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축복을

꿈과 사랑 중 당신에게 더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라라랜드> 리뷰

by 천은채

‘많은 이들이 인생 영화로 꼽지만 내게는 최악이었던 영화’ 하면 늘 순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작품이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2016년 개봉된 영화 <라라랜드>. 내게도 이 영화는 늘 그런 느낌이었다. 음악 좋고 영상미 좋네. 그런데 그것만으로 인생 영화? 그건 그냥 유행에 편승하려는 게으른 판단 아닌가? 그리고 영화가 개봉한 지 10년이 다 되어서야 깨달았다. 이 영화는 ‘그것만으로’ 이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작품성이고 뭐고 영화를 전문적으로 분석할 역량은 없지만, 미아와 세바스찬, 그들 각각의 인생을 지켜보며 느낀 바를 꿈과 사랑의 관점에서 서술해 보고자 한다. 플롯은 그대로인데 처음 관람했을 땐 별점 3점에 그쳤던 평범한 영화가 10년이 지나 5점 만점의 영화가 된 이유, 그건 아마 관객인 내가 지난 10년의 시간을 지나며 이뤄온 성숙에 있는 것 같다는 짐작에 따라.


2016년, 그러니까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을 시절 <라라랜드>를 처음 봤다. 어쩌면 지금보다도 사랑에 심취해 있던 당시의 나는 결말에서 둘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아 화가 잔뜩 났었는지, 친구들 앞에서 <라라랜드>를 ‘정말 별로인 새드엔딩 영화’라고 신랄히 비판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인생에 있어 사랑이 전부가 아님을 조금씩 깨닫던 20대 초반, ‘꿈’에 초점을 두어 <라라랜드>를 재관람했고, 이 영화가 사랑의 관점에서는 새드엔딩일지 몰라도 두 사람 모두가 각자의 꿈을 이뤘다는 점을 생각하면 해피엔딩일지도 모르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럼에도 뭔가 찜찜하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남아있었기에, 더 이상 이십 대 초반이라 우길 수 없는 나이가 되어 세 번째 관람을 시도했다. 그리고 유레카. 이제야 이 영화가 온전히 흡수되는 느낌이 들더라. 꿈의 관점에서는 물론, 사랑에 있어서도 이 정도면 해피엔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라라랜드>를 관람하는 관객 입장에서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미아와 세바스찬 둘뿐이니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은 게 당연히 섭섭할 수밖에 없다. 내게도 마찬가지. 비로소 결말이 납득가더라는 것이 이들의 이별이 조금도 아쉽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화면 밖 관객이 아니라 LA 어딘가를 살아가는 이들 각각의 인생을 두고 보면, 이별이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이별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두 사람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가 영원한 해피엔딩을 뜻하지 않듯, 사랑하던 이들이 더 이상 함께하지 않게 되었다는 게 언제나 새드엔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으로 똘똘 뭉쳐 있던 서로에게, 빛바랜 사랑은 오히려 독이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두 사람은 각박한 현실을 견디며 날카로워진 마음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다가, 이런 마음으로는 더 이상 함께 행복할 수 없음을 깨닫고선 담담히 끝을 맞이한다. 보통의 연인들은 혼자일 때보다 함께일 때 더 괴로워지는 순간 이별을 결심한다고들 한다. 미아와 셉의 연애도 ‘보통의 연인들’과 다르지 않았다. 이들의 사랑은 시간을 돌려서라도 붙잡고 싶은 운명적인 무언가가 아니었던 것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소위 말하는 ‘취준생’이던 둘에게 서로는 그 모든 불안과 혼란을 견디게 해 줄 상대에 불과했을 것이다.


감정적으로 취약한 시기일수록 우연을 운명으로 착각하기 딱 좋은 법.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기만 한다면, 그건 꼭 서로가 아니어도 상관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미아가 셉의 결정을 존중하지 못하고 셉이 미아의 꿈을 예전만큼 지지하지 못하게 됐을 때, 둘은 너무나 쉽게 서로의 손을 놓고 만다. 시간이 지나 제 기능을 못 하게 된 가전제품을 내다 버리듯 그들의 이별은 너무나 당연하고, 무미건조하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꿈과 사랑 중 무엇을 더 중요시하는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적어도 연애 당시의 미아와 셉은 모두 사랑보다는 꿈이 훨씬 중요한 사람들로 보인다. 나 또한 그렇다. 그 어떤 가치보다 사랑을 우선시하던 질풍노도의 고등학생 때와는 달리 스물여섯의 나는 꿈이 더 중요한 어른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이제는 이들의 이별이 비교적 덜 서운하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엔딩 시퀀스에서 ‘만약에’를 가정한 가상의 미래가 펼쳐지지만, 난 그것이 누군가의 절절한 미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모든 if에도 불구하고 가벼운 눈짓을 주고받는 것을 끝으로 영화가 마무리되던 것이 그 증거가 아닐까. 두 사람이 결혼해 가정을 꾸리는 평행 우주를 상상해 봐도, 둘은 결국 지난 선택을 되돌려 서로에게 돌아가기보다 그들이 맞이한 현재를 결연히 책임지는 쪽을 택한다. 게다가 서로를 향해 싱긋 웃어 보이는 여유는 덤.


무엇보다 결말에 다다라 화면에 띄워진 ‘5년 후’라는 자막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방금까지 사랑하던 둘의 이별을 받아들이기 힘든 건 관객인 우리일 뿐, 정작 미아와 셉은 서로를 철없던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기고 이미 인생의 다음 챕터로 넘어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현실에서 5년이면 그러기에 충분한 시간이지 않은가.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지만, 한때 열렬히 사랑했던 사람들이 이별을 맞이했다는 게 늘 불행과 미련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그토록 바라던 꿈을 이뤄낸 둘은 이제 서로가 아니더라도 괜찮은 인생을 살고 있을 테니.


그 모든 사연에도 불구하고 관계가 끝나는 단 하나의 본질적인 이유는, 그들의 마음이 딱 그 정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서로를 응원하는 마음만 남겨둔 채 다음 단계로 나아갈 타이밍을 놓치지 않은 둘은 결국 꿈을 이뤄 바라던 인생을 살게 된다. 심지어는 각자의 삶에 정착한 후 우연히 서로를 마주치고도 도망치듯 회피하는 대신 애정이 담긴 눈인사를 건넬 수 있게 되었으니, 관계에 있어 이보다 아름다운 엔딩이 있을까?


서로가 서로에게 복(福)인 사이로 남는 게 얼마나 귀하고 어려운 일인지를 알게 된 시점에 <라라랜드>를 다시 보니 이걸 인생 영화로 꼽는 사람들의 마음이 비로소 이해되었다. 많은 이들이 <로봇 드림>을 애니메이션 버전 <라라랜드>라고 하는 이유도 이제야 알겠고. 내게 두 영화는 그동안 완전히 다른 작품이었는데, 헤어진 뒤로도 서로의 삶을 응원한다는 점, 특정한 노래가 매개가 되어 '만약에'로 시작되는 가상의 미래를 그리다 결국 현실을 받아들이는 엔딩을 맞이한다는 점 등의 구성이 정말 비슷하더라. 그러한 연출을 통해 내게 짙은 여운을 남겼다는 것이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공통점이겠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감상이 달라지는, 대체로 그 깊이가 더 깊어지는 작품이 딱 두 개 있다. 바로 소설 『어린 왕자』와 영화 <이터널 선샤인>. 이제 여기에 한 편을 추가하고자 한다. <라라랜드>에 혹평을 쏟아냈던 사람들이 나이가 든 후 이 작품을 다시 꺼내본 적 있는지, 아니면 기억 저편에 영원히 묻어두기로 했는지가 궁금해진다. 이 글을 읽은 사람 중 <라라랜드>에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면, 두 시간 남짓한 시간을 들여 과거의 감상과 지금의 감상을 비교해 보는 재미를 누려 보기를. 이 영화를 가장 정확하게 평가할 평론가는 아카데미도 이동진도 아닌, 본인이 지나온 지난 10년의 시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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