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의 미로(2006) / 길예르모 델 토로 (2)

요정의 나라를 믿나요?

by 잌쿤
Pan's Labyrinth(2006)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자신의 신도(?)들을 거느리게 된 영화 판의 미로(2006)를 통해 삶의 고난과 긍정 및 부정을 심도 있게 표현하였다. 그냥 동화같이 아름다운 영화인 줄 알고 보러 갔던 많은 사람들이 그로테스크한 장면들에 한 번 놀라고 완성도 높은 구성에 두 번 놀란다는 작품이다.


어린 소녀 오필리아는 만삭의 병약한 엄마를 따라서 군인인 새아버지의 부대로 들어가 생활하게 되는데, 새아버지는 스페인 정부가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파견한 인물로 매우 강압적이고 잔인한 인물이다. 새아버지에게 가족이란 자신의 후계를 갖게 해주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었고, 아내나 의붓딸에게 전혀 애정을 보이지 않는 아버지에 정을 붙일 수 없었던 오필리아는 외로움 속에서 숲의 정령인 '판'을 만난다. 판은 오필리아가 사실은 요정들의 고향인 지하왕국의 공주이며 기억을 잃고 인간 세계에 떨어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세 가지 시험을 통과해야만 지하왕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며 용기와 인내, 희생에 대한 시험을 부여한다.


이 잔혹 동화에서 주인공 오필리아가 겪는 일은 스트레스 그 자체다. 엄마의 건강이 점점 악화되는 상황에서 주위에는 아무도 의지할 사람이 없었고, 판이 가져다주는 시험은 온통 위험하고도 끔찍한 일 투성이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공통적으로 동의하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제 1의 키워드는 '잔혹'이다. 아름다운 요정의 나라 공주라는 타이틀에 전혀 맞지 않게 오필리아는 영화 내내 오로지 혼자서 모든 끔찍한 일을 감당하며 보는 이를 안타깝게 한다.


결말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지만, 분명한 것은 오필리아가 세 가지의 시험을 무사히 완수하였다는 것이다. 어쩌면 외롭고 고단하기만 한 군부대 속의 생활에서 판의 시험들은 오필리아가 갈 수밖에 없었던 유일한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쳐다보기도 힘들 정도로 역겹고도 무시무시한 괴물들에 마주할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지하왕국의 공주라는 희망과 괴물들보다도 끔찍한 현실세계에 대한 좌절이라는 두 가지 목적의식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열심히 위기를 극복하는 오필리아를 바라보는 관객들의 심정은 복잡하다. 오필리아가 결국 헛된 희망을 가지고 거대한 진실에 굴복하는 결말이 나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영화 내내 관객들을 괴롭히는 또 다른 키워드는 '의심'이다. 정말 오필리아는 요정 왕국의 공주였을까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으로 영화를 지켜본 관객들은 결국 이 결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오필리아의 정체에 대한 진실이 아니라 관객들의 의심 그 자체다. 나 역시 영화를 보는 내내 오필리아는 망상에 빠진 불쌍한 어린아이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떨치지 못했다. 하지만 영화가 말하려는 핵심은 오필리아가 그랬던 것처럼, 영화를 보는 당신도 판타지에 대한 순수한 믿음을 계속 간직할 수 있느냐는 물음이다. 영화는 내내 잔혹함을 연출하며 관객들을 순수한 믿음으로부터 분리시킨다. 날아다니는 요정들도 딱히 귀엽지 않고, 심지어는 지하 왕국에서 왔다는 판도 징그럽게 생겼다. 오필리아를 괴롭히는 괴물들의 생김새는 말할 것도 없다. 현실세계라고 상황이 나은 것이 아니다. 국민 위에 군림하며 공포를 도구로 삼는 군인들은 잔인하기 이를 데 없다. 이런 장면들이 하나씩 거쳐갈 때마다 머릿속의 판타지는 점차 깨지게 된다. 잔혹한 현실, 그것이 바로 희망을 짓밟고 의심하게 만드는 가장 큰 주범이다.


영화에는 가끔이지만 분명한 증거들이 나온다. 만드라고라의 뿌리는 엄마의 건강을 호전시켰으며, 오필리아는 마법을 사용하여 벽을 통과해 도망칠 수 있었다. 단지 소녀의 망상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칠 수 없는 장면들이다. 하지만 '증거가 있기 때문에 오필리아는 지하 왕국의 공주가 맞다'는 진실 공방이 아니라, 분명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의심을 놓지 않는 관객의 모습이 가장 큰 의미가 있다.


또 하나 관객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과연 오필리아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었느냐는 것이다. 지독한 전쟁터에서 어린 소녀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판의 시험을 묵묵히 수행하는 것뿐이었다. 마음속에 불평이 없을 수 없고 의심이 없을 수 없겠지만,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스트레스를 잘 다스리자. 어차피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