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의 미로(2006) / 길예르모 델 토로 (1)

요정의 나라를 믿나요?

by 잌쿤

강의시간에 교수님으로부터 들은 말 중 인상 깊은 것이 있다. 사람의 성공 조건을 한 가지로 압축해서 말할 수는 없지만, 굳이 가장 중요한 요건을 꼽으라면 바로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부모들이 자녀에게 반드시 가르쳐야 하는 것 한 가지는 어떻게 하면 스트레스를 잘 견디고 넘길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라고 했다. 참을성 없는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들이 참을성이 없다. 유전적인 기질일 수도 있겠으나, 어려서부터 보고 자란 것이 작은 스트레스에도 쉽게 포기하고 화를 내는 모습뿐이니 그런 부분을 닮는 것이 당연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과연 맞는 말이다. 사람이 누구를 만나고 어떠한 일을 하며 살아가든 간에 일터에서, 대인관계에서, 또는 예상치 못한 어딘가에서 반드시 크고 작은 스트레스는 오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제갈공명처럼 모든 일을 완벽하게 처리할 수는 없을 것이기에 스트레스에서 오는 위기는 반드시 맞이하게 된다.(그리고 제갈공명도 대인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엄청 받았을 것이다) 결국 완벽한 일처리 후에 스트레스 관리를 못 해 무너지는 사람과, 조금 능력은 떨어지더라도 스트레스에 현명하게 처신하며 묵묵히 자기 일을 수행하는 사람 중 누가 더 성공 가능성이 높으냐 한다면 답은 자명하지 않은가.


그런데 스트레스의 크기가 얼만큼인지와는 별도로 경험하는 당사자가 체감하는 정도는 사람에 따라 편차가 크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도 성격의 일부인 것 같다. 유독 남들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이 있다. 나도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 잠이 오지 않거나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자꾸 그 일에 대해 좋지 않은 생각이 들고 비관적인 예감만 떠오른다. 아니면 일부러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려서 잊어버리려 애쓴다. 사실 경험상 둘 다 좋지 않은 방법인 것 같다. 그 상황에 대해 나쁜 생각만 하거나 고의로 피하는 것은 냉정한 관찰과 올바른 판단의 길을 막아버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너무 감정이 올라와 있으면 잠시 눈을 돌렸다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돌아오는 것이 좋지만, 단지 스트레스가 싫어서 계획 없이 잊어버리려고만 하는 것은 현명한 생각이 아니다.


예전 직장 동료 중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 타입이 있었다. 업무 자체가 야근이 많고 강도가 높은 업종이라 심신이 지치는 일은 늘 있던 일이다. 그러니 아무리 긍정적인 사람이라도 일이 마냥 즐거울 리만은 없겠지만, 사내에서 평소 마주치는 사람들의 분위기와 표정 등을 보면 그 사람이 받는 스트레스의 크기가 짐작이 될 때가 많다. 그 친구와 나는 같은 팀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었기에 위치가 가까웠는데, 슬슬 스트레스가 쌓일만한 시간이 되면 짜증 섞인 한숨소리가 내 자리까지 들려오는 것이었다. 직장에서 동료들끼리 힘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야 일종의 활력과도 같은 것이지만, 그것이 한탄이나 비관으로 이어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그 친구에게 여러 번 조언 섞인 말들을 해준 적이 있다. 그때마다 이러니 저러니 살을 많이 붙여서 말을 했지만, 결론은 항상 동일했다.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 다소 불합리하고 부당한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스트레스가 짜증으로 이어져 비관으로 끝나는 것은, 상황을 더 좋게 만드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더욱 자명한 사실이다. 이런 식의 말을 할 때마다 마치 일에 불만을 갖지 말고 수긍하라는 것처럼 오인받을까 조심스러웠지만, 냉정하게 판단해보자면 우리가 상황을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요즘은 조금 기세가 꺾였지만, 한때 '시크릿'이나 '긍정의 힘'과 같은 자기계발서가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란을 뒤덮었던 때가 있었다. 요즘은 무조건적인 긍정을 강요하기보다 '힐링'이라는 이름으로 삶의 위안을 주는 매체가 대세다. 긍정을 외치는 일이 효과가 없을 정도로 삶에 대한 비관이 늘어난 까닭인가 보다. 청년층들은 토크콘서트나 유명인사의 책을 통해 힐링을 얻으려 한다. 그런데 삶의 위안을 찾고자 하는 노력은 나름 의미 있는 행동이지만, 인생은 원래 고단하고 힘든 것이며 대가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이것을 깨닫는 사람이 스트레스를 의연히 견딜 수 있다.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두렵고 싫기 때문에 스트레스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거기에 휘둘리는 것이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능력은 어떠한 스펙보다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