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2002) / 장예모 (2)

메기가 없다고 정어리가 평화로울까

by 잌쿤
Hero(2002)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총출동한 대작 영웅(2002)은 극도의 화려함에 정신을 놓고 보아도 놓치지 않을 만큼 메시지가 직설적이다. 색채 이미지를 사용한 연출의 대가 장예모 감독이 작정하고 무협을 하나의 예술 수준으로 승화시킨 작품이기도 하다. 어느 것 하나로 명장면을 단정 지을 수 없을 만큼 명품인 액션 신들 사이로,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해석의 여지 속에서도 평화를 위한 필요악으로서의 제국이라는 다소 모순된 가치관이 훌륭하게 표현되어 있다. 엄청난 스케일의 신들과 그에 어색하지 않게 녹아들어 간 장예모 감독 특유의 과장된 표현력은 바로 이 작품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춘추전국시대의 난세 속에서 진나라는 주변국들을 차례로 제압하며 천하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당연히 진나라의 왕은 각국으로부터 끊임없이 암살의 위협을 받았고, 특히 진왕은 당대 최강의 무사인 파검과 비설, 장천을 가장 두려워하였다. 이에 진왕은 자신의 백보 내에 누구도 접근할 수 없도록 명하고 세 사람을 전국에 지명 수배한다. 어느 날 이름 없는 장수가 세 개의 상자를 들고 나타나 진왕을 알현한다. 그는 자신이 진왕의 숙적인 세 무사를 해치웠음을 입증하고 진왕의 신뢰를 얻어 십보 내의 거리까지 접근하는 데 성공한다.


길었던 진실공방 끝에 무명의 장수가 결국 택한 것은 평화와 안정이었다. 죽음을 코앞에 둔 긴박한 상황에서도 의연한 대장부의 모습을 보이는 두 사람의 대화가 압권이다. 진왕은 파검과 무명을 두고, 최측근들도 알아주지 않았던 진심을, 오히려 자신을 죽이려 했던 자객이 알아주었다는 점에 탄복해 마지않는다. 영화의 핵심은 폭군으로 인식되는 진왕의 죽음과 '평화'라는 두 가지의 키워드가 정반대의 가치 진영을 형성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 작품을 심도 깊게 바라보기 위해서는, '진왕의 진심'에 대해 역사 미화니 하는 논란은 잠시 접어두고, 춘추전국시대의 진왕이라는 인물을 사용하여 표현된 '공포 통치'의 효과에 대한 메시지에 집중하여 볼 필요가 있다.


무명은 아마도 파검이 '천하' 두 글자를 땅에 새긴 것을 보고 곧바로 그의 뜻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명이 위험을 무릅쓰고 진왕의 면전으로 나아간 것은 그의 목적이 암살보다는 진왕의 생각, 파검의 안목이 과연 정확한 것이었는지를 확인하는 데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비로소 진왕의 십보 앞까지 나아갔을 때, 무명 역시 자신의 거짓을 꿰뚫어 본 진왕의 식견과, 이제야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있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며 자객에게서 등을 돌리는 그의 대범함에 탄복하였을 것이다. 무명은 그가 하룻밤을 꼬박 연구해도 알아내지 못했던 '검술의 극한 경지'를 잠깐 보고 알아차린데서 그의 '진심'을 확신한다. 파검이 남긴 검술의 극한이란 바로 검을 쓰지 않고 검을 무너뜨리는 아량을 말하는 것이었으며, 파검의 생각과 같은 평화에 대한 갈구가 진왕의 마음속에도 있었기 때문에 진왕은 파검의 진의를 대번에 알아차린 것이다.


무명 역시 복수심에 불타 뒤를 가리지 않는 소인배가 아니라는 것을 그의 검술로서 암시했다. '십보일살'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그가 이 기술을 사용하여 쓰러뜨린 장천과 비설 모두 죽지 않고 가벼운 상처만 남겼다는 모순점이 평화에 대한 무명 장수의 바람을 상징한다. 파검 역시 그가 장천을 죽이지 않았다는 점을 보고 그에게 '천하' 두 글자만을 남기는 것으로 순순히 그를 진왕에게 보내주었을 것이다.


모든 행위에는 나중을 생각해야 한다. 무명이 암살을 단행했다면 진나라는 무너지고 또다시 군웅할거와 전국시대의 비극은 되풀이되었을 것이다. 역사 속의 시황제에 대한 평가는 제외하고, 그가 전란의 시대를 끝냄으로써 전쟁으로 인한 폐해도 종식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회에서도 눈앞의 이득이나 감정에 사로잡혀 일을 그르치는 일이 많다. 분명 필요한 존재이지만 '정의를 위해서' 더 많은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결정을 단행하는 경우도 많다. 애초에 모두가 탐욕을 부리지 않는다면 평화를 위한다는 폭군의 정당화 논리도 성립될 수 없다. 폭군이 문제인지, 폭군이 사라진 자리를 노리는 다수의 하이에나가 문제인지 한 번 생각해볼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