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마지막 금요일 저녁, 동네 책방에서 김혼비 작가의 북토크가 있었다. 금요일이면 어린이집에 다니는 조카를 픽업하고 저녁을 챙겨 먹이는데, 이날은 후다닥 서둘러 조카와 딸 아이의 밥을 챙기고 곧 퇴근해 집에 도착한 동생에게 바톤을 넘겼다. 남편과 함께 총총걸음으로 걷고 뛰며 책방 앞에서 마스크 안의 숨을 겨우 고르고서야 책방 문을 열 수 있었다. 다행히 시작하는 타이밍에 가까스로 세이프, 작가의 소개가 이어지는 순간에 자연스럽게 박수를 치면서 자리잡았다.
김혼비 작가의 이름은 들어보았지만, 그녀의 책을 한 권도 읽지 않고 북토크에 참석하는 건 조금 아쉬웠다.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는 축구에 관심이 없어서 패스, <아무튼, 술>은 술을 좋아하지 않아서 패스, <전국축제자랑>은 지방 축제 이야기라는 소재에 호기심이 동하지 않아서 패스, 그런 김혼비 작가의 책 표지는 익숙했지만, 한번도 작가에 대해서, 작가의 책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보지 않았다.
김혼비 작가의 북토크는 놀라울 정도로 유쾌했다. 작은 술잔에 똘똘똘똘, 꼴꼴꼴꼴 따르는 술이 넘쳐 흐르듯이, 책방이라는 작은 공간에 작가와 참가자들의 주고받는 호흡과 웃음이 차고 넘쳐 오래간만에 사람들과 함께 공감하는 생동감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기분 좋은 설렘으로 포장한 김혼비 작가의 책 3권은 우리 집으로 왔다. 'B급 느낌이 묻어나는 A급 문장을 쓰고 싶다.'는 김혼비 작가의 책은 친한 친구와 수다를 나누는 것 같은 편안함과 유쾌함이 묻어났다. 생각의 표현이 자유롭고, 거리낌없어 좋았다. 화려한 문장은 없었지만, 그래서 좋았다.
"술은 나를 좀 더 단순하고 정직하게 만든다. 딴청 피우지 않게, 별것 아닌 척하지 않게, 말이 안 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채로 받아들이고 들이밀수 있게."
술을 말도 안 되게 좋아해서 책 <아무튼, 술>을 썼다는 작가, 아무튼, 술에 진심인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도 아무튼 그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하던 요즘이 떠올랐다. 책을 읽고 독서일기를 쓰면서 책의 장르와 그 순간의 감정들에 따라 쓰여지는 나의 글쓰기를 만난다. 더불어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알아가는 듯 하다. 내가 아주 잘 즐기는 것이나, 내가 아주 잘 하는 것이나, 내가 아주 잘 아는 것에 대해 한 가지 주제로 다양한 글감을 찾아내고, 그것을 표현해낼 수 있는 글쓰기를 시도해보고 싶다. 아무튼, 그것은 어떤 것이 될까. 나도 궁금해진다.
당연히 전업작가인줄 알았던 김혼비 작가는 평범힌 직장인이었다. 나처럼 직장생활을 한다는 그녀가 글을 쓰고, 책을 내는 건 좀 멋있었다. 좋아하는 일에 푹 빠져들어 행동할 수 있는 열정이 부러웠다. 정해진 루틴 안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시간을 만들어 내고, 또 꼬박 그것을 해냈을 그녀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본다. <아무튼, 술>을 읽고, B급 느낌으로 A급 문장을 써내는 김혼비 작가의 <전국축제자랑>을 펼쳐본다. 그녀가 들려주는 동네 축제 이야기에서 한바탕 웃을 준비를 마쳤다.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리는 기분좋은 느낌이 내 안에 축제처럼 일렁인다.
2021.12.18. 어른이 되어가는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