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소년이 온다, 한강

518 동호 엄마의 독백

by 좋은날

책을 펼치지 못하고, 안개꽃으로 가득 메운 책 표지를 한참 바라본다. 그러다 작고 하얀 안개꽃 사이의 검은 어둠 속 아래로 내려가본다.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일어났다. 아니 어쩌면 아직도 일어나고 있을지도.


‘동호’, 독서일기 Club에서 두 번이나 만났던 너의 이름, 책 속에서 동호를 찾고, 동호 엄마의 한서린 독백에서 나도 가만가만 너의 이름을 불러본다. “동호야~. 동호야~” 하고.


“엄마들 여기서 왜 이러고 있소? 엄마들이 무슨 죄를 지었소? 그 순간 내 머릿속이 멍해졌어야. 하얗게, 온 세상이 하얗게 보였어야. 찢어진 소복 치마를 걷고 탁자 위로 올라갔다이. 더듬더듬 조그만 소리로 중얼거렸어야. 맞어,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단가.” 189p


그래, 동호야. 니가 무슨 죄를 지었단가. 해 지기 전에 다 같이 저녁밥 묵겠다고 약속해놓고, 그 약속 못 지킨 거. 그거 말고 니가 뭘 잘못했단가. 얼매나 무서벘을까. 엄마 품에 을매나 숨고 싶었을까. 엄마가 같이 못 있어줘서 미안타. 그날 니 손목을 잡고 우쨌던동 끌고 왔어야 했는디. 니 궁디를 팡팡 때려서라도 같이 집으로 왔어야 했는디. 엄마가 니 혼자 거그 두고 와서 참말로 참말로 미안타. 니도 무서벘을낀데, 꼭 한번 안아주지도 몬해가 그게 참말로 미안타. 니가 그렇게 엄마를 떠나고 나서야 목소리를 내서 미안타. 잘못된 거 알면서도 어른인 엄마는 말도 몬하고 숨어만 있어가 참말로 미안타. 니는 본디 밝은 거를 좋아하는 아인데. 엄마가 돼가꼬 밝은 데로 가고 싶은 니 맴도 몰라주고. 꽃 핀 쪽으로 가고 싶은 니를 자꾸만 자꾸만 그늘로 들어와서 숨으라캐가 참말로 미안타. 동호야. 이 담에 태어나거든 딱 한번만 더 엄마 아들하자. 딱 한번만 알았제? 동호야. 동호야.


“나무 그늘이 햇빛을 가리는 것을 너는 싫어했제. 조그만 것이 힘도 시고 고집도 시어서, 힘껏 내 손목을 밝은 쪽으로 끌었제. 숱이 적고 가늘디가는 머리카락 속까장 땀이 나서 반짝반짝함스로. 아픈 것맨이로 쌕쌕 숨을 몰아쉼스로. 엄마, 저쪽으로 가아, 기왕이면 햇빛 있는 데로, 못 이기는 척 나는 한없이 네 손에 끌려 걸어갔제.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192p


소설을 읽기 전에 책 표지가 참 슬퍼보였다. 책을 덮고 다시 책 표지를 한참 바라본다. 수 많은 작은 꽃들에서 얼굴도 모르는 1980년 5월 그때 그 아이들의 얼굴을 찾아본다. 표지를 계속 보고 있자니 추운 겨울 눈으로 덮인 묘지를 안개꽃으로 살포시 덮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2019.05.18. 어른이 되어가는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