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쓰비>가 구축한 ‘꿈꾸는 사람들이 해내는 세계관’

내게 언제의 나를 사랑하냐고 물으면, 바로 지금!

by 천은채

분명 데뷔곡을 발매한 지 하루밖에 안 됐는데, 온갖 연예계 선배님들의 샤라웃을 받으며 이례적인 행보를 보이는 괴물 신인... 아니, 신인 괴물이 있다. 그뿐이 아니다. 이들은 그룹 결성의 전 과정에 걸쳐 케이팝 어벤저스라 불리는 고급인력들의 지원 사격을 받으며 성대한 데뷔를 치러냈다. 그 누구도 이 프로젝트의 종착점이 어디일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프로 아이돌로 거듭난 <재쓰비>. 개성 강한 세 명이 모여 이상하게 편안한 조화를 이루는 이들은 언제의 나를 사랑하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바로 지금’이라 답하고, 돌아보니 아무것도 아닌 건 아무것도 없었다며 뭉클한 웃음을 선사한다. 여느 프로젝트 그룹이 그렇듯 재쓰비의 시작은 분명 예능이었지만, 세 명의 신인 가수가 전하는 응원과 위로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2018년,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리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작은 채널 <문명특급>이 탄생한다. 문명특급은 당시만 해도 틈새시장에 불과하던 유튜브를 발판 삼아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지만, 어느덧 포화 상태가 된 유튜브 생태계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고민하는 시기를 맞이한다. 널뛰는 조회수와 미적지근한 반응들 사이에서 그들 스스로도 ‘슬럼프’라고 칭할 만큼 방황하던 제작진은 돌고 돌아 ‘문특’만의 콘텐츠를 선보이자는 해결책을 내놓는다. 다른 가수들의 음악을 세상에 알리는 일에 앞장서는 데에 그치지 않고, 재재를 중심으로 한 그룹을 결성하여 그들만의 오리지널리티를 극대화하기로 한 것이다.


아이돌로서 무대에 서고 싶다던 재재의 막연한 꿈에서 시작된 프로젝트는 내딛는 발걸음 하나하나 화제를 모았고, 문명특급을 거쳐 간 수많은 연예인의 도움을 받아가며 스케일을 키웠다. 지난 11일에 발매된 재쓰비의 데뷔곡 <너의 모든 지금>은 발매 직후 멜론 탑100에 진입했고, 하루 만에 40위권을 돌파하는 저력을 보이고 있다. 데뷔 무대나 다름없던 괴산 고추 축제를 준비하는 과정을 지켜본 위대한(재쓰비 팬클럽명)으로서 평하자면, 지역 축제 하나를 가더라도 재미와 감동, 그리고 홍보 효과 모두를 잡기 위해 작은 부분 하나라도 대충하지 않는 이들의 열정과 진정성이 비로소 빛을 발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꿈을 이루는 과정에 있어 어떤 것 하나 장난으로 임하지 않는 사람들이 받아 마땅한 박수랄까.


그간 문명특급을 통해 쌓아온 인맥을 총동원해 최고의 결과물을 얻어낸 덕도 물론 있겠지만, 이들은 무엇보다도 재쓰비만이 가진 무기를 아낌없이 써먹는다. 문명특급 제작진이 처해있는 열악한 상황을 공개하는 것은 물론, 멤버 각각이 가진 서사를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 자연스럽게 녹여낸 것이다. 아이돌 산업에서 멤버들이 갖는 서사는 소위 말하는 ‘입덕’에 있어 필수 요소이다. 무대 위에서 반짝반짝 빛나기만 하는 그들의 숨은 이야기를 알고 나면 해당 그룹에 갖는 애정의 정도가 깊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요즘 활동하는 아이돌이라면 그들만의 특별한 세계관을 내세우지 않는 경우를 찾아보기 힘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재쓰비의 세계관은 다름 아닌 그들의 인생이다. 굳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내지 않아도, 이미 수년간 지켜봐 온 그들의 친숙하면서도 치열한 인생은 그 자체로 깊은 공감과 응원의 마음을 이끌어내는 훌륭한 스토리텔링 수단이 되었다.


이루지 못한 그 모든 꿈을
또 한 번 모아서
안 되면 그냥 웃어버리고
또 하면 되지 뭐

Stay in what you believin'
넌 너를 그냥 믿어
도무지 너를 모르겠다면
네 곁에 나를 믿어


<너와의 모든 지금>을 이루는 이러한 가사들에는 지난 몇 개월 동안 지켜본 재쓰비의 관계성이 그대로 녹아있다. 데뷔 무대였던 괴산 고추 축제(이하 괴산팔루자)를 앞두고 멤버들이 잔뜩 긴장하던 모습이라든지, 애드리브에서 작은 음이탈을 낸 후 괴로워하는 승헌쓰에게 재재와 가비가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네고, 그 덕에 용기를 낸 승헌쓰가 바로 다음 날 펼쳐진 추풍령 가요제 무대를 실수 없이 마무리해내던 모습 등이 눈앞에 생생히 그려지는 것이다. 실제로 이들의 뮤비에는 그룹이 결성된 후 촬영된 분량에서 보여진 모습뿐만 아니라, 화면 밖에서 이들이 지나온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펼쳐져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들의 서사로부터 시작된 감동은 세 멤버 간 케미를 증폭시키는 데서 멈추지 않고, 노래를 듣는 사람에게까지 고스란히 전해진다. 재쓰비는 듣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방식으로 그들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너와의 모든 지금>는 평범한 회사원, 낯을 많이 가리던 대학생, 늘 무대 뒤편에 있던 댄서의 삶을 살던 세 사람이 아이돌의 꿈을 이뤄낸 것처럼, 스스로를 믿고 도전을 멈추지 않는 모든 이들에게는 꿈꾸던 일을 현실로 만들 자격이 충분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심지어 네가 너 자신을 믿지 못하는 순간에도 너를 믿는 내가 있으니 겁내지 말고 나아가라는 가사가 흘러나오던 부분에서는 몇 번이나 울었는지 모른다. 모든 게 불확실하고 두렵기만 한 취준 시기를 보내고 있기에 이들의 위로가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이려나 생각했는데, 이 노래에 감동의 눈물을 흘린 게 비단 취준생인 나뿐만은 아니리라. 당장은 뚜렷한 성과가 보이지 않아 그간의 노력이 부질없는 것 같아도,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했던 순간들이 모여 빛나는 지금을 이룬다는 점에서 지나온 모든 날들이 소중하다는 말이 그 어떤 응원보다 힘이 되었다. 노래를 들으며 내가 나를 조금 더 믿어도 되겠다, 쉽게 포기해도 되는 꿈이라는 건 없구나, 그러니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향해 과감히 나아가야겠다 싶은 생각을 했다.


<너와의 모든 지금>의 작사가 김이나는 재쓰비의 진짜 이야기를 가사에 녹여내기 위해 멤버들에게 숙제를 냈다고 한다. 자아에 기스 하나 나지 않았던, 무모하고 반짝였던 때를 떠올려 보라는 질문에 대한 재재의 답변이 특히나 인상 깊어 첨부한다.



우리는 때때로 현재의 소중함을 잊고 산다. 그건 다 지난 과거의 영광에 지나치게 매몰되어서일 수도, 다가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과하게 압도되어서일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를 충실히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가짐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내·외부적인 요인들 때문에 그 사실을 자주 잊곤 한다. 특히 나이 강박이 심한 대한민국에서, 한 해 한 해가 지나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며 섣불리 포기하게 된 크고 작은 꿈이 얼마나 많았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하고 싶으면 해 보면 되는 건데. 그게 예상과 다른 방식으로 흘러간다 해도 사실 그렇게까지 큰일은 아닌 건데, 마치 정상적인 인생이라는 게 존재하는 듯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길을 선택했을 경우 불필요한 해명을 늘어놓아야만 하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각박한 세상 속에서 매 순간 떠오르는 꿈들에 집중하는 건 그렇게 두려워할 일이 아니라고, 좇을 꿈이 있다는 건 멋진 일이라고 말해주는 아이돌이 탄생해 기쁠 따름이다.


재쓰비는 요즘 세상에서 접하기 힘든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물론, 하나의 아이돌을 탄생시키기 위해 어쩌면 연예인보다도 높은 강도의 노동을 감내하는 수많은 스태프의 노고를 조명하거나 저작권을 보호받기 어려운 댄서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데 앞장서는 등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에도 진심을 다한다. 괴산 고추 축제 영상에 달린 댓글 중 ‘영상에 등장하는 모두를 응원하게 된다’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드. 재쓰비 프로젝트의 주인공은 세 명의 연예인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댓글에 쓰인 것처럼, 재쓰비 프로젝트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생하는 모든 인력을 주인공으로 받든다. 무대에 올라 화려한 조명을 받고 서 있는 가수들뿐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모든 사람의 삶에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이런 재쓰비야말로 우상을 뜻하는 ‘아이돌’의 어원에 가장 적합한 그룹이 아닌가.


웃음을 위해서는 혐오와 조롱도 마다않는 2024년의 콘텐츠 시장에서, 재쓰비는 순도 200%의 진실한 꿈만으로 시청자를 울고 웃게 만든다. 아무것도 아닌 건 아무것도 없었으며 지나간 모든 순간이 소중했다고 말해주는 프로젝트 그룹 재쓰비. 넌 그냥 너를 믿으라고, 도무지 너를 모르겠으면 네 곁의 나를 믿으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을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빌보드 진출을 목표로(!) 결성된 재쓰비가 일회성 프로젝트 그룹에서 그치지 않고, 더 크고 원대한 꿈을 향해 달려갔으면 좋겠다. 이들이 차근차근 구축한 ‘꿈꾸는 사람들이 결국 해내는 세계관’이 무한히 확장되기를. 그리하여 터무니없는 꿈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반례로 남아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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