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으로 연구하고 돈내서 출간하는 기막힌 현실, 이제 바뀌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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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논문을 출간하는 연구자들이 마주한 현실은 참으로 모순적이다. 작곡가는 자신의 음악이 연주될 때마다 저작권료를 받고, 작가는 책이 팔릴 때마다 인세를 받는다. 하지만 연구자는? 자신이 밤낮으로 매달려 완성한 논문을 세상에 공개하기 위해 오히려 돈을 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것이 과연 공정한 저작권 생태계일까?
연구자가 연구결과를 논문으로 출판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출판사에 투고를 한다. 논문을 투고할 때 마주하는 첫 번째 선택지는 명확하다. 구독(subscription) 저널에 낼 것인가, 오픈액세스(open access) 저널에 낼 것인가.
구독 저널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연구자는 게재료 없이 동료심사(peer review)만 통과하면 논문을 출간할 수 있다. 대신 출판된 논문의 저작권은 출판사가 가져가며, 독자들은 구독료를 내야만 논문을 읽을 수 있다.1)
반면 오픈액세스 저널은 정반대의 구조다. 연구자가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의 게재료(APC, Article Processing Charge)를 출판사에 지불해야 하지만, 출간된 논문은 누구나 무료로 읽을 수 있다. 저작권의 소유는 출판사가 갖는 경우도 있고 저자가 갖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동료심사에 참여하는 연구자들이 대부분 무료 봉사를 한다는 것이다. 좋은 저널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는 것이 명예이자 학계에 대한 기여라고 여기며, 자신의 전문성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2)
정리하면 이렇다. 연구자는 논문을 무료로 제공하고, 심사위원도 무료로 검토해주는데, 정작 출판사만 양쪽에서 돈을 받는 구조다. 그렇다면 출판사는 이 돈을 도대체 어디에 쓰는 걸까?
그렇다면 연구자들은 왜 굳이 돈을 내고 오픈액세스 저널에 논문을 낼까? 답은 Impact Factor라는 숫자에 있다.3)
의학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NEJM, JAMA, Lancet 같은 저널들의 Impact Factor는 100을 넘는다. 일반적으로 Impact Factor 10점을 넘으면 'High impact journal'로 분류되며, 이런 저널에 논문이 실리면 연구자에게는 큰 영광이다.4)
문제는 이런 최고 수준의 구독 저널에 논문이 거절당했을 때 발생한다. 대학에서의 임용, 승진, 연구비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높은 Impact Factor 저널 출간이 거의 필수가 되었기 때문에, 구독 저널에서 거절당하면 어쩔 수 없이 비싼 게재료를 내고라도 오픈액세스 저널에 투고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대학이나 대학병원에서 연구하는 의사들을 기준으로 보면, 1년에 논문 1-2편 정도가 평균이고, 수편을 쓰면 '논문을 많이 쓰는' 연구자로 분류된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 시간을 할애해 혼신의 힘을 다해 완성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연구자가 오히려 돈을 내야 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저작권의 개념으로 봤을 때 명백히 부당하다.
연구자도 작가나 작곡가처럼 영혼을 갈아 넣어서 저작물을 만든다. 수개월, 때로는 수년간 매달린 연구 결과가 하나의 논문으로 탄생하는 과정은 그 어떤 창작 활동에도 뒤지지 않는 고통과 희열이 공존하는 여정이다. 그런데 이렇게 만들어진 지식을 세상에 공유하기 위해서는 연구자가 거액의 게재료를 지불해야 한다.
더욱 씁쓸한 것은 이 게재료가 대부분 연구비에서 나간다는 점이다. 연구하라고 지원받은 돈으로 오픈액세스 저널 게재료를 수백만 원씩 지출하는 것이다. 특히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되는 연구비가 해외 거대 출판사의 수익으로 흘러들어가는 현실은 더욱 문제가 크다.
과거에는 논문을 물리적으로 인쇄하고 배포하는 데 상당한 비용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논문을 인터넷으로만 읽는다. 인쇄비용이 거의 사라진 디지털 시대에도 출판사들은 지속적으로 구독료와 게재료를 인상하고 있다.5)
대한민국의 대학 도서관들은 매년 수천억 원의 전자저널 구독료를 지출하고 있다. 출판사들의 지속적인 가격 인상에도 불구하고 구독을 중단할 수 없는 이유는 명확하다. 소속 연구자들에게 양질의 학술 정보를 제공하고 학문적 영감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출판사가 과도한 이익 추구에만 매달린다면, 언젠가는 학계로부터 외면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각도의 접근이 필요하다.
출판사 차원에서는 APC와 구독료의 산정 근거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오픈액세스 논문이 늘어날수록 구독료를 비례해서 인하하는 공정한 비용 분담 모델을 도입해야 한다. 더 나아가 연구자와 독자 모두에게 비용을 요구하지 않는 다이아몬드 오픈액세스(Diamond OA) 저널을 확대하고, 외부 자금으로 운영되는 지속가능한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연구자들은 과도한 게재료를 요구하는 오픈액세스 저널에 대한 집단적 거부 의사를 표명해야 한다. 개별 연구자의 힘은 미약하지만, 학계 전체가 힘을 합친다면 출판사들도 정책을 바꿀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책 차원에서는 국제적 협력을 통해 대형 출판사와의 협상력을 높이고, 유럽의 플랜 S처럼 연구비 지원 논문은 반드시 오픈액세스로 공개하도록 하는 정책을 확대해야 한다.
가장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독자가 논문을 읽을 때마다 연구자에게 소액의 저작권료가 돌아가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현재의 스트리밍 서비스처럼, 논문이 조회될 때마다 연구자가 일정 금액을 받을 수 있다면, 연구자들에게는 좋은 연구를 수행할 동기가 되고 학술 활동이 더욱 활성화될 것이다.
음악이나 문학 작품처럼 학술 논문도 창작자에게 정당한 보상이 돌아가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지식은 인류 공동의 자산이지만, 그 지식을 창조한 연구자들의 노고 역시 정당하게 평가받고 보상받아야 한다.
저작권의 본질은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창작 활동을 장려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학술 출판 시스템은 오히려 창작자인 연구자들에게 부담을 지우고 있다. 이는 분명히 잘못된 방향이다.
진정한 의미의 저작권 존중 문화는 연구자들이 자신의 지적 창작물로 정당한 보상을 받고, 동시에 그 지식이 인류 전체에게 자유롭게 공유되는 환경에서 실현될 수 있다.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을 맞아, 우리는 더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지식 생태계를 만들어가야 할 책임이 있다.
연구자의 눈물이 마르는 그날까지, 우리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