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영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은채 Jun 17. 2023

엠버와 웨이드는 반대라서 끌린 것이 아니다

영화 <엘리멘탈> 스포 있는 리뷰


디즈니·픽사 신작 <엘리멘탈>의 메인 카피가 공개되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반대가 끌리는 이유




‘그게 과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거였어? 그렇다면 그 이유 나도 참 알고 싶네-’


나는 늘 나와 다른 성향의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는 편이었다.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그건 아마 나와 비슷한 사람을 감당하기 힘들어하는 동족 혐오 때문일 거라는 우스갯소리를 늘어놓았지만, 왜 매번 나와 정반대 성향의 사람들에게 생긴 관심이 곧잘 호감으로 이어지는지가 궁금했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알려줄 영화라니. 기대되지 않을 리 없잖아.


개봉 며칠 전부터 드디어 이 작품을 볼 생각에 들떠있었던 나는, 개봉일에 맞춰 <엘리멘탈>을 관람했다. 단순히 반대에 끌리는 이유가 궁금해서는 아니지만, 복합적인 이유들로 <엘리멘탈>이 본인 선정 올해 최고의 기대작이었기 때문이었다. 영화를 본 뒤의 소감은 이렇다. ‘반대가 끌리는 이유라니, 그런 건 영화에 드러나 있지 않은데? 이 둘은 반대여서 끌린 것이 아니잖아?’


웨이드가 엠버와 같은 ‘불 사람’이었더라도, 엠버는 웨이드를 사랑했을 것이다. 자기 자신도 몰랐던 본인의 재능과 진짜 꿈을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끄집어내 준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둘은 끌릴 만한 상대에게 끌린 것이다. 이미 사랑에 빠지고 나니 마침 서로의 속성이 정반대였던 것뿐, 반대에 끌리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 적어도 이들의 사랑에 있어서는 말이다.



‘불 사람’인 여주인공 엠버는 겉보기에 누구보다 강인한 여성이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으며, 감정표현에 망설임이 없는 솔직하고 당찬 캐릭터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편의점을 물려받을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그녀는 가업과 관련해서라면 매사에 열정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후반부에 밝혀지듯 그건 사실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이 아니었다. 낯선 땅에서 정착하기 위한 부모님의 노력과 희생에 보답하는 길을 택했을 뿐, 착한 딸이 되고 싶었던 그녀에게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스스로의 삶을 주도해나갈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언젠가 웨이드가 했던 말처럼, 엠버의 당찬 모습들은 자신만의 꿈을 펼치고자 하는 그녀의 본심을 애써 숨기기 위한 방어기제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그녀에게 ‘진짜 꿈’을 꾸게 해 준 건 단연 남자 주인공인 웨이드였다. 그는 엠버 자신도 외면하고 있던 그녀의 욕구를 발견해 주었고, 가족과 사회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진정 원하는 일을 찾아 삶을 개척해나가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인물이다. 웨이드는 내내 엠버의 고민이었던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성격’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스스로에게 눈부신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해 주었으며, 그녀가 좋은 일자리를 권유받은 뒤 오히려 혼란을 겪은 이유 또한 깨닫게 해 주었다. 엠버가 가족들의 기대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게 된 데에는 웨이드의 공이 컸다고 생각한다. 파이어 타운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살던 엠버를 각성하게 해 준 웨이드의 말들이 없었더라면, 이 모든 게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흔히들 사람은 자신의 세계를 넓혀준 사람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누군가의 세계를 확장한다는 건, 단순히 서로 간 끌림이나 화학 작용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내가 갖지 못한 어떠한 특성이 상대에게 존재한다는 것은 물론 그 사람에게 호기심을 느낄 만한 요소가 될 수 있지만, 상대방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없다면 단순히 ‘정반대의 특성’ 따위는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데 어떠한 역할도 할 수 없다. 엠버는 야망 가득한 여성이면서도, 동시에 가족을 끔찍이 아끼는 성격 때문에 제 꿈을 억누르며 살아온 인물이다. 그런 그녀에게 주체적인 인생을 사는 건 잘못이 아니라고, 부모님을 실망시켜드리지 않고자 하는 책임감 때문에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말해줄 사람이 나타났다는 것은 인생일대의 행운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는 엠버의 마음을 어리석은 것으로 치부하지 않고 그녀의 가족이 처한 상황에 진심으로 공감하는 것은 덤.


웨이드는 엠버의 가정사에 깊은 공감을 표했고, 그녀의 잠재력을 믿었고, 그녀가 꿈을 펼치며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를 진심으로 응원했다. 이러한 마음이 엠버에게 가닿았기에 그녀도 자신을 짓누르던 모든 망설임으로부터 벗어나 웨이드의 사랑에 답할 수 있었으리라 믿는다. 반대에 끌리는 이유는 없다. 그저 끌릴 만한 대상에게 끌리는 것일 뿐. 그리고 그건 물과 불의 타고난 반대 속성 때문도, 정반대의 그들이 일으킨 화학적 작용 때문도 아니다. 엠버가 웨이드에게 사람을 끌어들이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아본 순간, 그리고 웨이드가 엠버에게 비비스테리아를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 그들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에게도 있나요? 사랑하는 줄 모르고 사랑한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