거였죠.
“얼굴 안다친게 어디야. 내 친구가 그자리에 있지 않았어서 정말 다행이다. 에이~ 다리 안 움직이면 움직이게 하면 되지!" 하며 매주 물리치료를 받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틈나면 침대에 누워 의사선생님께 배운 재활운동을 했어요. 머리 속으로 다시 다리가 움직일 것이라 상상하고 기도하면서요.
무릎 반사만 안되는줄 알았는데 다리 저림 증상은 더 심각해졌습니다. 5분만 앉아 있어도 좌골 신경통으로 끔찍히 아프고 저려 와 책상에 앉는 일이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1학년 내내 수업을 서서 들어야 했어요. 교실 뒤편에 혼자 서 있는게 처음엔 민망하기도 했지만, 친구들도 선생님도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았어요. 다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줬죠. 그 배려가 고마웠습니다.
열심히 물리치료를 받고, 재활 운동을 하고, 매일 밤 기도하면서..
그리고 1년 가까이 된 어느 날 힘을 주어 다리를 들어 올리는데.. 스윽 제 힘으로 올라갔어요. 어제까지만 해도 꿈쩍도 안 하던 무릎이 올라간거에요.
그 순간의 감사함이란… 진짜 스카우트 뱃지 100개 받은 것만큼 기뻤어요. 제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다행히 무릎반사가 될 정도로 신경은 돌아왔지만, 그 사건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도 오래 앉아 있으면 저림 증상을 느끼고, 바닥에 앉아 다리를 완전히 펴거나 몸을 앞으로 깊게 숙이지 못합니다.
사람들과 단체로 운동을 할 때면 유독 저만 안되는 동작들이 있어요. 너무 무리하면 다리가 덜덜덜 떨리기도 해요. 가끔은 그게 속상하기도 했지만, 대신 운동을 생활화하게 되었죠. 그래도 두 다리 멀쩡히 잘 걷고 사는데 큰 지장이 없어요.
이 사건 덕분에 저는 알게 됐어요.
인생에 큰 시련이 와도 결국엔 방법이 있다는 것.
그리고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
그 믿음이 지금의 저를 만들어 준 가장 단단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혹시 지금 힘든 일이 있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