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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은채 Mar 28. 2023

당신에게도 있나요? 사랑하는 줄 모르고 사랑한 사람

영화 <소울메이트>가 비춘 마음

떠올리면 애증의 마음이 드는 친구가 있다. 물론 지금은 멀어졌지만 한때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였던,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조차 않지만 이름을 곱씹는 것만으로 눈물이 날 것 같은 사람. 지금처럼 완전한 타인이 되기 전까지도 그랬다. 미운데, 분명 미워할 이유를 수십 개는 댈 수 있는데 도무지 미워지지를 않았다. 당시에는 이게 대체 어떤 감정인지 몰라 답답했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 애를 사랑했던 것 같다. 지독하게도.



노래에서도 사랑, 영화에서도 소설에서도 사랑을 외쳐대니, 대체 사랑이라는 건 뭘까? 하는 고민에 사로잡혀있던 때가 있었다. 어차피 사랑은 언제가 끝날 텐데, 이별의 아픔까지도 각오하게 만드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대체 어떤 것일까? 여전히 완벽한 정의를 내릴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생각해 본 사랑이라는 감정은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번에는 마치 영원할 것만 같은 착각이 드는’ 마음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우정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그냥 하루 만나서 술 한 잔씩 기울이다 헤어지는 사이 말고, 상대의 인생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정도의 우정은 사랑과 구별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의 환경과 소속, 가치관이 변하면 언제든 멀어질 수 있는 게 친구 사이인데, 마치 지금의 우정과 청춘이 영원할 것처럼 서로에게 기꺼이 시간과 마음을 쓰는 사이는 결국 사랑으로 귀결되고 만다.



그렇게 서로에 대한 기대가 커지다 보면,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고받는 일이 생길 수밖에 없다. 미워하는 감정 또한 좋아했던 마음을 먹고 자란다고 생각하기에, 우정에서 비롯된 사랑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 버리면 남는 건 결국 애증뿐이었다. <소울메이트> 속 미소와 하은이 서로를 아프게 하는 말들을 쏟아내던 장면에서, 그들과 이유는 달랐지만 비슷한 마음을 품어 본 과거의 내가 떠올랐다. 가장 믿고 싶은 사람이 가장 미덥지 못할 때의 괴로움, 그 애도 나를 사랑했으면 하지만 이 모든 게 일방적으로 느껴지는 순간 밀려들던 속상함, 그 애가 행복하기를 바라면서도 언젠가 나만큼 아파봤으면 하는 가시 돋친 뾰족한 마음. 그게 당시 내가 징글징글하게도 사랑했던 친구에게 가졌던 마음이었다.



그때는 자각하지 못했지만 지나고 보면 전부 사랑 때문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그때 내가 널 사랑해서 그랬더라는 사과 섞인 고백을 전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야속해 영화를 보는 동안 찔끔찔끔 눈물이 났다. 그런 애틋한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결과적으로 실망만 남긴 채 내 인생에서 사라져 버린 그 친구가 미웠다. 다만 내 인생은 영화가 아니라서, 다시 만난다 해도 우정이니 사랑이니 하는 맑고 예쁜 마음은 더 이상 우리 사이에 존재할 수 없을 것이므로 그 애를 다시 만나봐야겠다는 데까지는 생각이 번지지 않아 다행이었다. 영화를 매개로 일어난 감정들을 정리해야 하는 것도 오롯이 내 몫이기에, ‘나는 평생 너를 생각하면 이렇게 극과 극의 감정들을 동시에 느끼겠구나. 그래도 보고 싶고, 그래서 짜증 나.’ 하는 실없는 생각을 했다.



성 지향성과는 별개로, 동성이기에 우정이라고 얼버무리는 사랑이 있으며 이성이라는 이유로 사랑이라 착각하는 우정이 있다. 반대로 성별에 속지 않으려는 노력이 지나쳐, 자신의 마음을 바로 보지 못하고 사랑을 우정이라 우기다 놓치고 마는 이성도 있다. 우정과 사랑을 혼동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의식적으로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둘을 헷갈렸던 적이 많았다. 다 지난 관계들을 찬찬히 뜯어 봐도 여전히 알 수 없는 마음들이 있다. 하은은 진우와 연애를 했지만 그녀가 평생에 걸쳐 정말 사랑한 사람은 진우가 아닌 미소였을 것이다. 그건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확신할 수 있다. 동성 친구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이성 친구를 응원하면, 전자는 우정이고 후자는 사랑인가? 나는 평생 우정과 사랑을 명확히 구분해 내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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