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2002) / 장예모 (1)

메기가 없다고 정어리가 평화로울까

by 잌쿤

운전을 하다 보면 과속방지턱을 미처 보지 못 할 때가 가끔 있다. 놀라서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으면 생각보다 턱이 높아서 위험했다는 생각에 안도한다. 그리고 살짝 궁금해진다. 속도를 줄이지 않고 턱으로 돌진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차가 턱을 딛고 크게 튀어올라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째서 과속을 방지하기 위한 시설은 이렇게 위험하게 만들어졌을까? 과속방지턱은 '너 과속하면 큰일 날 거야'라는 일종의 경고인 것 같다. 마치 '복도에서 뛰지 마시오'라고 말하기 위해 학교 복도를 지압판으로 깔아 두고 맨발로 다니게 하는 격이다. 하지 말라는 점잖은 설득 대신에 '할 테면 해봐라'는 식이다.


그러고 보면 인간의 행동을 유발하는 수단 중에는 부정적인 감정을 조성하게 만드는 것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다. 공포, 불안감, 질투심 등의 감정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기본적으로 손실을 회피하려는 본능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학생에게 공부를 시키기 위해서 취할 수 있는 수단이 세 가지 있다고 하자. 공부의 필요성을 열심히 설득하는 방법, 공부를 한 양에 비례해서 포상을 주는 방법, 공부를 한 양에 반비례해서 체벌을 하는 방법.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지막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물론 인륜적인 이유로 지금은 학교 체벌이 금지되었지만, 분명 행동을 유발하는 데에는 가장 효과적이고 저비용이기 때문에 과거에는 일상적인 학교 풍경이기도 했다. 체벌이라는 고통을 사용한 일종의 공포 통치다. 이러한 공포 통치가 가장 활발히 일어나는 곳은 바로 군대다. 동시에 군대는 원하지 않는 행동을 가장 효율적으로 끌어내는 곳이기도 하다. 공포 분위기가 만연한 것은 물론이고 규칙에 따르지 않는 자에 대한 처벌이 명확하게 눈에 보이는 곳이기 때문에 누구도 그 규칙을 거부할 용기를 선뜻 내지 못한다.


조직 생활에서도 '악역'의 필요성에 대해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관리자로서 직원들을 계속해서 성과를 내게 몰아붙이고, 때로는 비인간적 언행까지도 불사하는 소위 '공공의 적'들이다. 그렇지만 정어리 어항 속의 메기처럼 이 악역들은 모두가 싫어하지만 조직 생태계 내에서는 결국 구성원들이 오랜 기간 생존할 수 있도록 적절한 긴장감을 유발하는 존재인 것이다. 물론 적절한 수위를 벗어나면 문제가 되겠지만. 구성원들은 아마도 이 관리자를 필요 없는 존재로 인식하고 항의하게 될 것이다. 인권이니 윤리니 하는 가치를 내세우며 부당함을 설파하고, 이렇게 빡빡하게 굴지 않아도 우리는 진화한 인간이기 때문에 충분히 제 몫을 열심히 수행할 것이라는 등.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자기 아랫사람의 행동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강압적인 태도를 취할 충동을 느낀다. 결국 공포심의 조장이 가장 큰 행동 유발 장치라는 것은 인간이 본능적으로 터득하는 지식 중 하나이다.


그런데 메기가 공포를 유발하기 위해서는 몇몇 정어리의 희생이 필요하다. 아무리 눈앞에 무시무시한 메기가 돌아다녀도 내게 해를 입히지 않는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공포심은 급격히 줄어들게 될 것이다. 요즘 비둘기가 행인이 발로 걷어찰 수 있을 만큼 가까이 다가와도 도망치지 않는 것과 같다. 조직으로 따지자면, 누군가 조직에서 도태되고 낙오되는 상황이 발생해야 자기 눈앞의 공포가 진짜인 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무력에 의한 평화'가 그리 달콤한 말은 아니지만, 인류의 역사에서 평화로운 시대가 압도적인 무력에 의하여 유지되는 일이 대부분이었음은 엄연한 현실이다. 우리는 교육받은 인간이기 때문에 윤리적 사고를 가지고 살아간다고 말하고 싶지만, 교도소가 없고 법이 없다면 그래도 지금과 같은 낮은 범죄율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나는 선뜻 대답하기가 힘들다.


그렇다면 결국은 메기의 필요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메기는 정어리를 잡아먹는 나쁜 어종이므로 제거해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는데, 메기에게 '나쁘다'는 선악 구도를 적용하는 것은 모순이다. 메기는 나빠야만 자기 역할을 충실히 이행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메기는 나쁘기 때문에 존재의 의미가 있다. 이런 상황이 한탄스럽다면 나쁜 메기를 바꿀 것이 아니라 나쁜 메기가 아니면 행동하지 않는 정어리의 이기심을 고쳐야 한다.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