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이 공식 석상에서 지극히 종교적인 발언을 한다면 국민들의 상당한 반발에 부딪히겠지만, 당장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나는 전혀 놀라거나 당황해하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나라가 제정분리를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로 정치와 종교가 분리될 수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 정치와 종교는 둘 다 믿음의 영역이고 사람들에게 믿음을 심어주기 위한 행동이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놀랍도록 똑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맹목적 믿음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은 종교를 '믿음의 영역'으로 규정짓고 과학 법칙을 '진리의 영역'으로 이름하여 선을 긋는다. 그런데 과학도 인간의 사고 안에서는 '믿음의 영역'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기독교인들의 세계를 향한 복음 전파의 열정만큼이나 또 다른 한 편에서는 끈질기게도 예수의 신성성을 부인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들의 주장은 과학의 사각지대에서 접점을 이룬다. 종교인들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여러 예를 들어 신의 존재를 주장하려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과학적 증명이 없이는 어떤 것도 믿지 않는 사람들조차 신의 존재가 과학으로 해명할 수 없다는 것은 수긍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전 세계 20억의 사람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라 믿고 있고, 절반 가까운 사람이 예수를 실존인물이라 인정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기를 쓰고 "예수는 단지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자기들의 과학으로 증명하기 위해 수도 없이 많은 가설을 내세웠다.
"맨 프럼 어스" 또한 조심스럽게 하나의 가설을 내세우며 영화를 이끌어간다.
맨 프럼 어스(The Man from Earth)
영화는 매우 독특하고 참신하며 대단히 흥미로운 영화다. 교외의 작은 집, 모닥불가에 8명이 둘러앉아 하루 종일 대화만 하다 끝나는 이 이야기는 총제작비가 얼마가 들었을지 상상도 할 수 없는 스케일에 이전엔 본 적도 없었던 새로운 배우들, 특별한 연기가 필요 없는 다큐멘터리성 시나리오 등. 얼핏 지루해질 수 있는 요소를 가지고 있지만 이 작품의 구성은 매우 훌륭하며 쇼트마다 영화 진행의 호흡을 밀고 당기며 관객의 몰입감을 높이는 시나리오의 완성도는 예술적 수준이다. 대화의 주제도 황당하면서도 깊이가 있다. 영화적인 측면에서는 그렇다는 말이다.
누군가
"저는 14,000년째 살아오고 있어요. 인간이 동굴생활을 하는 원시인일 무렵에 태어났죠."
라고 발언을 한다면, "아 그러세요? 그동안 힘드셨겠어요." 라고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물론 없다. 우리가 외국 여행을 다녀오면서 그것을 증명하려면 현지의 물건을 사 오고, 현지의 언어를 말하며 보고 들은 것을 이야기하면 된다. 물론 그것을 꾸며낸 이야기라고 몰아붙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 그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믿어준다. 왜 그럴까? 그것은 "가능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14,000살 먹은 초할아버지(?)라는 것을 증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갖가지 자신이 살아오면서 보고 들은 것을 말하는 것으로 충분한가?
보여준다면, 당신은 믿을 수 있는가?
당연히 "NO"다. 유물을 보여줘도, 옛날이야기를 해줘도 그것은 이미 박물관과 역사책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수단을 이용하더라도 사진기가 없었던 옛날을 살아왔다는 증명을 할 수는 없다. 어떠한 수단을 동원하더라도, 사람들에게 믿음의 영역 외에 있는 것을 믿게 만드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해답은 어떤가? 단지 혼자 진실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것뿐이다. 그리고 진실은 그렇게 묻히고 말 것이다. 그렇게 진실을 묻고 살아왔던 주인공의, 14,000년 전부터의 삶에 대한 충격적 발언은 모두의 흥미를 끄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서기 0년에 이르러 인물들의 갈등은 절정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영화 속의 존이 처한 상황은 당대의 예수의 모습을 빼닮았다. 누구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으며 소위 지식인들이라 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반박하는 말을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따져주었는데도 그들은 믿지 않는다. 단지 자신의 이성이 14,000년이나 사람이 살아왔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을 믿어주는 눈빛을 보내는 한 여인(이것은 마리아를 본뜬 설정인지도)을 제외하고는. 그 안에는 인류학자도 있고, 고고학자도 있다. 심리학자도 있고, 독실한 신앙인도 있었다. 누구 하나도 그의 논리를 반박할 수 없었지만, 그를 믿을 수도 없었다. 심지어 죽이려고까지 한다. 수많은 유대인 제사장들과 로마 관리들에 둘러싸인 예수의 모습이 겹친다.
이 영화에 1차원적으로 "반기독교"꼬리를 붙일 수는 없다. 영화 속 존이 처한 상황이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을 정확히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논리로만 기독교를 전파하려고 애쓰는 신자들은 한번 생각해볼 문제다. 세상 사람들은 자꾸만 "증명"을 원한다. 또 증거와 이적을 원한다. 그래야만 믿겠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명하려 해도 마지막 2%때문에 믿지 않는다. 그 2%는 바로 스스로 이성이라 부르는 마음의 문이다. 까놓고 말하면,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명해봐야 그냥 말이 안 되니까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상 14000년이나 살아온 인간이라는 설정은 예수의 인간설에 써먹기에는 너무 황당한 설정이다. 하지만 그것을 도저히 납득시킬 수 없었듯이, 예수 또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납득시킬 수 없는 것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로서 이 영화를 결론짓고자 한다.
"성서의 예수가 말했어. '나를 누구로 여기느냐?' 선택하도록 한 거야. 그 권한을 드리죠." "... 맞는 거야?" "아니라고 하면, 그대로 믿겠어요?"
믿든 말든 진실은 엄연히 존재한다.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여부가 진실 자체보다 더욱 중요하다. 우리는 예수를 누구라 여기는가? 인간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신의 아들이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의 믿음을 뒤집는 완벽한 증거가 있다면, 과연 당신은 믿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