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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은채 Mar 03. 2024

기타를 든 소녀는 어떻게 걸어다니는 음악 산업이 되었나

‘테일러 스위프트’라는 브랜드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면, 수만 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지른다. 그 위로 들려오는 익숙하고도 당찬 음성.



My name is Taylor, and I was born in 1989!



2014년, 미국의 언론인 바버라 월터스(Barbara Walters)는 이렇게 말했다. “Taylor Swift is the music industry.” 테일러의 커리어가 정점에 도달했을 것으로 예상되던 2014년으로부터 10년이 지났지만, 그녀의 인기는 여전히 꺾일 줄 모르고 고공행진 중이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꼽히는 테일러 스위프트는 어떻게 현대 음악 산업 그 자체가 되었을까.



인생을 녹여낸 진정성 있는 스토리텔링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를 즐겨듣기 시작한 지 올해로 10년차가 되는 한국의 스위프티로서, ‘테일러 스위프트’라는 브랜드와 그녀의 거대한 팬덤은 그녀의 진솔한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한다고 생각한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음악으로써 그녀의 팬덤 ‘스위프티’와 삶을 공유한다. 테일러는 연애사를 노래 가사에 지나치게 많이 이용한다는 비판을 꾸준히 받아왔는데, 역설적으로 이것은 그녀와 그녀의 팬들의 관계를 끈끈하게 연결하는 지점이 되었다. 그녀의 가사에는 소위 말하는 ‘전남친 디스’ 이상의 매력적인 서사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지독한 사랑과 이별의 과정을 대중에게 공개해 공감을 사면서도, 마치 한 번도 상처 받은 적 없다는 듯 매번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그녀를 응원하게 된다.


2006년에 데뷔해 올해로 데뷔 18년차를 맞이한 테일러는 어린시절의 풋사랑을 노래하던 10대 시절부터 커리어의 정점을 찍고 있는 지금까지, 꾸준히 자신의 사생활과 커리어적 고민을 가사에 녹여내며 팬들과 소통해왔다. 테일러 스위프는 더 이상 특정 층에게만 큰 지지를 받는 가수가 아니게 됐지만, 주 팬덤층이 밀레니얼 세대임을 점을 고려했을 때 그녀의 팬들은 그녀를 학창시절 동안 동고동락했던 친구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통기타를 연주하던 10대의 테일러가 세계적인 팝스타가 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어느덧 함께 성인이 된 팬들은 사적 정보가 제한적인 다른 가수에 비해 테일러와 가까운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 간 유대감을 공고히 하는 것이다.


내 사례만 봐도 그렇다. 중학교 재학 시절 테일러 스위프트의 3집 수록곡 ‘Speak Now’로 교내 팝송대회 대상을 수상했던 나는 고등학생이 되어 5집 수록곡 ‘Blank Space’로 실용음악발표회 1등을 거머쥐었고, 7집 ‘Lover’를 들으며 위로받던 재수생 시절을 지나 들어간 대학교 밴드 동아리에서는 8집 수록곡 ‘betty’로 공연을 했다. 영국으로 교환학생을 떠났던 작년에는 ‘1989’ 재녹음 앨범 발매를 기념하는 파티에 참석했으며 대학교 졸업을 앞둔 지금은 그녀의 공연 현황을 지켜보며 이 글을 쓰고 있으니, 생애 절반을 그녀와 함께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모든 시간을 지나오는 동안 많은 것이 변했지만, 여전히 그녀와 그녀의 음악만큼은 변함없이 내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 된다.


2023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6번째 콘서트 투어 <The Eras Tour>에서 그녀는 ‘Lover’를 부르기 전 이렇게 말한다. 내 노래는 나의 삶에 있어 특정 시점, 특정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지만, 그 노래들이 팬들과 상호작용하며 더 큰 의미를 갖게 된 만큼 팬들도 이 순간 이후로는 함께 눈 맞추며 노래했던 이 밤을 떠올렸으면 한다고. 이것이 테일러 스위프트와 스위프티가 공유하는 대표적인 정서이고, 그녀의 팬덤이 유독 강한 결속력을 가진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인생이 가사를 통해 대중에게 전달된 이상 그건 더 이상 그녀 혼자만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사생활을 지나치게 공개한다는 비난 여론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기꺼이 나누는 친구로써 함께 성장해 온 아티스트를 그 어떤 팬이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올바름을 실천하는 소신있는 행보


테일러 스위프트는 과거 연애사뿐 아니라 커리어적 고민, 자기혐오의 감정, 소수자 권리 옹호, 정치적 은유 등을 가사에 훌륭히 녹여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중독성 있는 훅과 따라부르기 쉬운 반복적인 가사가 트렌드를 휩쓰는 시대에 그녀는 꾸준히 가사로써 목소리를 내며 팬층을 두텁게 유지해온 것이다. 한마디로 테일러는 남이 시키는 대로 말하지 않고, 사회가 정해놓은 틀에 맞춰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자신이 생각하는 ‘옳음’을 실천하기 위한 선택을 한다.


2020년에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미스 아메리카나>에서 컨트리 가수는 정치적 발언을 삼가해야 한다는 불문율을 깨고 테일러 스위프트가 민주당 공개 지지 선언을 하는 장면이 공개됐다. 또한 2019년 발매된 7집 ‘Lover’의 수록곡 ‘The Man’에는 남성에 비해 여성이 받는 부당한 대우들에 대한 적나라한 비판이 담겨있어 주목을 끌었다. 그밖에도 테일러는 수많은 인터뷰에서 업계의 성차별을 고발하는 등 페미니스트적 면모를 보이고, 자신이 받는 근거 없는 비난들에 정면승부하며 여성들에게 용기와 영감을 주었다.


여전히 여성혐오가 만연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여권 신장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비난을 받기 일쑤인 것이 현실이다. 일반인 여성도 함부로 꺼내기 어려운 예민한 이슈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소신껏 드러내는 면 또한 그녀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요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커리어적으로 성공한 주체적인 여성상. 그녀와 함께 자라왔거나 그녀를 보고 각자의 꿈을 꾸게 된 팬들이 열광하기 좋은 지점이 아닌가. 수많은 자작곡들에 대한 빼앗긴 마스터권을 소유하기 위해 지난 앨범들을 재녹음하는 과정을 공개하고, 아티스트의 권리 보호에 힘쓰는 현재의 행보도 같은 맥락에서 팬들의 응원을 얻기에 충분하다 느껴진다.


성추행 피해자임을 고백하며 상징적인 1달러 소송에서 승소한 테일러 스위프트는 타임지 선정 2017년 ‘침묵을 깬 사람들’에 이름을 올렸고, 2023년에는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며 올해의 인물 타이틀을 2회 이상 거머쥔 최초의 여성이 되었다. 서로 다른 장르의 앨범들로 역대 최초 그래미 ‘올해의 앨범’ 4회 수상의 쾌거를 이루며 음악적 역량을 인정받은 데에 이어 정치적 올바름을 위해 목소리 내기를 주저하지 않는 이러한 점이 그녀의 브랜드 파워를 극대화시켰을 것이다. 장르를 넘나들며 본업에 충실함과 동시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데 주저하지 않고, 적극적인 소통으로 팬을 향한 애정 또한 아낌없이 표출하는 그녀가 전세계적으로 사랑받지 않을 이유는 없다.


‘예술과 상업적 측면에서 일종의 핵융합과 같은 에너지를 분출했다’라는 타임지의 설명처럼, 테일러 스위프트의 커리어를 총망라한 <The Eras Tour>는 전세계 스타디움을 매진시키는 데 성공함과 동시에 공연장 주변 상권을 부흥시켰고, 그녀가 직관을 갔던 지난 슈퍼볼은 닐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했던 날 이래로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녀의 공연이 열리는 지역에는 엄청난 경제적 효과가 발생하고, 그녀의 발걸음이 닿는 모든 곳에는 모든 이목이 집중된다. Swift와 Economics의 합성어인 ‘스위프트노믹스’, ‘스위프트 효과’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고 하니 그녀의 인기가 간접적으로나마 실감된다.


누군가는 그녀의 인기가 과대평가되었다고 한다. 형편없는 노래실력을 지녔음에도 외모나 가십 등으로 운 좋게 스타덤에 올랐다면서.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가 다른 가수들과 비교도 안 될 만큼 뛰어난 가창력을 지녔다거나 흠 없는 성품을 가졌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테일러 스위프트’라는 브랜드가 이토록 성공하게 된 데에는 분명 특별한 이유들이 있다. 놀라울 정도로 솔직하고 진정성 있는 스토리텔링 능력과 더불어 일관된 가치관에 따른 소신있는 행보를 바탕으로 견고한 브랜드 충성도를 구축한 그녀의 계속될 전성기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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