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by 잌쿤

SNS가 일상의 대부분을 집어삼킨 시대에 우리는 매 순간 ‘인간으로서 합격인지 실격인지’를 평가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한 번의 말실수, 한 장의 사진, 한 줄의 댓글이 캡처되어 영원히 박제되고, “세상이 널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너무 쉽게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하지만 그 “세상”이란 단지 팔로워 수백 명, 수천 명을 합쳐 부르는 또다른 이름일 뿐일지도 모른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은 전후 일본이라는 시대를 배경으로 쓰인 소설이지만, 타인의 시선에 자신을 전적으로 내맡겨버린 한 남자의 파멸을 통해, 오늘날 SNS에 매몰되어 여전히 타인의 시선을 먹고 살아가야만 하는 우리에게도 유효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패전 이전의 일본은 천황과 국가, 군국주의적 남성성이라는 거대한 가치체계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였다. 남자는 국가와 가족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강인한 남성상”으로 길러졌고, 여성은 그 뒷편에서 묵묵히 지탱해야 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의 패전 이후, 일본은 하루아침에 민주주의와 평화헌법, 자본주의의 본격적인 물결 앞에 내던져졌다. 국가와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제국의 신민’이었던 남성들은 더 이상 존경받는 존재가 아니게 되었고, 그들이 목숨 걸고 지키려 했던 가치 체계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이 급격한 전환의 틈새에서 다자이는 구세대 남성의 파산과 신세대의 가능성을 『사양』에서 그려냈고, 같은 흐름 속에서 『인간 실격』은 그 파산을 한 개인의 심리와 몸뚱이 위에 극단적으로 새겨 넣은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 실격』의 주인공 오바 요조는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이해받을 수 없다고 믿는 인물이다. 그는 사람들 속에 섞여 살기 위해 익살과 광대 짓을 몸에 익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을 숨기기 위한 가면에 불과하다. 요조에게 인간이란, 서로를 이해하는 존재가 아니라, 언제든 자신을 심판할 수 있는 ‘무서운 존재’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과 웃고 떠들면서도 내심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고, 그런 공포를 잊기 위해 술과 약물, 여성에게 몸을 던진다. 요조의 파멸은 개인의 나약함이라는 차원을 넘어, 전후 일본 사회에서 더 이상 존재 이유를 찾지 못한 군국주의적 남성성의 몰락을 상징한다.


그것은 인간을 향한 제 마지막 구애였습니다. 저는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도저히 그들을 떨쳐 낼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저는, 그 광대 짓이라는 가느다란 끈 하나로 인간과 간신히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요조가 실패하는 것은 단순히 “착하게 살지 못해서”가 아니다. 그는 전통적인 의미의 남성 역할, 즉 가족을 부양하고, 책임지고, 사회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기대를 끝내 감당하지 못한다. 전쟁 전이라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쳐 영웅이 될 수도 있었을 남성이, 패전 후 자본과 실용, 일상의 윤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도무지 제 자리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요조의 술과 기생, 직업적 실패와 정신적 붕괴는 곧 ‘이전 시대의 남성성’이 더 이상 의미를 갖지 못하는 시대에 나타난 집단적 무력감과도 맞물린다. 즉, 요조는 한 명의 “못난 사람”이 아니라, 패전 이후 남성 주체의 붕괴가 만들어낸 잔해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점은 다자이 문학에서 반복되는 패턴이 『인간 실격』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파멸하는 것은 언제나 남성이고, 상대적으로 더 주체적이고 현실적인 것은 대개 여성이다. 요조 주변의 여성들은 그를 이해하려 하고, 돌보려 하고, 함께 살아갈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러나 요조는 여성에게 의존해야 하는 현실에서 구원 대신 절망을 느낀다. 자신이 스스로 설 수 없다는 사실, 여성에게 기대야만 한다는 현실은 그에게 “남자로서의 실격”을 확인시켜줄 뿐이다. 다자이는 실제 삶에서도 수많은 여성에게 정서적·경제적으로 의존했던 인물이고, 그로 인한 열등감과 죄책감은 작품 속 요조의 자기혐오로 고스란히 투영된다. 여성에 대한 이상화와 의존, 그리고 그 앞에서 작아지는 자신에 대한 증오가 뒤엉킨 감정 구조가, 남성의 파멸과 여성의 강인함이라는 역설적인 대비로 서사화된 것이다.


저에게는 인간 중에서도 여자가 남자보다 몇 곱절은 난해한 존재였습니다. 우리 가족도 남자보다 여자가 많은 데다 친척 중에도 여자가 많고 또 그 '범죄'를 저지른 하녀들도 있고 해서 저는 어릴 때부터 여자들과만 놀며 자랐다고 해도 좋을 지경인데, 그런데도 정말이지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그 여자들과 어울려 왔습니다. 도무지, 전혀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이 지점에서 『인간 실격』을 단순히 “남성 혐오”나 “여성 찬양”의 소설로 읽는 것은 무리다. 다자이는 여성을 새로운 시대의 절대적 해답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요조를 돌보려 했던 여성들 역시 상처 받고, 이용당하고, 끝내 완전한 구원을 이루지 못한다. 다만 분명한 것은, 패전 전의 남성성이 더 이상 기준이 될 수 없게 된 시대에, 여성은 상대적으로 더 현실에 밀착된 존재, 변화에 적응할 가능성을 가진 존재로 그려진다는 점이다. 『사양』의 가즈코가 새로운 세대의 잉태를 상징하는 인물이라면, 『인간 실격』의 여성들은 요조가 끝내 붙잡지 못한 “다른 삶의 가능성”을 둘러싼 주변부의 힘들이다. 남성의 파멸과 여성의 잠재적 주체성 사이의 간극에서, 다자이는 자신이 속한 구세대 남성이 더 이상 미래를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는 자각을 서늘하게 드러낸다.


작품 중간에 등장하는 호리키와의 대화는 이 소설 전체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다. 호리키가 “세상이 널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요조를 몰아붙이자, 요조는 “세상이 아니라 너 개인이겠지”라고 받아친다. 평소 타인의 시선을 극도로 두려워하며, 스스로를 인간 실격이라 규정했던 요조에게서 보기 드문 반격이자,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균열 지점이다. 여기서 “세상”이란 결국 특정 개인의 시선과 평가를 과장해서 부르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다자이는 이 장면을 통해, 자신을 인간 실격으로 규정하는 힘이 정말 ‘세계 전체의 객관적 판단’이 아니라, 어쩌면 몇몇 개인의 비난이 부풀려진 환상일지도 모른다는 소망, 혹은 저항을 슬며시 끼워 넣는다.


마지막 장면의 액자 화자가 남기는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는 한 줄의 평가는 이 장면과 연결해서 읽을 때 더 의미가 또렷해진다. 이 문장은 요조에게 주어진 구원이 아니다. 요조는 이미 정신과 사회에서 모두 파산한 채, 사실상 “살아 있으나 죽은 인간”으로 여생을 보낸다. 그가 이 말을 듣는 일도, 자기 이해를 수정하는 일도 없다. 그러나 화자의 한마디는 최소한 한 가지를 암시한다. 요조가 스스로 내린 “나는 인간 실격이다”라는 자기 판결이 진실의 전부는 아닐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인간에 대한 판단이 결코 하나의 시선에 의해 완결될 수 없다는 점이다. 이 장치는 절망을 지우지 않으면서도, 자기혐오가 절대적인 진리로 굳어지는 것을 막는 최소한의 균열, 일종의 ‘반(反)절망’으로 읽힌다.


그렇다고 해서 다자이가 무너진 남성성 이후의 정답을 찾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인간 실격』 어디에도 “이렇게 살면 된다”는 새로운 윤리나 구체적인 대안은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자이가 예리하게 포착해낸 것은, 구시대의 남성성과 군국주의, 가부장제, 제국의 가치가 모두 붕괴한 자리에는 아직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 즉 “정답의 부재” 그 자체다. 요조의 파멸은 기존 가치 체계의 실패를 증언하지만, 작품은 그 폐허 위에 무엇을 세워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끝내 말하지 않는다. 다자이 본인도 결국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으며, 그 점에서 『인간 실격』은 작가 자신의 세대가 치른 일종의 집단적 자기 장례식처럼 읽히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지금도 읽힐 가치가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다자이는 무너진 시대 이후의 정답을 말해주지 않는다. 대신 인간이란 본래 약하고, 상처받기 쉽고, 서로에게 의존하면서도 그 의존 때문에 괴로워하는 존재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요조의 극단적인 사례를 통해, 그는 우리에게 묻는다. “타인의 시선에 나 자신을 전적으로 내맡겨버리는 삶은 정말 타당한가?”, “나를 인간 실격이라 부르는 그 목소리는 정말 ‘세상 전체’의 목소리인가, 아니면 몇몇 개인의 증오와 오해가 증폭된 소음일 뿐인가?” SNS에서의 ‘취소’와 ‘낙인’에 휘둘리며 언제든 파멸할 수 있다는 불안 속에 사는 현대 독자에게, 『인간 실격』은 여전히 불편한 거울을 들이민다. 그리고 다자이가 끝내 도달하지 못했던 답을, 이제는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다시 생각해보라고 조용히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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